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플루의 교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강의실 앞에서 체온을 재고 있는 상명대학교 학생들.
바이러스를 직접 죽이는 식의 치료제가 아니기 때문에 타미플루는 항바이러스제 혹은 뉴라미니다제라고 불린다. 타미플루의 효능은 인삼이나 도라지에 많이 함유된 사포닌의 효능과 비슷한 점이 많다.
타미플루의 주원료는 대회향(팔각 회향) 혹은 스타아니스라 하는 향신료다. 주로 베트남 수프나 중국식 돼지고기 요리에 쓰이는 음식재료이자 약재인데 잡냄새를 없애는 데 효과가 좋다. 티베트음식점에서 식사 후에 대회향을 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씹어서 입 냄새를 없애라는 뜻이다. 중국의 유명한 한의학자인 도홍경은 대회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냄새나는 고기를 삶을 때 이것을 넣으면 냄새가 사라지며 장(醬)류의 부패한 것에 이 것을 빻은 가루를 넣어도 역시 향기로워진다. 그래서 회향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대회향은 전염병을 막는 치료제로도 오랫동안 쓰였다. 한의학의 대표 고전인 본초강목에는 대회향의 효능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장질부사나 학질에 발열이 심하여 목 부분이나 등으로 열이 오르면 회향을 짓이겨서 즙을 복용한다.”
서울 정부중앙청사에 마련된 신종 인플루엔자 대응센터.
신종 플루가 전세계적으로 창궐하자 최근 중국 정부는 국민에게 팔각회향의 섭취를 권고해 관심을 끌고 있다. ‘대회향의 8분의 1을 씹어서 먹되 껍질은 버리라’거나 ‘팔각회향 2~3개를 방안이나 차안에 두어 향기를 맡거나 물 1~1.5ℓ를 부어 노란색이 날 때까지 40분가량 달여서 노란 설탕을 넣어 마시라’는 구체적인 복용법까지 홍보할 정도다.
타미플루의 주성분은 ‘시킴산’
신종 플루와 같은 전염병을 막을 가장 좋은 방법은 면역을 강화하는 것이다. 인체와 병원체 간의 대결에서 인체가 이길 수 있도록 면역력을 높이는 것보다 더 좋은 치료방법은 없다. 몸이 건강하고 면역 기능이 강화되면 이물질인 병원체가 쉽게 공격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내 몸을 어떻게 강화하느냐는 건강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사의 문제에 가깝다.
신종 플루와 같은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다. 그것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은 모두 숙주인 생명체가 제공한다. 생명체가 적당한 영양분과 온도와 습도를 제공할 때 그들은 자신의 서식지로 인체를 선택한다. 바이러스는 악의를 가지고 인간을 대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조건은 몸이 허약하고 체온이 낮으며 피부의 기능이 약한 사람이다. 바이러스가 약한 자를 공격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자연섭리에 가깝다. 이와 관련, 중국 삼국시대 조조의 아들 조식(曹植)은 건안 22년(서기 217년)에 발생한 역병에 대해 이렇게 적기도 했다.
사포닌과 비슷한 효능
“건안 22년, 전염병이 유행하였다. 집집마다 엎어진 시체들이 즐비한 아픔을 겪었으며 방마다 통곡하는 슬픔으로 가득 찼다. 대체로 그 병에 걸린 사람은 베옷을 입고 콩을 먹는, 그리고 짚으로 엮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대궐 같은 집에서 솥에 밥을 해먹고 사는 사람이나 요를 두껍게 깔고 자는 사람 중에서는 이 병에 걸린 이가 드물었다.”
고전 한의학서에는 몸을 강화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 처방을 소개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세시 풍속과 관련되어 있다. 다음은 1542년 발간된 ‘간이벽온방’에 등장하는 처방 중 하나다.
“설날에 파, 마늘, 부추, 염교, 생강 등 다섯 가지 매운 음식을 먹어라.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어라. 칠석날 모두가 모여 팥 14매씩을 먹어라. 배추를 잘게 썰어 술에 섞어 먹어라. 솔잎을 잘게 썰어 술에 섞어 먹어라.”
구체적인 처방도 나와 있다. 백출 부자 길경 세신 오두 등 다섯 가지 독성 약재를 섞어 만든 신명산, 인삼 복령 백출 감초를 섞어 만든 신명단 등이 그것이다. 모두 몸을 따뜻하게 만들고 피부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인 약재들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에서는 이러한 한의학적인 면역법을 미신, 혹은 주술적인 것으로 치부할 뿐 의학적인 분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의학 재료인 대회향에서 신종 플루의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만들어내는 현실임에도 한의학을 바라보는 서양의학의 인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면역 강화가 필수
지금은 한의학이 보약을 짓는 대체의학으로 전락했지만 한의학의 탄생은 사실 전염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의학 처방의 원조라 불리는 장중경의 저서 ‘상한론’의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나는 종족이 많아서 전에는 200이 넘었다. 그러나 건안 원년 이래 10년도 못 되어 3분의 2가 죽었다. 상한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그중의 10분의 7이었다. 이 책은 모든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지만 병의 근원을 알 수 있고 절반 정도는 치료에 도움을 줄 것이다.”
|
상한은 넓은 의미로는 모든 외감열병의 총칭이고 좁은 의미로는 천연두나 페스트류의 전염병을 의미한다. 한의학은 바로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현실적인 치료의학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매일 운동을 하면서 숙면을 취하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다. 장(腸) 내 환경의 개선을 위해 찬 음식을 줄이고 요구르트 등의 유산균을 섭취해야 한다. 다시 말해 평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방법과 지혜를 배우고 전염병 예방을 위해 생활습관 등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 된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성패는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누구도 모르는 비법이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