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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5년 태반 연구’이희철 경남제약 회장

“태반이 당뇨로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워”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15년 태반 연구’이희철 경남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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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너무 앞선 기술력 탓에 도산”
  • ● “2004년부터 태반 붐 타고 급성장”
  • ● “태반 효능 체험…세계적 의약품 개발 박차”
‘15년 태반 연구’이희철 경남제약 회장

이희철 경남제약 회장이 “인슐린펌프를 몸에서 떼어내게 되어 기쁘다”며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레모나’로 유명한 경남제약의 이희철(李熙徹·41) 회장은 한때 태반 때문에 망했다. 태반을 원료로 한 의약품 개발에 투자하다가 회사가 도산한 것이다. 더불어 그는 중증 당뇨병도 얻었다. 그리고 그는 태반 덕에 되살아났다. ‘태반 붐’에 힘입어 그의 회사들은 급성장하고 있다. 태반 원료 분야에서 부동의 1위에 올랐다. 2008년 877억원 매출, 16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태반 연구에 올인한 그의 지난 15년 삶은 롤러코스터처럼 굴곡이 있고 극적이다.

이 회장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숭실대 기계공학과를 나왔다. 그는 대학 3학년 때부터 부친 이일상(74)씨가 경영하는 병원폐기물 처리 회사인 (주)화성위생에서 근무했다. 폐기물 중에는 태반도 섞여 있었다. 이 회장과 태반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태반은 임신 중의 태아를 감싸는 양막과 자궁을 연결하는 곳에 위치한다. 지름 15~20㎝, 두께 2~3㎝의 원형 형태로 출산시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온다.

‘어느 한 분야에 최고가 되겠다’는 신념과 노력은 때때로 사람을 좌절에 빠뜨리기도 하고 성공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 회장에게는 태반이 그랬다. 1990년대 초·중반 아무도 태반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일본에서 태반 추출 의약품이 인기”라는 얘기를 듣고는 생각을 달리했다. 그는 “1994년 ㈜화성산업, ㈜현대개발을 창업하면서 태반에 몰입했다”고 말했다.

“최초로 태반 상용화 연구”

▼ 화성산업과 현대개발은 무엇을 하는 회사였나요.



“병원폐기물 처리와 태반 의약품의 원료를 개발하는, 두 가지 사업을 했죠. 직원은 30명 정도였는데 폐기물 처리에서 많은 수익을 냈어요. 거기서 나온 이익을 태반 쪽에 쏟아 부었습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태반 상용화를 연구했어요.”

▼ 태반 의약품의 원료라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요즘 태반주사제가 널리 알려졌는데요. 당시 일본에서는 제약회사들이 태반주사제를 만들고 있었어요. 우리 회사가 개발한 건 태반주사제에 들어가는 원료였습니다. 태반 이용 한방제품의 원료도 개발했고요.”

▼ 당시 국내에선 생소한 연구 분야였을 텐데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나요.

“태반주사제 원료의 품질 수준은 일본이 가장 뛰어났는데, 일본에서 유명한 공장장을 스카우트해 2년여 동안 제조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 기술 습득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사업적으로 그만한 성과가 나왔나요.

“정반대였죠. 원료개발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996, 97, 98년 3년 동안에는 판매할 곳이 전혀 없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남 의령에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우리 회사 임원이 회사 돈 수억원을 사기당했습니다. 사기 피의자는 나중에 실형을 받았지만 우리 회사는 자금난을 겪었습니다.”

▼ 일본 수준의 제품을 만들게 되었는데 왜 안 팔렸을까요.

“그 기술이 국내 상황에 비해 너무 앞섰던 거죠. 태반주사제 시장이 전무했으니까요. 일본 수출계획도 국내 환경과 일본 것이 안 맞아 성사되지 못했어요. 결국 내가 서른여섯 살 되던 2004년 초 회사는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살던 아파트도 경매로

이 회장은 “공장은 물론 살던 집까지 날렸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51평형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경매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가장으로서 집까지 잃게 된 데 대해선 “기업 오너는 회사가 잘못되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면서 “내 가족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 그는 절치부심,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투자자를 모았다. 한 번만 더 태반을 믿어보기로 했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경매로 낙찰받은 사람에게 5000만원을 더 얹어 8억여 원을 주고 화성신약의 부동산, 기계 등을 되찾았다.

“재산을 다 날리니 갑자기 서광이 비치더군요. ‘더욱 더 나를 버리자’ 이렇게 생각했죠. 일이 쉬워졌습니다.” 이렇게 하여 ㈜화성바이오팜을 띄운 게 2004년 말. 그런데 2005년부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토록 고대하던 태반주사 선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 화성바이오팜으로 미지의 태반 시장에 재도전장을 던진 것인데, 이번엔 운이 따랐나 봅니다.

“실력, 기술력이 있으면 언젠가는 된다고 믿고 장장 10여 년을 버티다 망했죠. 그런데 망했다 다시 일어서자 의외로 빨리 운이 찾아오는 거예요. 2005년부터 17개 제약회사에 태반 원료를 납품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겁니다. 주문량이 점점 늘어났어요. 화성바이오팜의 매출은 2006년 51억원, 2007년 106억원, 2008년 150억원으로 급증했어요. 내용도 알찼습니다. 2008년의 경우 매출의 절반이 넘는 8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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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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