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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중증장애인 특채 1기 공무원들

“다행히 신은 제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남겨주었습니다”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중증장애인 특채 1기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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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 특채 1기 공무원들

제1기 중증장애인 특채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트럭이 허리를 …

행정안전부 광주정부통합전산센터에서 고객관리를 담당하는 송봉석(36)씨는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가 4시간씩 신장투석을 하면서도 회사생활을 하며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업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싶어 경영대 박사과정을 밟기도 했다. 정부 프로젝트를 받아 일하던 그는 공무원이 되면 더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 싶어 공무원 시험을 봤다. IT 관련 세미나를 주최하고, 고객 만족도를 분석하는 일을 한다는 그는 “발전해가는 공무원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일반 기업 출신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유도영(33)씨. 그는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휠체어 장애인이지만 젊은이답게 자신감이 넘쳤다.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자마자 웨딩홀에서 서빙 알바를 했어요. 군대 갔다 와서는 낮엔 건설회사에서 일하고 야간에 대학을 다녔고요. 사고는 학교 시험이 끝난 날,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했는데, 제가 술에 취해 새벽까지 길에 쓰러져 있었나 봐요. 그때 그만 트럭이 제 허리를 밟고 지나갔다고 해요. 사고 전후 10시간 정도가 기억이 나질 않아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고 해요. 재활병원에서 1년 반 정도 있다 집에 오니 살 수가 없었습니다. 먹고 자고 밤낮 구분 없이 지내려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무작정 강남에 있는 컴퓨터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손은 멀쩡하니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원에서 7개월간 웹마스터 과정을 공부한 그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무상 직업교육을 실시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집이 있는 일산에 직업능력개발센터가 있던 터라 다니기도 쉬웠다. 그렇게 웹프로그램 교육을 9개월간 받은 뒤 대전 직업학교로 전학을 가 6개월간 숙식을 제공받으며 공부했다. 노력 끝에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회사가 어려워지자 또다시 정부 문을 두드려 정보사회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자바(JAVA) 수업을 들었다.



어렵사리 자바 자격증을 땄지만 이번에는 취직이 되질 않았다. “휠체어를 탄다”고 하면 “자바 다루는 일은 파견직이 많아 장애인은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막다른 길에 몰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공단에서 중증장애인공무원 시험 준비반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렇게 그는 6개월간 무상으로 전남 함평 직업능력센터에서 실력을 닦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가면 이런 정보가 수시로 올라옵니다. 한 달에 200만원 하는 수업료를 들이지 않아도 컴퓨터를 배울 수 있어요. 요즘에는 많은 장애인이 이용해 대기해야 할 정도예요.”

기상청 정보통신기술과에서 기상관측데이터를 수집해 유관기관에 배포한다는 그는 공직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조직의 신경망을 담당한다’는 생각에서다. 휠체어에 꼿꼿이 앉아 반듯하게 말하는 그는 영락없는 모범청년이었다.

공직에서 일할 만한 사람

중증장애인 채용 절차는 비교적 간편한 편이다. 서류 전형을 통과한 사람은 면접시험만 보면 된다. 사실상 시험장에는 한 번만 간다는 얘기다. 물론 그 한 번의 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되니 그만큼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7급 공무원 지원자의 경우 주제 발표를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 면접을 본다.

주제 발표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은경씨와 장수호씨는 면접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서류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곤 바로 서점에 가 공무원면접 기출문제집을 두 권 샀어요. 거기에 지금까지 출제된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방향을 잡을 수 있었죠.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매일같이 모의 면접을 봤어요. 여성부를 지원했으니 그 분야 관련 이슈를 집중적으로 정리하고 숙지했어요.” (김은경)

그러나 막상 붙고 보니 이슈 준비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느꼈다고 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나 솔직하고 진실한지, 공직에서 일할 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특채의 경우 경력, 자격증, 학력이 당락을 좌우하는 키포인트이지만 무엇보다 인성이 중요한 요소더라고요.”

장수호씨도 솔직한 답변 덕분에 합격했다고 믿는다. “30분 정리할 시간을 주고 10분간 주제발표를 하는데, 5명 중 최종 저 한 사람이 남았으니 면접이 중요한 과정이었던 거죠. 저도 복지부를 지원해놓고 주제별 이슈를 정리했는데, 면접관이 ‘지금까지 가장 힘든 의사결정이 무엇이었느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느냐’며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질문에 답하면서 제 소신과 성격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실시한 면접캠프에 참여한 이도 있었다. 자신이 지원한 부처에 미리 가본 준비성 뛰어난 지원자도 있었다.

“진주지청에 지원한 다음에 청내에 있는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관찰하면서,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저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김동완)

그러나 이런 면접 기회를 얻기 위해 먼저 통과해야 하는 건 서류전형. 경력사항과 함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소개서다. 지난해에는 708명의 지원자 중에서 107명만이 서류심사를 통과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면접심사를 한 적이 있는데, 천편일률적인 글은 안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A4 용지 한 장에 딱 세 단락만 썼습니다. 왜 일하고 싶은지, 일하면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적어 내려갔죠. ‘다행히 신은 제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남겨주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했죠.”(유도영)

준비 과정은 저마다 다양했지만 기회는 준비한 자들에게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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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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