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이명박의 승부수, 중도강화론의 속살

서민, 실용은 ‘MB다움’의 본질… 가운데 서서 양쪽을 아우르겠다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09-08-01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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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이 화두로 던진 중도, 실용, 서민, 소통이 정가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중도강화론의 배경과 미래를 추적했다.
    이명박의 승부수, 중도강화론의 속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어려운 이웃 초청 오찬 행사에서 서울 망우동 우림시장 노점상인 최정자씨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친(親)서민은 이 대통령의 고유브랜드라고 말했다.



    중도(中道), 실용(實用), 서민(庶民), 소통(疏通).

    이명박 대통령이 6월15일 정례 라디오연설에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풀기 위해 ‘근원적 처방’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시점을 전후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사실 이명박 정부 출범 과정 때부터 귀에 익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라는 우파적 구호를 외치면서도 한편으론 ‘중도 실용’과 ‘서민’을 표방했다. ‘소통’이란 말도 대선 때 강조한 동서화합, 계층갈등 해소 같은 공약에 다 배어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하는 라디오 연설도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근원적 처방

    그럼에도 정권 출범 1년 반 만에 이런 단어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해 논란거리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이념적·지역적 분열,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 정쟁의 정치문화를 지적한 뒤 “고질적인 문제에는 대증요법보다는 근원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근원적 처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단기적으론 인적 쇄신을 단행하고 장기적으론 정치문화를 바꾸는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류를 보면, 정치권에서 거론된 인위적 처방보다는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서민을 위한 중도실용 노선을 추구하는 정책으로 고질적인 문제를 풀겠다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 직후 단행한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인사 결과에서도 그런 흐름이 읽힌다. 이 대통령은 6월21일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과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을 각각 새 검찰총장과 국세청장에 내정했다. 두 사람 모두 하마평에 오르지 않은 의외의 인물인데다, 나란히 충청지역 출신이란 점이 눈에 띄었다. 당초 두 자리에는 TK(대구·경북) 출신이 유력하게 물망에 올라 있었다.

    도덕성 시비에 휘말린 천 검찰총장 후보자의 자진 사퇴도 빠르게 진행됐다. 일본에서 골프를 치고도 거짓말했다는 보고에 이 대통령은 “거짓말하면 안 되지. 안 되겠구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천 후보자의 서울 강남 80평대 아파트 구입, 스폰서와 골프여행 동행 등이 이 대통령의 친(親)서민 행보와 소통에 어긋난다고 판단, 바로 검찰총장 후보 내정 철회 조치를 취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중도 실용 서민 소통이라는 국정운영 키워드에 집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현 시점에서 중도, 실용, 서민, 소통이 국정 운영의 키워드로 재등장한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새 정부 출범 초와 비교해 그런 곳에 눈 돌릴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라가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외교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잘하고 있고, 경제도 회복하고 있으니 이제는 이른바 정치·사회적 이슈에 좀 더 집중해도 되겠다, 시간을 할애하고 좀 더 고민해야겠다는 성찰에 생각이 이른 거죠. 주변 여건이 그런 부분에 손이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이 대통령이 보신 겁니다. 사실 지난해에는 집토끼 챙기느라 바쁘지 않았습니까? 여러 가지 외풍이 거세게 불었죠. 그렇게 보면 적합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배경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5월23일) 이후의 비상한 정국이 중도, 실용, 서민,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꺼내들게 한 직접적 요인이 된 측면이 짙은 게 사실이다.

    5월29일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을 전후한 시점부터 7월10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49재와 안장식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조문(弔問)정국의 후폭풍은 정권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다 4·29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시작된 한나라당 소장파의 쇄신운동이 재점화할 태세였던 까닭에 청와대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근원적 처방을 언급한 것은 “최근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국민 여러분께서 마음이 혼란스럽고, 또한 이런저런 걱정이 크신 줄로 알고 있다”는 말을 꺼낸 뒤였다.

    “노 전 대통령 서거나 여당의 쇄신운동도 그런 방향 설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이 대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식의 대증요법보다 더 근원적인 게 이른바 중도강화입니다. 좌파정책도 필요하다 과감히 가져다 쓰는 것, 그게 실용이거든요.”

    이 대변인은 중도강화론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다만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어요. 우리는 자기 원칙을 가지고 가운데에 서서 우리가 가진 국가적 정체성, 자유민주, 자유경제, 법치, 세계화 같은 가치관을 지키면서 양쪽을 다 아우르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종의 ‘투 트랙’으로 보면 됩니다. 단순히 유연한 행보를 한다는 게 아니에요. 원칙에 관한 것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중도실용을 찾는다는 의미지요. 그렇지 않으면 ‘중도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의 승부수, 중도강화론의 속살

    이명박 대통령이 6월25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상가를 방문해 민생탐방을 하던 중 길에서 마주친 대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치 쇼에 불과하다”

    야당의 시각은 청와대의 설명과 사뭇 다르다. 김대중 정부 때 핵심인물이었던 야권 인사는 “권력 초기, 위기에 빠진 이 대통령이 국면전환을 위해 새로운 어젠다를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그는 “지금 상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 한나라당에 제안한 대연정(大聯政)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던진 화두를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담판과 연결한 이 인사의 분석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정치쇼에 불과하다”고 일갈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여권은 중도, 실용, 서민, 소통을 국정의 키워드로 잡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진다. 6월8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정길 대통령실장, 맹형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이명규 의원(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이 만났다. 이 의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서류 한 묶음을 꺼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정국을 분석하고 대처 방안을 담은 당 차원의 보고서였다. 이 의원이 설명하던 중 청와대 측과 가벼운 언쟁이 오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국민들이 이 대통령에 대해 강한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은 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이미지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 이 대통령은 ‘부자 대통령’ 이미지가 고착돼 있다. 이 대통령은 이미지부터 바꿔야 한다.”(이명규 의원)

    “무슨 소리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의 70%가 친(親)서민 정책이다.”(청와대 측)

    “그건 청와대 생각이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이명규 의원)

    전략기획본부의 보고서엔 구체적인 현실 인식과 대응 방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보고서를 보여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그건 안 된다”고 거절했다.

    “박희태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에게도 같은 내용을 보고했지만 보고서는 보여만 주고 다시 가져갔다. 자아비판이 담겨 있어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A4용지로 10쪽 분량인 이 보고서는 냉철한 자아비판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추모 물결이 전국을 뒤덮은 이유가 뭐냐.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잘해서가 아니다. 이 대통령에 대해 쌓인 불만과 실망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좋아하지 않지만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이 후보에게 표를 던진 국민이 적지 않은데, 이후 그들을 전혀 껴안지 못했을뿐더러 기존 지지층도 다 놓쳤다. 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서민 대통령’으로 바꾸는 것이 국민 속으로 다가가는 지름길이다. 국민은 정치적으로 이성보다 감성, 포퓰리즘에 익숙하다. 따라서 이미지화할 정책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서민이 모르면 아무런 소용없다. 여러 정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민정책이다.”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는 지난해 9월 촛불집회 사태가 마무리됐을 때도 청와대에 보고서를 냈다. 당시 보고서에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강조했다. 당시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종합부동산세 인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 출범 초 종부세 인하를 시도했다. 그것이 결정타였다. 완전히 한 방 먹었다. ‘부자 정당’ ‘부자 대통령’ ‘친기업’ 이미지가 굳어졌다. 경제논리만으로 모든 문제에 접근해선 안 된다.”

    이 의원은 “1차 보고서는 묵살되다시피 했으나 비슷한 내용의 2차 보고서는 청와대가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2차 보고서를 받은 이튿날 이 대통령에게 이 보고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고서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 직후 이 대통령은 친서민 행보에 나섰다.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는 곧바로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영향을 미쳤다.

    7월10일 윤진식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청와대 정책소식지에 ‘서민 여러분의 생활, 이렇게 달라집니다’라는 글을 올려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친서민 정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중산층을 두껍게, 서민을 따뜻하게

    이 대통령이 최근 강조하는 키워드가 한나라당의 아이디어라는 이 의원의 주장과 관련해 이 대통령과 자주 독대하는 정부의 한 고위인사는 “당에서도 기획했겠지만 그것은 이 대통령의 오래된 지론”이라고 말했다. 이동관 대변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보고서야 당에서도 올라오고 홍보기획관실이나 정무수석실에서도 내고 그러는 것이죠. 그런 것들을 종합해서 대통령께서 결정을 내리신 거고요. 원래 대선 때 우리 구호가 중도실용 아니었습니까. 친서민도 있었고요. 기본 콘셉트는 ‘MB다움’으로 돌아가자는 거였습니다. 두 개의 축이 있는데, 한 축은 친서민, 소통 강화입니다. 다른 한 축은 원칙을 지키는 대통령이고요. 그래서 ‘MB다움’의 회복이라는 개념이 선 것이고,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신 거예요. 누가 아이디어를 냈다기보다는 전적으로 대통령께서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철학이고 고유브랜드죠.”

    ▼ 기존 지지층의 이탈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았는지요.

    “그래서 우리가 새로 내놓은 슬로건이 ‘중산층을 두껍게, 서민층을 따뜻하게’아닙니까? 그런 개념으로 가는 겁니다.”

    ▼ 최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40%대를 회복했습니다.

    “중도강화를 모토로 삼아 친서민 행보에 나선 게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받았겠지요. 우리 생각엔 대통령께서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인 것도 여론에 반영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번에 한- EU 자유무역협정(FTA)이 합의된 것도 또 다른 외교적 성과로 기록될 거고…. 이런 것이 좀 더 확산되면 지지율이 안정될 것으로 봅니다.”

    충청연대론

    ▼ 한반도대운하 추진 포기 선언처럼 큰 구상이 차질을 빚지는 않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대운하를 포기했다고 단정하는 것보다는, 임기 중에 하지 않겠다는 거죠. 정확하게 말하면. 현실적으로 임기 중에 대운하까지 할 타임 스케줄이 안 나와요. 국민이 4대강 개발하는 걸 보신 뒤에 ‘아 이게… 물 관리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확산되면 대운하는 다음에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문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국정 운영의 큰 그림이 바뀌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7월9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중도에 대해 얘기가 많은데 당연히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갑작스러운 쇼가 아니라 이 대통령이 늘 갖고 있던 생각을 되살려 국민에게 호소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고위관계자와 이 대변인이 말한 ‘MB 브랜드론’과 비슷한 의견이다. 최 위원장은 “중도강화론은 ‘4중(中) 전략’을 뜻하는데, 이념적으로는 중도, 계층적으로는 중산, 연령적으로는 중년, 지역적으로는 중부, 이 4중 전략이 선거전에서 가장 기본”이라고도 말했다.

    이 대통령이 화두로 던진 중도, 실용, 서민, 소통은 여의도 정가에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민주당은 ‘MB식 이미지 정치’라고 깎아내린다. 정세균 대표는 “중도, 서민, 중도실용으로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이명박 정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민주당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조문정국의 효과가 소멸하는 상황에서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의 외연이 커지면 ‘서민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에 악재가 되리라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원조 보수 집단’을 자처하는 자유선진당은 또 다른 의미에서 중도강화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회창 총재는 “우나 좌, 보수나 진보의 이념을 떠난 무색투명한 중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환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명박 정부와 이념적 벽을 쌓은 셈이지만 현실정치에서 자유선진당은 또 다른 딜레마에 빠졌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4대 어젠다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나라당 일각에서 ‘충청연대론’을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충청연대론의 골자는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의 공조를 통한 보수대결집이다.

    이 같은 여권 주류의 구상에 대해 충청지역의 맹주 격인 자유선진당은 혼란스러운 모습을 나타낸다. 이회창 총재는 6월 말 자유선진당 인사의 입각설을 중심으로 한 충청연대설이 나왔을 때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7월9일 라디오 인터뷰에선 “정책 목표나 정치상황에서 연대, 공조한다고 하면 그런 틀 위에서 총리고 장관이고 하는 것은 좋다”고 말했다. 양측 사이에 상당한 수준의 물밑 교감이 이뤄졌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 총재의 의견이 180도 선회하자 정가에선 ‘한-자(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동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근혜의 권력 의지

    반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충청연대론이 박 전 대표 견제 카드가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가뜩이나 박 전 대표의 천적(天敵)인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여권 주류의 주도권을 급속히 장악해가는 마당에 자유선진당마저 친이 주류와 손을 잡으면 박 전 대표는 그만큼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남 출신을 중심으로 한 친박 진영의 일부 인사들은 “친이와 친박이 대화합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친이 진영에서도 “지금은 한-자동맹을 추진할 때가 아니라 다시 한 번 친박 끌어안기를 시도할 때”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여권 주류가 한-자 동맹에 나선 것을 기점으로 친이와 친박의 화합은 물 건너갔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수차례 러브콜을 보냈을 때 친이의 핵심은 이 대통령의 형으로 화합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었다. 그러나 이 전 부의장이 2선으로 물러나고 전투형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부각되면서 이 전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 끌어안기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 의견이다. 중립 성향인 한나라당 재선의원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의 도움 없이는 결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여당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친박계가 차지하고 있고, 특히 영남권을 장악한 박 전 대표가 비틀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1년 반 동안 지켜보지 않았나. 박 전 대표도 차기 대통령이 되려면 이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현 여권 주류 세력인 친이가 ‘박근혜 대권 가도’에 훼방을 놓을 수단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다들 이런 사정을 아는데 딱 두 사람(이 대통령, 박 전 대표)만 모른다.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일보 직전까지 와버렸다.”

    그러면서 그는 흥미로운 분석을 덧붙였다.

    “MB가 박 전 대표 끌어안기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아직까지 차기 정권 창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5년 동안 열심히 해서 평가받으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생각인 것 같다. 이는 아마도 기업 CEO적인 시각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기업인은 후임자의 역할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가 실적이 좋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대통령이 던진 4대 화두도 곱씹어보면 한나라당의 정체성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박 전 대표의 대응도 주목된다. 7월 초 몽골 방문 때 동행한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그간의 모진 삶이 화제에 오르자 그는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운명에 지지 않을 거예요.”

    동행한 기자들은 이를 권력에 대한 의지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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