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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사라지는 기능공들

이주 앞둔 ‘마찌꼬방’ 기능공들의 한숨 “한때는 제조업 강국의 토대,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다”

  • 김수영│자유기고가 futhark@hanmail.net│

[르포] 사라지는 기능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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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조업 강국의 토대였던 기능공들이 사라지고 있다. 도시 재개발로 공장이 외곽으로 밀려나고, 중국과 동남아의 값싼 제품들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 서울 왕십리, 문래동, 청계3가, 부천 원미구 등지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기능공들의 삶터 ‘마찌꼬방’의 오늘.
[르포] 사라지는 기능공들

6월 중순 하왕십리의 한 ‘마찌꼬방’에서 기능공이 용접을 하고 있다.

6월13일 토요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1번 출구 앞. 작은 금형 가게들이 몰려있는 일명 ‘마찌꼬방’ 거리. 굵은 장대비가 닫힌 셔터를 연신 때려도 단 한 곳도 문을 열지 않았다. 일요일도 없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자에 따르면 “장사가 잘되지 않아 몇 년씩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있다”고 말했다.

왕십리뉴타운 3구역 맞은편 대로변은 아직까지 개발의 바람이 비껴간 곳이다. 몇몇 공작소에서 선반작업을 하는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로변 뒤로 한 블록 안쪽에 ‘00 정밀’ 등의 간판을 내건 ‘마찌꼬방’들이 흩어져 있다. 그래도 문을 연 곳은 불과 서너 곳. 머리가 허옇게 센 노동자 몇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제조업의 최하위 단위

‘마찌꼬방’(일본말 합성어로 거리의 ‘하꼬방’ 같은 가게란 뜻)이란 제조업 분야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공장을 일컫는 말이다. 3~4평짜리 좁은 공간에 선반 밀링 연마기 같은 기본적인 공작기계를 두고 사장 한 명에 직원 한두 명이 일한다. 이런 형태의 공장은 광복 이후에 등장해 한때 번성했으나 현재는 서울 청계3가, 문래동, 왕십리동, 부천 원미구 등지에 일부가 남아 있다.

‘마찌꼬방’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대표적인 것은 기업의 재하청(再下請)을 받아 부품 등을 만드는 일이다. 예컨대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가 그중 한 가지를 다른 작은 공장에 맡긴다. 작은 공장은 더 작은 공장에 맡기고, 그 공장은 다시 마찌꼬방에 맡기는 식이다.



다른 하나는 흔히 쓰는 공산품 제작이다. 플라스틱통 빗자루 풀 칼집 식권 액세서리 등 실생활에 쓰이는 물건들은 고급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찌꼬방에서 이러한 물건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산 과정에 일부 참여하고 있다. 제품 만드는 틀을 만드는 금형, 거푸집을 만드는 주물, 금속판에다 음각을 하는 조각, 플라스틱 등의 원료를 금형에 넣어서 모양을 만들어내는 사출, 압력을 가해 모양을 만들어내는 프레스, 철판으로 만드는 판금 등 하는 일은 단순하면서도 다양하다.

지하철 상왕십리역 대로변, 1번과 6번 출구 주변에는 옥제정밀 성진볼트 성광공업사 동진공예 등 낡고 오래된 간판들이 마주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평범한 산동네였지만 길을 사이에 두고 지대가 높은 쪽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낮은 쪽인 하왕십리동 700번지 일대는 왕십리 뉴타운 3구역으로 재개발된다. 작년 4월 관할구청인 성동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아 올 7월이면 이주가 완료된다.

왕십리 일대에 처음 마찌꼬방이 들어선 것은 19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이후 미군정 시기에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에는 청계천변 가게들의 규모와 맞먹을 만큼 성장했다. 특히 왕십리 재개발 3구역에는 현재 수십여 곳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600여 업체가 성업하기도 했다.

‘잠시 외출합니다. 010-466-****’이라고 적힌 한 가게의 미닫이문은 새까만 기름먼지 더께로 덮여 있었다. 문을 밀자 삐걱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순간 뒤에서 누가 불렀다. 퀵서비스 회사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양복바지 차림의 신사였다.

“왜 남의 집 문을 허락도 없이 열어? 다 고철뿐이라 훔쳐갈 것도 없어.”

그는 잠시 외출 중이라는 주인 K씨였고, ‘퀵서비스’라고 새겨진 빨간 조끼를 입은 남자는 그의 동료였다. 주인이 안내한 미닫이 문 안쪽은 지붕이 낮아 굴속처럼 캄캄한 데다 천장과 바닥은 검은 기름때로 반질반질해서 마치 강원도 사북이나 고한의 탄광사무실 같았다. 기계의 마찰열을 줄이기 위해서 쓰던 윤활유의 알싸한 냄새가 건물 곳곳에 배어 있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분위기였다. 밀링기계가 3대, 절삭기 1대, 그 외에도 몇 가지 기계들이 놓여 있고, 구석에는 금형틀이 몇 대 놓여 있었다.

K사장은 29년째 왕십리 같은 자리에서 금형을 만들어왔다. 1978년, 그가 처음으로 만든 제품은 야구장에서 쓰는 작은 플라스틱 라디오의 금형이었다. 그 뒤에 가로등이나 모델하우스 등에 쓰이는 조명기구도 만들었고, 쓰레받기 금형도 만들었다. 한때 8명의 직원을 데리고 일할 때는 월매출이 2억원에 육박했다.

“얼마 전에 잠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 친구는 1980년대에 공장을 접고 아파트를 사고 다른 장사를 시작해서 지금은 10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사는 부자가 됐더군요. 저는 그때 이후 부도를 세 번이나 맞아서 집도 팔고 차압이 들어와 기계마다 빨간딱지 붙이고 그랬지요. 어렵게 사업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빈손으로 나가야 하니 화가 안 나겠어요?”

수천만원 기계가 고철덩어리로

마찌꼬방은 부침이 심해서 부도를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이곳에선 현금거래가 원칙이고, 어음을 받더라도 그 자리에서 할인받는 조건을 요구한다. 직원들 역시 업체가 언제 부도날지 모르다 보니 월급을 미리 당겨 받는 선불을 요구해왔다.

“10년 전쯤 여기서 못 살겠다고 중고기계를 사서 중국으로 간 사람이 많아요. 그때는 기계 시세도 좋았지요. 고생고생하며 버텨봐야 끝이 이겁니다. 지금은 기계를 팔려고 해도 고철값밖에 못 받아요. 집에 있을 수는 없어서 문만 열어놓고 그냥 하루하루 때우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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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자유기고가 futh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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