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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출생 연도가 성공을 결정한다

“벤처창업자 1965~68년생 부잣집 아들 연예산업 스타 1970~72년생”

  • 정해윤│미래문화신문 발행인 kinstinct1@naver.com│

당신의 출생 연도가 성공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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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신화에는 보편적인 줄거리가 있다. 가난한 젊은이가 불굴의 신념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콤 글래드웰의 신간 ‘아웃라이어’는 이 같은 공식을 깨는 역작이다. 그는 성공이 개인의 노력과 시대적 행운이 결합돼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폴 앨런 등 정보통신(IT)업계의 선구자들에 대해서도 ‘태어난 해(1953~1956년)’가 성공의 결정적 요소였다고 주장한다. 정해윤 미래문화신문 발행인이 ‘아웃라이어’ 분석틀을 활용해 한국 사회의 ‘성공 공식’을 조명했다.‘편집자’
당신의 출생 연도가 성공을 결정한다
시장 권력자들의 탄생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 중 20%가 ‘1830년대에 태어나, 미국에서 경제활동을 한 인물’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남북전쟁은 이들에게 축재(蓄財)의 기회가 됐다. 이후 미국은 영국을 제치고 최고의 산업국가로 발돋움하는데, 이들은 그 기회를 타고 거부(巨富)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큰 전쟁을 통해 거부들이 탄생한다는 것은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법칙이다. 현재 일본과 독일의 산업재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흥의 물결 속에서 성장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태어난 이들이 한국의 대표적 산업자본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6·25전쟁과 관련이 있다. 3년간 계속된 전쟁은 구체제의 종말을 의미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하게 하는 기회의 평등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 같은 기회가 주어졌을 당시, 50대는 재기하기에 너무 많은 나이였고 30대는 아직 젊은 나이였다. 실제로 전쟁 직후 30대 후반이던 정주영은 1960년대에 들어서서야 주목받는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반면 40대의 구인회, 이병철은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 부산에서 재기에 성공한다. 특히 이들과 비교해보아야 할 대상은 전 시대 최고의 기업가였던 화신백화점의 박흥식(1903년생)이다.

진보진영의 역사관은 일본 제국주의 질서가 현재의 대한민국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식민지시절 조선 최고의 갑부이자 반민특위 1호 구속자였던 박흥식의 행로는 이를 검증하기에 좋은 사례다. 진보진영의 역사관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그의 후손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록펠러 가문이 돼있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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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은 그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 도태됐다는 것이다. 반면 빈농의 아들 정주영은 거부로 성장했다. 이는 ‘해방전후사’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주류들이 태동한 배경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의 ‘시장 권력자들’을 설명하기 위해선 ‘해방전후사’가 아닌 ‘6·25전후사(戰後史)’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6·25전쟁이 끝났을 때 박흥식은 이미 50줄에 들어서 있었다. 새롭게 재기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게다가 전 시대 기업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이미지는 정치적 단죄를 짊어지게 했다. 그는 광복직후 반민특위에 한 번, 5·16군사정변 직후 부정축재 혐의로 다시 한 번 옥고를 치렀다. 이것이 젊은 경쟁자들에 비해 조금씩 뒤처진 이유가 됐다.

시장의 권력자가 탄생하는 과정은 ‘한국 사회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미신을 걷어낸다. 6·25전쟁은 김일성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의 ‘해방전쟁’이 됐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했다.

3김의 ‘정치독점’ 이유

한국과 같은 권위주의 문화에서 선배들을 제치고 나아가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현대사를 살펴보면 이를 실행한 두 그룹을 발견하게 된다. 1970년대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1920년대생들과 한참 후에 등장한 386세대가 그들이다. 이들 1920년대생 정치가들은 어떻게 선배들을 제치고 오래도록 권력을 누릴 수 있었을까.

도덕적 명분이 중요한 정치권에서 3김은 친일 시비에서 자유롭다. 이들보다 10여 년 먼저 태어난 박정희가 젊은 시절 몇 년간의 행적으로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한 것에 비한다면, 광복 후 성년을 맞은 것은 정치인으로서 유리한 점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은 역설적으로 박정희였다. 5·16은 이전까지 첩첩이 쌓여있던 구세대의 인적 정체를 깨뜨려버렸다. 이는 야당에도 세대변화를 촉진시켰다. 박정희가 두 번에 걸쳐대선후보로 맞붙었던 윤보선은 19세기에 태어난 인물(1897년생)이었다. 야당으로서는 ‘꿩 잡는 매’의 역할을 젊은 후보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1971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이 내세운 ‘40대 기수론’은 이런 상황을 간파한 정치적 승부수였다.

하지만 당시 선배들이 호락호락하게 권력을 넘겨주었을 리 없다. 야당 당수 유진산은 ‘젖비린내가 난다’고 젊은 도전자들을 격하했다. 지금은 온갖 구태의 근원처럼 보이는 박정희와 3김이지만, 당시로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참신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배들을 제친 당돌한 세대가 후배들에 대해서는 정작 상반된 역할을 한 데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자신들의 시대를 열었지만, 그 후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은 자연적인 기력이 쇠한 80대가 가까운 시점에서였다.

정치권의 세대교체 문제를 보면 한국사회의 세대 간 대립이 어떤 질서 속에서 진행되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3김 시대에 도전하는 이들이 부딪혔던 공고한 벽은 ‘후계자는 스스로 자란다’는 논리였다. 한마디로 세대 간에 ‘맞짱’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그런 논리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역과 성별 등의 문제에 대해 평등을 주장했던 이들이 빠진 큰 오류는 ‘세대’ 또한 하나의 사회적 계급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투표대결을 하고, 남성과 여성이 승진경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는 부당성을 지적하면서도, 세대에 관한 한은 철저히 진화론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시대를 잘 타고난 이명박 대통령

3김의 시대를 지나고 386이 떠오르기 전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뚜렷한 인물군을 찾기 어렵다. 이기택과 김상현은 평생 2인자 노릇만 하다가 잊혀갔고, 한때 기세등등하던 김우중도 한여름 밤의 꿈이 됐다. 물론 4·19세대와 6·3세대가 있지만, 그 존재감에서 앞 세대와 비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들은 불행한 세대인가. 만일 그들이 대권이나 재벌을 꿈꾸었다면 불행한 세대다. 하지만 ‘1930~50년대 세대’는 소시민으로 살기에는 비교적 행복한 시기였다. 이들 세대에서 개발연대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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