2009년 8월호

중증장애인 특채 1기 공무원들

“다행히 신은 제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남겨주었습니다”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9-07-30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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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두워야 별이 뜬다. 뜨거운 여름이 있어야 곡식이 자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시련을 겪어야 단단해진다. 우리나라 최초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으로 공무원이 된 이들. 모르긴 몰라도 높고 낮은 고개를 여럿 넘어 안착했을 것이다. 2기 채용(7월1~ 3일 서류전형 응시원서를 접수했고,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한 사람을 대상으로 10월13~15일까지 면접시험을 통해 20개 부처에서 일할 최종합격자 24명을 가린다)이 한창인 지금 1기생들의 삶을 조명해봤다.
    중증장애인 특채 1기 공무원들
    중증장애인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제는 지난해 8월말 처음 실시됐다. 정부는 행정안전부 공고를 통해 그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중증장애인은 전체 장애인 중 43%나 되지만 임용비율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국가직 7·9급 공채시험에서 선발예정 인원의 5% 이상을 장애인에게 할당해 매년 선발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경증장애인이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고용 여건이 더욱 나쁜 중증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특별채용시험을 실시한다.”

    평균 39.3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난해 12월에 최종합격한 사람은 총 18명(7급 5명, 9급 9명, 연구사 1명, 기능직 3명)으로 연령별로는 40대 3명, 30대 9명 20대 6명이다. 서류와 면접전형만으로 선발돼 교육기간과 수습기간을 거쳐 이제 막 발령받은 이들을 만났다.

    서울 계동 현대사옥 10층에 있는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동휠체어에 앉아 한창 전화상담 중인 뇌성마비 장애인 장수호(39)씨가 보인다. 상담이 끝난 뒤 직원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흔들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부정확한 발음이었지만 열성적으로 대답을 이어갔다. 1시간의 인터뷰가 끝났을 때 그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대학 국문과에 들어갔어요. 집 안에 있을 때가 많아서 책 읽기를 좋아했거든요. 그러다 동아리에서 장애인 권익 운동을 하게 됐고 졸업하고도 그렇게 했지요.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엄두도 못 냈어요. 단념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당시에는 사회 환경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많았어요. 장애인 스스로 노력해 열악한 사회 환경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당시 소아마비 장애인은 의대에 갈 수 없었어요. 입학규정 중에 비커를 들고 몇 미터를 어떤 기구에 의지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어떻게 소아마비 장애인이 통과할 수 있었겠어요. 저만 해도 대입시험을 모 중학교 교실 맨 앞자리에서 봤는데, 책상 다리 사이로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아 아주 불편한 자세로 시험을 봤습니다.”



    그는 졸업 후 장애인 권익 보호 운동을 계속했다. 1999년에는 장애우권익연구소 부산지부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장애우고용촉진법을 만드는 데 동참하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중증장애인 특채 공고를 보게 돼 7급 공무원이 된 장씨는 현재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사업자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회가 이런 곳인가

    “영세업자들에게까지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내라고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법을 유연하게 해석하긴 합니다. 그래도 설득하고 설득하죠. 민간에서 정책을 비판할 때와 달리 여기에 있으니 여러 사안이 함께 보입니다. 예산이나 부처 간의 조율 문제가 있더라고요.”

    장애인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한 사람은 비단 장씨뿐만이 아니다. 여성부 운영지원과에서 장애인복지를 담당하는 작은 체구의 김은경(42)씨도 ‘역사기행’을 담당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았다. 여섯살 때 방앗간 사고로 오른팔이 절단된 그녀는 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학습지 방문교사가 되고자 했지만 “교사 이미지에 좋지 않다”는 고용주의 말을 듣고는 “사회가 이런 곳인가” 싶어 취업의 날개를 접었다.

    그렇게 5년간 지내다 ‘사회복지사’의 꿈이 생겼다.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직업이라 마음에 들었어요. 운동회를 앞두고 연습하던 친구들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한 저 같은 장애인도 보듬어주고 싶었고요.”

    뒤늦게 석사 학위를 받아 사회복지사가 된 그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장애인 재활상담을 하고 장애인복지관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그 6년간 틈틈이 공부해 박사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르몬 치료 부작용으로 일을 쉬게 됐고 때마침 중증장애인 채용 공고를 봤다.

    “나이제한에 걸려 공무원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마침 그해부터 나이제한이 없어졌더라고요. 막상 이력서를 내고 서류 전형 등을 통과해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공무원이 되니 꿈만 같았어요.”

    국가보훈처 수원보훈지청에서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서정웅(31)씨도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공무원이 된 경우다. 뇌성마비 지체2급으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뒤 바로 종합복지관에 취업해 노인 재가(在家)복지를 담당했고, 그 뒤 3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며 공무원시험 준비를 병행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 나랏돈을 받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은 아니어서 불안했죠. 그래서 안정적인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려고 졸업 후 세 번이나 시험을 봤는데 일하면서 공부하다 보니 잘 안 됐어요. 그러다 이번에 합격했는데 좋죠. 하고 싶었으니까요.”

    보건복지가족부 국립재활원에서 서무업무를 보는 안춘목(42)씨도 마찬가지다. 하반신마비로 하지장애1급인 그는 다치기 전에는 전기공학을 전공하다 다친 후에는 사회복지를 공부해 노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일반 기업 출신도 여럿 보였다. 1기생 18명 중 10명을 인터뷰했는데 그중 상당수가 전산 업무 경험이 있었다. 노동부 진주지청에서 국비장학생 관련 업무를 하는 김동완(33)씨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뒤 줄곧 병원 전산실에서 일하다 공무원이 됐다. 이제 막 아빠가 된 그는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자 직장을 옮겼다.

    중증장애인 특채 1기 공무원들

    제1기 중증장애인 특채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트럭이 허리를 …

    행정안전부 광주정부통합전산센터에서 고객관리를 담당하는 송봉석(36)씨는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가 4시간씩 신장투석을 하면서도 회사생활을 하며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업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싶어 경영대 박사과정을 밟기도 했다. 정부 프로젝트를 받아 일하던 그는 공무원이 되면 더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 싶어 공무원 시험을 봤다. IT 관련 세미나를 주최하고, 고객 만족도를 분석하는 일을 한다는 그는 “발전해가는 공무원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일반 기업 출신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유도영(33)씨. 그는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휠체어 장애인이지만 젊은이답게 자신감이 넘쳤다.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자마자 웨딩홀에서 서빙 알바를 했어요. 군대 갔다 와서는 낮엔 건설회사에서 일하고 야간에 대학을 다녔고요. 사고는 학교 시험이 끝난 날,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했는데, 제가 술에 취해 새벽까지 길에 쓰러져 있었나 봐요. 그때 그만 트럭이 제 허리를 밟고 지나갔다고 해요. 사고 전후 10시간 정도가 기억이 나질 않아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고 해요. 재활병원에서 1년 반 정도 있다 집에 오니 살 수가 없었습니다. 먹고 자고 밤낮 구분 없이 지내려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무작정 강남에 있는 컴퓨터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손은 멀쩡하니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원에서 7개월간 웹마스터 과정을 공부한 그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무상 직업교육을 실시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집이 있는 일산에 직업능력개발센터가 있던 터라 다니기도 쉬웠다. 그렇게 웹프로그램 교육을 9개월간 받은 뒤 대전 직업학교로 전학을 가 6개월간 숙식을 제공받으며 공부했다. 노력 끝에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회사가 어려워지자 또다시 정부 문을 두드려 정보사회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자바(JAVA) 수업을 들었다.

    어렵사리 자바 자격증을 땄지만 이번에는 취직이 되질 않았다. “휠체어를 탄다”고 하면 “자바 다루는 일은 파견직이 많아 장애인은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막다른 길에 몰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공단에서 중증장애인공무원 시험 준비반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렇게 그는 6개월간 무상으로 전남 함평 직업능력센터에서 실력을 닦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가면 이런 정보가 수시로 올라옵니다. 한 달에 200만원 하는 수업료를 들이지 않아도 컴퓨터를 배울 수 있어요. 요즘에는 많은 장애인이 이용해 대기해야 할 정도예요.”

    기상청 정보통신기술과에서 기상관측데이터를 수집해 유관기관에 배포한다는 그는 공직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조직의 신경망을 담당한다’는 생각에서다. 휠체어에 꼿꼿이 앉아 반듯하게 말하는 그는 영락없는 모범청년이었다.

    공직에서 일할 만한 사람

    중증장애인 채용 절차는 비교적 간편한 편이다. 서류 전형을 통과한 사람은 면접시험만 보면 된다. 사실상 시험장에는 한 번만 간다는 얘기다. 물론 그 한 번의 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되니 그만큼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7급 공무원 지원자의 경우 주제 발표를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 면접을 본다.

    주제 발표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은경씨와 장수호씨는 면접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서류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곤 바로 서점에 가 공무원면접 기출문제집을 두 권 샀어요. 거기에 지금까지 출제된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방향을 잡을 수 있었죠.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매일같이 모의 면접을 봤어요. 여성부를 지원했으니 그 분야 관련 이슈를 집중적으로 정리하고 숙지했어요.” (김은경)

    그러나 막상 붙고 보니 이슈 준비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느꼈다고 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나 솔직하고 진실한지, 공직에서 일할 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특채의 경우 경력, 자격증, 학력이 당락을 좌우하는 키포인트이지만 무엇보다 인성이 중요한 요소더라고요.”

    장수호씨도 솔직한 답변 덕분에 합격했다고 믿는다. “30분 정리할 시간을 주고 10분간 주제발표를 하는데, 5명 중 최종 저 한 사람이 남았으니 면접이 중요한 과정이었던 거죠. 저도 복지부를 지원해놓고 주제별 이슈를 정리했는데, 면접관이 ‘지금까지 가장 힘든 의사결정이 무엇이었느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느냐’며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질문에 답하면서 제 소신과 성격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실시한 면접캠프에 참여한 이도 있었다. 자신이 지원한 부처에 미리 가본 준비성 뛰어난 지원자도 있었다.

    “진주지청에 지원한 다음에 청내에 있는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관찰하면서,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저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김동완)

    그러나 이런 면접 기회를 얻기 위해 먼저 통과해야 하는 건 서류전형. 경력사항과 함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소개서다. 지난해에는 708명의 지원자 중에서 107명만이 서류심사를 통과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면접심사를 한 적이 있는데, 천편일률적인 글은 안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A4 용지 한 장에 딱 세 단락만 썼습니다. 왜 일하고 싶은지, 일하면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적어 내려갔죠. ‘다행히 신은 제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남겨주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했죠.”(유도영)

    준비 과정은 저마다 다양했지만 기회는 준비한 자들에게만 다가왔다.

    일자리가 불안했던 사람일수록 만족도는 높았다. 제주경찰청 소속 김신희(31)씨도 그랬다.

    “겉으로 봐서는 제가 장애인인 줄 몰라요. 신장장애라 티가 안 나거든요. 인체의 노폐물을 걸러주는 필터인 신장이 고장 난 거니까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가 4시간씩 신장투석을 해야 해요. 그러니 ‘칼 퇴근’하는 직장에서 일해야 하는데, 그런 직장이 드물죠. 지방국립대 경영학과를 나왔는데 취업이 되질 않았어요. 그래도 여기저기 원서를 넣었는데 정규직을 얻진 못했어요. 운 좋게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계약직으로 서류정리 일을 하긴 했는데 불안했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리니까요. 비록 몸은 아파도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제주도경찰청을 자원해 홀로 타향살이를 하고 있지만 만족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불만은 없지 않다. 너무 단순한 일만 하게 된다는 하소연이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배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직급이 낮아선지,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옆에서 지원만 해 소모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직장이 안정돼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업무에만 충실하면 돼 좋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월 수령액이 150만원도 안 돼 생활하기 어렵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럼에도 장애인 문제에 애착이 있는 공무원일수록 포부만큼은 남달랐다.

    “중증장애인 생활시설만큼은 바꾸고 싶습니다. 중증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가면 평생 그 통제 안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설을 나오면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지역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증장애인에게 선택권과 결정권을 보장해주는 거죠. ‘내가 운명을 이끌어가지 못하면 운명이 나를 이끌 것이다’는 말을 자주 되뇌는데 장애인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해나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장수호)

    “제가 일하는 지청에는 장애인이 저 혼자입니다. 제가 잘못하면 모든 장애인에게 누가 될 것 같아 행동 하나하나를 신중히 생각해 합니다. 우리는 혜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중증장애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희 1기생들이 잘해야 2기생, 3기생, 4기생도 많아지겠지요. 보란 듯이 일해 인정받고 싶어요. 앞으로도 노동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직장 갈 기회조차 없는 장애인들에게 일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는 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김동완)

    견고한 공직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한 ‘공직의 새 물결’(http://cafe.daum. net/NewPublic·중증장애인 특채 1기생 인터넷 카페)이 과연 공무원사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직종별 중증장애인 특별채용 2008년 합격자 현황15개 부처 18명
    직급 직렬 부처 선발계획 인원 최종합격
    5급 행정 중소기업청 1 없음
    약무 특허청 1 없음
    6급 행정 조달청 1 없음
    행정 방위사업청 2 없음
    7급 행정 기획재정부 1 1
    지식경제부 1 1
    보건복지가족부 1 1
    공정거래위원회 1 없음
    전산 기획재정부 1 1
    사회복지 여성부 1 1
    통계 통계청 1 없음
    9급 행정 보건복지가족부 1 1
    노동부 2 2
    국가보훈처 1 1
    전산 행정안전부 1 1
    병무청 1 1
    기상무청 1 1
    사서 문화관광부 1 1
    환경 해양경찰청 1 1
    연구사 보건 식품의약품안전청 1 1
    기능 10급 난방 국세청 1 1
    사무 경찰청 1 1
    산림청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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