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소설은 그림을 사랑해!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09-10-05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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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그림을 사랑해!
    그림을 사랑한 소설, 소설들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걸 주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내 얼굴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트.’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그게 다였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 움직이지 마라.’ 그는 나를 그리려 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라’고 말하고 그가 그린 그림은 ‘진주 귀고리 소녀’. 그가 화폭에 담은 그림 속 그녀는 푸른 두건을 두른 채 몸을 옆으로 살짝 돌리고 정면(그러니까 우리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라도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멎을 듯, 숨이 막힌다.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맑고 촉촉한 큰 눈동자, 그리고 무심한 듯 살짝 벌린 입술. ‘움직이지 마라’고 말하고 그녀를 그린 그의 이름은 베르미르,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다.

    캐나다의 트레이시 슈발리에라는 여성은 젊은 시절 유럽으로 여행을 갔다가, 미술관에서 이 화가의 이 그림을 보게 된다. 그녀는 유럽 여행 중에 그 그림뿐 아니라 수많은 걸작을 보았다. 그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그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한 편의 그림이 있었다. 바로 옆으로 몸을 살짝 돌린 채 무심히, 그러나 간절히 무엇인가를 호소하듯 그녀를 바라보던 맑고 촉촉한 큰 눈의 소녀, ‘진주 귀고리 소녀’. 그녀는 그림 속에 담긴 신비로운 표정의 소녀의 환영에 사로잡혀 자신의 방에 그 그림을 걸어놓고 15년을 동고동락한다.

    그 끝에 그녀는 마침내 베르미르의 그림과 똑같은 제목의 또 다른 작품을 창조한다. 바로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가 그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전세계의 독자에게 ‘진주 귀고리 소녀’의 신비를 전한다. 소설은 다시 영상으로 옮겨져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똑같은 제목으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17세기 북유럽 네덜란드에서 베르미르라는 화가가 그린 한 소녀의 초상은 21세기 북미의 트레이시 슈발리에라는 여성 작가에 의해 소설로 다시 태어나고, 소설은 영국의 감독 피터 웨버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소설의 이야기와 그림의 풍경을 정교하고 아름답게 재현한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처럼 일상에서 멀리 떠나 낯선 장소에서 마주친 한 장의 그림으로부터, 또는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건네받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소설이 탄생하는 예는 소설사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의 소녀’가 한 편의 그림으로부터 잉태되었다면, 한국의 젊은 작가 김연수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출발한다.

    “처음에 나는 그 사진이 남양군도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카우치 위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세상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담긴, 가장자리가 불에 그슬린 사진이었다. 불길의 자취는 사진 아래쪽에 반원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검은 그 반원의 양 옆으로는 ‘Pier…s 1895’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눈의 거리만큼 떨어진 한 쌍의 조리개로 찍은 흑백 누드사진 두 장이었다. 사진을 눈에서 멀찌감치 떼어놓고 두 사진이 서로 겹쳐지도록 만들면 그 가운데 환영처럼 여인의 나체가 입체적으로 드러났다.”

    또 우리 시대의 유쾌한 이야기꾼 성석제의 단편 ‘욕탕의 여인들’은 아예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아름다운 그림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들’로부터 소재를 빌려 쓴 소설로, 돈 많은 과부나 부잣집 여자를 만나 팔자 좋게 살아보려는 보통 남자의 로망을 그린다. 르누아르의 ‘바느질하는 여인’ ‘파라솔을 쓴 소녀’ 그리고 ‘도시에서의 춤’ 등 소설 갈피갈피에 제시되는 그림들은 독자에게 소설을 읽는 재미와 함께 미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첫 장 ‘바느질하는 여인’의 시작은 이렇다.

    “스무 살 무렵 내 꿈은 그 당시 유행하던 농담처럼 ‘돈 많은 과부하고 결혼해서 평생 놀고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부가 대자연의 순리에 따라 나보다 일찍 죽으면 젊고 예쁜 여자를 새로 만나서 남은 인생을 구가하자는 아름다운 계획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타고난 난봉꾼이 아니고 그렇다고 구제불능의 게으름뱅이도 아니다. 나이 스무 살에 그따위 생각이나 하는 한심한 인간이라고 여길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내가 먼저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대꾸해주고 싶다.”

    그런가 하면, 남미 페루 출신으로 현대 스페인어권의 대표적인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성석제보다 한술 더 떠서 장편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노트’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병치하며 현대사회의 성과 사랑의 풍속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인간 쾌락의 백과사전이라 불릴 정도로 에로티시즘의 정수로 꼽히는 이 소설은 낮에는 평범한 보험업자이지만, 밤에는 도색작가이자 예술 애호가이고, 그림 수집가인 리고베르토씨의 성적 환상이 투영되어 있다. 이야기는 루크레시아라는 여주인과 열네 살짜리 의붓아들 폰치토라는 소년, 그리고 그 아버지 리고베르토의 삼각구도로 진행되는데, 폰치토는 자신을 에곤 실레로 동일시하고, 아름다운 계모 루크레시아로부터 에곤 실레의 그림 속 여인들의 포즈와 분위기, 표정 등등을 포착한다. 남미 특유의 현란함에 천부적인 이야기꾼 요사의 예술적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소설은 에곤 실레의 그림들과 맞물려 화려하고 퇴폐적이며 도발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소설의 서두부터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루크레시아 부인은 문을 열러 갔다. 문틈으로 보이는 루크레시아 부인은 산 이시드로 올리바르 공원의 허옇게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초상화 속 인물 같았다. 폰치토의 노란색 고수머리와 푸른 눈이 보였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박민규의 소설이 사랑한 그림, ‘라스 메니나스’

    그리고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아니 ‘라스 메니나스’. ‘라스 메니나스’는 박민규 신작 장편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를 장식한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그림의 제목이자 이 소설 첫 장의 제목이다. 세상의 모든 연애소설이 그렇듯 이 소설의 첫 문장 역시 짧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이런 첫 문장들은 언젠가 한 번쯤 써본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언젠가 자신의 청춘의 어느 장면을 보는 듯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었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러니까 이 첫 문장 속의 ‘그녀’를 찾아가는 추억의 여행이자 추억 속의 ‘그녀’를 위한 헌사다. 그녀는 누구인가. 우리는 연애소설의 주인공들을 기억하고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마담 보바리’의 엠마 보바리, ‘롤리타’의 롤리타,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 ‘리진’의 리진…. 작가들은 소설의 여주인공을 창조하면서 절대미의 기준을 독창적으로 제시해왔다. 또한 우리는 연애소설의 공식도 잘 알고 있다. 세상의 남성들은 절대미의 그녀들을 가슴에 품고, 소유하려고 하고, 세상의 여성들은 절대미의 그녀들에 의해 은밀히 웃거나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첫 문장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다’는 연애소설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이야기를 쫓아가다보면 여주인공의 공식은 철저히 배반된다. 눈을 맞으며 서 있던 그녀라는 첫 문장의 실루엣은 우리의 가슴을 뒤흔들지만, 사실 그가 사랑한 그녀는 누구도 사랑할 것 같지 않은 못생긴 여자. 그러니까 이 첫 문장은 소설의 화자인 성공한 중년의 작가가 스무 살 무렵에 사랑했던 못생긴 그녀를 회상하는 장면으로출발하는 것이다. 못생긴 그녀를 떠올리게 한 것은 한 편의 음악,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다.

    박민규가 제목을 따온 이 음악은 사실은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를 본 뒤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음악. 그러니까 태초에 ‘라스 메니나스’가 있었고, 그리고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있었고, 또 그리고 박민규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있고, 그 소설의 첫 장 ‘라스 메니나스’가 있는 것이다. 소설을 둘러싼 원전(原典)의 출처가 서로 쫓고 쫓기듯이 맞물리며 퍼즐 맞추기처럼 보이는데, 이들로부터 하나의 모티브를 추출하자면, 세상의 눈부신 여자들 옆에 들러리 선 ‘못생긴 여자’다.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를 감싸고 있는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의 우리말 번역은 ‘시녀들’이다.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를 17세기의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리는 아틀리에를 액자식으로 재현한 그림이다. 당시 유럽의 화가들은 왕실 또는 바티칸 소속으로 왕과 왕녀, 교황과 순교자들의 초상을 그리는 데 그들의 첫 번째 임무가 주어졌다. 그런데 이 벨라스케스는 당시의 관례와는 다르게 ‘왕녀 마르가리타’를 제목으로 하지 않고, ‘시녀들’을 내세웠다(화가의 또 다른 그림으로 단독 초상화 ‘왕녀 마르가리타’가 그려져 유럽의 내로라하는 미술관 벽에 걸려 있긴 하다).

    유럽의 왕궁에는 어린 왕녀의 시중을 들며 즐겁게 해주기 위한 구성원들이 있는데, 시녀들과 난쟁이 그리고 개가 빠지지 않는다. 박민규 소설의 여주인공 그녀는 화폭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 왕녀 마르가리타의 시중을 들고 있는 시녀들, 그중에서도 그림 전면의 오른쪽 옆 구석에 서 있는 뚱뚱하고 못생긴 난쟁이 시녀로부터 환기된 스무 살 무렵의 첫사랑이다.

    “라벨을 듣는다. 또다시 재생되는 그날의 음악처럼 나는 그 벌판과…눈과…나무들과…그녀를 떠올린다.”

    작가가 고백한 대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길고 긴 연서(戀書)를 쓰는 마음으로 ‘못생긴 여자와, 그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소설’이다. 작가는 지금까지 연애소설이나 영화, 그림 등 예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못생긴 여자에 대해 눈길을 돌린 적이 없다고 단언하고, 이 소설이야말로 미(美)의 소수자들인 못생긴 그녀들을 위한 것이라고 과감하게 쓰고 있다.

    그런데 벨라스케스가 ‘라스 메니나스’를 그린 17세기와는 달리, 현대 모더니즘의 역사는 고정된 미의 답습이 아니라 추(醜)의 이면에 깃들어 있는 숭고의 미를 발견해내는 혁명의 역사가 아니던가. 박민규의 희귀한 연애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니 어느 시인의 전언처럼 왼쪽 가슴께가 저며 온다. (후기: 소설을 읽는 내내 음악이 함께 했다.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아니다. 이 소설을 위한 백그라운드음반((BGM) Mushroom-‘눈물’ ‘그런, 그녀’‘슈크림’ 어쿠스틱 기타연주 ‘눈물’. 추억의 결정(結晶)처럼 투명하고, 알싸하다. 음악이 흐르는 한,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지음/ 예담/ 420쪽/ 1만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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