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 군수’의 외로운 싸움 5년
- 중국은 투자 못해 안달인데 한국 기업과 정부는 뒷짐
- 50만 넘게 몰린 국내 최대 연축제
- 무안 최고의 특산품, 양파와 황토
그런데 전국적으로 지역축제가 우후죽순으로 벌어지긴 하지만 내실 있게 운영되는 지역축제는 그렇게 많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점에서 전남 무안군의 ‘연(蓮)산업축제’는 대성공으로 기록돼도 충분할 듯하다. 올 8월에 열린 연산업축제에는 전국에서 50만~60만명이 다녀갔다. 무안군은 인구가 7만1000명으로 전형적인 농촌 군. 그렇다면 이런 작은 군에 50만명 이상 다녀갈 만큼 축제가 성공한 이유는 뭘까.
우선 콘텐츠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축제가 열리는 회산백련지는 넓이가 33만㎡(약 10만평)로 국내 최대 규모다. 저수지의 둘레는 2.8㎞. 광활한 공간을 하얀 연꽃이 뒤덮으면 관람객은 압도되게 마련이다.
9월4일 서삼석 무안군수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회산백련지를 찾았다. 연축제는 끝난 뒤였다. 대부분의 연꽃이 졌지만 ‘푸른 연잎의 바다’는 가슴을 뛰게 했다. 연잎 사이로 군데군데 부끄럽게 피어있는 하얀 연꽃도 정다웠다.
근처에 있던 주민에게 언제부터 연꽃이 이렇게 많았는지를 물어봤더니 “1950년대 중반에 인근 마을 주민이 저수지 가장자리에 백련 12포기를 구해 심은 게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연꽃을 심었던 주민은 그날 밤 하늘에서 학 12마리가 내려와 앉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한중산업단지 미래 모습 예상도.
군청 집무실에서 서 군수를 만나자마자 연꽃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제 일반인이 ‘연’ 하면 ‘무안’을 떠올릴 정도로 백련은 무안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이제는 연축제에 ‘산업’ 측면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축제가 그렇듯이 연축제도 과거에는 관람이 중심이었는데, 2008년부터 연산업축제로 명칭을 바꾸면서 산업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연은 웰빙산업, 미래의 생명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연 관련 농산물과 가공 상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연꽃은 ‘보는 것’ 외에도 용도가 다양하다. 연잎을 이용해 차, 소금, 맥주를 만들 수 있고 연근을 이용한 요리도 많이 나오고 있다. 백련 홍보전시관, 백련상품 판매관, 연음식 만들기 체험, 연요리 경연대회, 연 품평회 등이 같은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일본, 미국, 호주, 독일 등 해외 바이어들과 152만달러어치의 수출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중산업단지가 들어설 부지.
특히 전북 부안과는 ‘ㅂ’과 ‘ㅁ’ 한 글자 차이여서 우편물이 잘못 배달되는 일이 간혹 있다. 서 군수는 “과거 부안 방폐장 문제가 이슈가 돼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가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무안군에 ‘괜찮으냐’는 전화가 많이 걸려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100년 역사의 무안은 전형적인 농촌 군이다. 정부 관료나 기업에서는 무안 하면 전남도청 소재지가 있는 곳으로 인식돼 있다. 이제 무안은 한국 재계보다 중국 재계 쪽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한중 수교 18년 역사상 중국 정부가 한국지방자치단체에 처음으로 투자한 곳이 무안이다. 무안이 지금은 비록 한반도 남단에 있는 조그만 시골 군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중국의 교두보, 전진기지, 혹은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하려고 한다.”
서 군수가 언급한 한중산업단지는 현재 무안군의 최대 현안이다. 한중산업단지는 중국 정부가 무안군에 대규모 중국 기업 생산기지와 차이나타운을 세우는 것으로 그 규모가 메가톤급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경기 분당 규모인 17.7㎢(536만평) 부지에 총 1조76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무안군은 2005년 7월 산업교역형 기업도시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이후 중국 지분 51%, 한국 지분 49%로 한중국제산업단지개발㈜을 설립해 산둥성·충칭시 단지, 차이나시티, 도매유통단지, 국제대학단지 등을 건설하는 한중합작 프로젝트사업을 시작했다.
무안군처럼 작은 지방자치단체가 이 같은 메가톤급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중국 정부의 약속이 실제로 집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맞다. 2007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로부터 투자계획 승인을 받았고, 바로 이어 중국 상무부로부터 ‘해외경제무역협력구’로 지정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자본 784억원을 포함한 자본금 1538억원을 전액 확보해 올해 1월23일 국토해양부로부터 한중국제산업단지 개발계획을 최종 승인받았다. 자본금을 합산하는 시기는 작년 연말부터 금년 1월까지였는데 국제금융시장이 가장 좋지 않았을 때였다. 그럼에도 중국은 공격적으로 자본금을 흔쾌히 냈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서삼석 군수
그렇다면 중국 기업이 왜 무안에 대규모로 진출하려는 것일까. 무안군에 따르면 중국은 중국 기업의 대규모 해외진출과 관련해 ‘해외경제무역 협력구’를 이전에도 몇 차례 지정한 바 있다. 그런데 대부분이 저개발국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중국 정부에 의해‘해외경제무역 협력구’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서 군수는 이를 ‘메이드 인 코리아’ 효과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훨씬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안을 택한 데는 지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무안은 상하이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곳이다. 상하이는 무안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간다. 아직 무안공항이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무안공항은 일반적인 인식보다 전략적으로 훨씬 가치가 있는 곳이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무안은 땅값도 싸다. 무안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가지고 중국 자국 시장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EU) 시장도 겨냥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한중산업단지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생각대로 빨리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이 문제를 꺼냈더니 서 군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한국 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시각과 중국 정부가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중국은 어려울 때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반면 한국은 완전히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기다린다. 한국 금융회사나 건설사는 조금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태도로 임하고 있다. 중국은 충칭시가 주로 출자했고 국책은행이 참여했는데 한국도 그렇게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승인한 최초 협력사업인 만큼 중국 상무부는 한국 외교통상부를 통해 양국 정부 차원의 경제협력사업으로 추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무안군도 민간 기업과 우리 군만의 힘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해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국무총리실과 국토해양부 그리고 지식경제부를 방문해 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토지주택공사, 농어촌공사, 국책은행과 같은 공기업이 사업에 참여해줄 것을 건의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기업도시인 만큼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태도를 보였다. 다행히 요즘은 한국 정부도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서 군수는 지난 5년간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시골 군수’로서 설움도 많이 겪었다. 국내 기업을 방문했지만 최고경영자(CEO)를 만나기는커녕 담당자와 면담조차 쉽지 않았다. 150개에 이르는 건설사와 금융회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발품을 팔았지만 무시당하는 일이 많았다. 중국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닌 탓에 공항에서 보따리장수로 오해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는 속도감 있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장 재직 시절 이 프로젝트를 허가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가 계속 챙기고 있다. 청융화(程永華) 주한 중국대사는 무안을 두 차례나 방문해 “내 임기 동안 역점사업으로 꼭 하고 싶은 사업”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청융화 대사는 6월에는 총리실을 방문해 박영준 국무차장을 만나 “한중산업단지는 중국 정부 정책이니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은 서두르고, 한국은 만만디
“중국은 빨리 하지 않는다고 난리다. 그런데도 한국은 중국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정부나 기업인은 중국의 미래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로 치면 중국은 미국보다 앞서 있다. 중국에서 개발은행 관계자 등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람 중엔 50대는 한 명도 없다. 모두가 40대 유학파로 영어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프로젝트를 여기까지 끌고 온 데는 서 군수의 역할이 컸다. 서 군수는 “하다가 일이 안되면 술로 다 해결했다. ‘군수가 고생한다’며 출장비에 보태쓰라고 단돈 100만원이라도 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여비규정에 따라 빡빡한 일정으로 출장 왔는데 회의가 길어지면서 중간에 짐을 싸야 할 때, 회의 때문에 비행기 못 타서 공항에서 몇 시간씩 쪼그려 앉아 마냥 기다려야만 했던 일도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서 군수는 “솔직히 말하면 중국 측은 출자구성 등에서 완벽하지만 한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완벽하지는 않다. 그래서 정부에 도와달라고 말했다. 내 역량이 부족한 탓인지 전남 지역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관심 없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관심을 보여줬다. 이 프로젝트가 잘되면 무안만 사는 게 아니라 전남이 사는 것이다. 정부에 대해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정부 차원에서 관심만 가져주면 된다”고 말했다.
갯벌 체험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무안 갯벌.
무안을 알리는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연과 함께 양파가 꼽힌다. 양파의 경우 현재 4000여 농가가 약 3000㏊에 재배하고 있으며, 무안군 농업소득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전남도 농업기술원의 연구에 따르면 무안군 황토에는 항암, 진통, 면역기능 증진, 노화방지와 해독작용, 혈액정화 기능이 있는 게르마늄 함량이 평균 1.43mg/kg으로 일반 흙의 0.96~0.30mg/kg에 비해 다량 함유돼 양파 등 주요 농산물에서도 게르마늄 함량이 다른 지역에서 재배한 농산물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무안 양파는 다량의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아 ‘황토랑’이라는 무안양파 브랜드로 전국에서 잘 팔리고 있다. 전국에서 양파 소비자 선호도를 조사하면 항상 1위를 차지한다. 무안군은 무안군 양파 생산량만으로는 전국 양파유통시장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무안, 신안, 함평 해남 등 전남 서남부권에서 생산되는 양파산업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전국 양파 생산량의 50%를 점유하게 돼 양파산업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기계화를 도입하면 비용절감으로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수출경쟁력까지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양파는 건강식품으로 뜨고 있다. 양파에 있는 특정 성분이 고혈압과 암 예방에 탁월하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면서 소비가 매년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황토도 무안이 자랑하는 상품이다. 황토에는 일반적으로 칼슘, 철, 마그네슘 등이 함유돼 있는데 무안군 황토에는 게르마늄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다는 것. 흔히 ‘먹는 산소’로 불리는 게르마늄은 항암, 진통, 면역기능 증진, 노화방지와 해독 작용, 혈액 정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유기성 게르마늄 토양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은 매우 유익한 약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현재 무안군은 황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안황토랑’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무안군에서 생산되는 우수 농산물에 부착 사용토록 하고 있다.
무안의 지형적인 특성 중 하나는 해안선이 길다는 점. 면적이 440㎢인데 해안선 길이는 220㎞에 육박한다. 지도에선 언뜻 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육지에서 가늘게 연결되는 곳도 볼 수 있다. 해안선이 길다보니 갯벌환경도 좋아 세발낙지가 유명하고 요즘엔 갯벌체험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무안에 오면 바닷가에 꼭 한번 가봐야 합니다. 해안선이 독특해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해지는 장면 정말 멋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추가할 내용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서 군수의 답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