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높은 대중 지지도와 확고한 당내 기반을 가진 ‘선거의 여왕’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현직 대통령이던 노무현에 대립되는 이미지에 머무른 채 정작 경쟁대상인 이명박 후보에 맞서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출신 좋은 에비타’ 이미지를 강화해 MB가 가진 ‘현대 가신’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켰다면 승리했을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말기이던 2007년에도 GH가 여전히 노무현과 주로 대립되고 있다는 점은 GH가 당시 쇠락해가던 노무현이 아닌 새롭게 등장할 다른 정치인과의 대비구도 형성에서 한발 늦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2009년 조사 결과를 통해 이것이 현실로 뚜렷이 드러나는 상황을 목격할 것이다. 2009년 현재 GH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 변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향후 이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는 3부에서 다룰 예정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대립되는 이미지를 가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
한나라당 대표로 있던 2005년부터 대통령후보가 되기 위한 한나라당 경선을 앞둔 2007년의 GH에게 대중은 조금 다른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가장 큰 변화는 2005년에 뚜렷했던 ‘사심이 없다’는 특성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정치적 존재감이 2007년에 뚜렷이 각인되면서 필연적으로 부각될 수 있는 일이었다. GH는 더 이상 대중에게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대중의 막연한 동경은 2005년과 2007년에 걸쳐 정치인 GH에게 연예인과 같은 인기를 안겨주었다.
세부적인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GH는 정말 그렇다’는 응답에서 2005년, 2007년 모두 ‘자기관리’ ‘여론 의식’ ‘메시지 전달력’ 그리고 개인의 ‘정치적 입장과 소신’과 관련된 특성이 강했다. 이와 달리, 2007년 새롭게 부각된 GH의 이미지는 ‘위기상황 대처’ ‘공인으로서의 깨끗한 처신’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여유와 느긋함’의 이미지였다. 이와 동시에 ‘철저한 자기관리’는 여전히 분명한 GH 이미지의 일부였다. 하지만 ‘지향하는 정당성이나 목표가 분명히 느껴지지 않는다’는 응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중의 마음속에 점차 이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의 반대 이미지로만 존재
이 기간에 두드러진 차이점은 ‘GH는 이렇다’라는 이미지가 아닌, ‘GH는 전혀 이렇지 않다’라는 반대 이미지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2005년 GH가 가진 이미지의 대척점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해 대중이 가진 이미지가 뚜렷이 존재했다. 2007년에도 동일한 상황이었다. ‘GH는 결코 아니다’라고 대중이 인식하는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누가 연상되는가?
민주화운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말하는 도중에 비속어를 사용해 친근감을 표현한다. 전통 지배세력을 바꿀 개혁가다. 과장과 허풍을 통해 자신감을 표현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방식이다. 결과에 대한 심각한 고려보다는 일단 시행하고 본다. 정치를 쇼와 같이 만들어 국민이 즐기는 행위로 바꾼다.
바로 노무현의 이미지였다. GH의 핵심 이미지는 GH 자신의 특성뿐 아니라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의 이미지와 대비됨으로써 뚜렷이 부각되었다. 이런 이미지 구도는 2005년 GH가 야당대표였을 때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2007년 GH는 야당대표도 아니었고, 더욱이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후보로 이명박(MB) 후보와 대비된 뚜렷한 이미지를 시급하게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중이 지각하는 ‘GH는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이미지 10개 문항 중에서 2007년에 여전히 7개 문항이 노무현의 이미지와 대비된 것이었다. 다음의 3개 문항만이 또 다른 인물이 GH와 대비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주위 사람들을 대한다.
·도덕적으로 흠이 있지만 유능하다.
·현실의 변화와 개혁을 중시한다.
위의 문항을 통해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2007년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 GH와 대립하고 있던 MB를 연상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지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대중이 가진 GH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MB와 대립되어 뚜렷하게 부각되는 상황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미지의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GH의 적 또는 상대는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이었다. MB와 뚜렷한 이미지 대립을 이루면서 대중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에는 불완전한 상황이었다.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상대하느냐?’와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가 생겨나고 또 작동하는 이미지의 심리는 2007년 GH 이미지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GH의 이미지는 이제 GH를 지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따라 다른 뉘앙스를 갖기 시작할 뿐 아니라, GH가 누구를 상대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기 시작한다.
2007년 6월 한나라당 대선주자 정책토론회장에서 나란히 앉아 담소하는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
2005년 ‘조신한 양갓집 딸’이 당시 불한당 같은 이미지를 가진 노무현의 핍박 대상이 되고 있다고 대중이 느낄 때 GH의 이미지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품위 없고 거친 사람이 착하고 여린 양갓집 규수를 박해한다는 대중의 인식은 GH를 ‘선거의 여왕’으로 만들었다. 양갓집 규수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은 ‘귀한 집 아이가 고생한다’고 생각하면서 측은한 마음에서 무작정 그녀를 밀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GH는 노무현에 대항하는 대중 이미지는 아주 뚜렷했지만, 정작 경쟁자이던 MB와 대립하기에는 불완전한 상황이었다. 적어도 대중이 보기에는 그랬다. GH와 경쟁하는 관계에 있던 MB로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나 대선 정국에서 MB와 대비되어 GH는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이 분명히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부각시켜야 했다. 하지만 GH 쪽에서 볼 때 대중이 가진 GH 이미지는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곳에 계속 전선(戰線)을 형성시킨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대중의 마음속에는 아직 GH와 MB의 대립 구도가 분명하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의 절대적인 인기와 지지도를 가진 GH로서 대중이 가진 이런 이미지의 영향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대중에게 GH는 노무현에 대항하는 정치인이었지, MB와 싸우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GH 이미지의 분화: 내부와 외부의 차이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GH의 이미지는 노무현과 MB를 나타나는 이미지와 각각 다르게 대립되어 부각된다. 일반적 대중 이미지로만 본다면 GH의 이미지는 뚜렷하다. 대립되는 인물도 여전히 임기 말에 있는 노무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다. 하지만 그 순간에 GH에게 필요한 대중의 이미지는 노무현과 대립되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선택의 순간에 대중은 노무현의 이미지가 아닌 다른 이미지를 가진 누군가와 대결하는 상황에 있는 그녀를 지원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이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GH는 자신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실질적인 경쟁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뚜렷하게 부각시킬 수 없었다. 아니, 이미지의 심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몰랐던 GH는 자신의 이미지가 무엇인지와 또 자신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자기가 부각시켜야 할 상대의 부정적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자신이 가진 이미지의 힘을 활용할 수 없었다.
‘이미지의 심리’는 그녀가 그렇게 높은 대중적 인기를 갖고 있었음에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왜 승리에 가까운 패배를 경험하게 되었으며, 경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대통령후보 이상의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지를 잘 알려준다. 이미지의 심리가 알려주는 최고의 대중 지지도를 가진 GH가, 선거의 여왕인 GH가 경선에서 어이없이 패배한 비밀을 GH의 이미지는 잘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중이 보는 GH는 ‘이렇다’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GH는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대비 이미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상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이미지
2005년 GH의 대척점에 있는 ‘GH는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이미지는 지지나 반대집단과 관계없이 모두 당시 대통령인 노무현이었다. 하지만 2007년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GH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지는 노무현과 MB를 연상시키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이미지로 분화되어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GH는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이미지는 이미 2007년부터 GH가 직면한 내부와 외부 적의 이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이 일반적으로 보는 ‘GH는 그렇다’라는 이미지에는 이것을 뚜렷하게 부각시킬 수 없었다. 물론 여기서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기준은 한나라당이라는 울타리다.
높은 대중적 지지와 인기를 누리던 GH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당원들의 투표에서 이겼지만 일반 대중의 선호도 조사에서 낮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나라당의 외부에 있는 노무현과 대비되는 이미지는 뚜렷했지만, 한나라당 내부에 있는 MB와 대비되는 이미지는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나라당 당원들에게는 GH가 우세하게 부각되었지만,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GH가 막상 MB와 대비될 때 뚜렷한 이미지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GH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당원투표에서는 우세했지만, 대중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패배했다. GH 본인을 비롯해 주변 참모가 잘 알지 못했던 것은 GH의 일반적인 이미지가 아닌, 상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이미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대중의 이미지가 무엇인지였다. 또 각기 다른 집단이 GH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중의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부각시켜야 했지만 그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층은 그녀에게서 ‘출신 좋은 에비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진은 아르헨티나 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영부인 에비타의 생전 모습.
GH 지지집단이 2005년과 2007년에 GH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의 속성을 구체적인 문항으로 분석하면, GH의 이미지 특성을 대표하는 10개 문항 중에서 단 3개 문항만 두 시기에 동시에 나타났다. 응답자가 선택할 수 있었던 반응세트가 동일했음을 고려할 때 GH의 이미지 변화가 비교적 큰 편이다. 두 시기의 세부 문항 차이를 살펴보자.
2005년 7월에는 정치판의 ‘귀공녀’ 이미지가 뚜렷했다.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만들고 유지하려고 한다. 자신의 취미 등을 공개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드러낸다. 자신의 현재 위치와 역할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안다. 자신과 여당의 지지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을 중시하고, 의리가 있다. 여론의 향배에 민감하다. 아랫사람에게 나은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배우고자 한다.
하지만 2007년 3월에는 정치판의 에비타 이미지로 바뀌었다.
독거노인이나 장애인과 같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갖는다. 위기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미래 국가구성원(아동, 청소년)에 높은 관심을 표시한다. 가치 있는 일이라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다. 환경이나 복지, 국민 봉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순수한 동기와 열정으로 일한다. 구체적 실행 전략보다 도덕적 원칙을 중요시한다.
대중과 호흡하는 정치지도자, 열광적이고 강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로 변화한 것이다. 더 이상 조신하지도 않고, 더 이상 연민을 자아내는 상황도 아니다. 대중을 열광시킬 수 있는 에비타 수준의 정치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대중적 인기와 지지도는 또 한편으로 지지세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높은 대중적 이미지와 인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현상을 구체적인 이미지 문항반응으로 보면, 2005년에 있던 ‘자기세력을 만들고 유지한다’는 문항이 2007년에는 사라졌다. GH는 2007년에 정말 높은 대중적 지지를 얻은 정치인이 되었지만, 정작 이런 지지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것이 GH가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에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GH가 대중에게 분명한 정치인의 위치를 차지하는 시점은 2005년보다 2007년인 것 같다. 이것은 지지집단이 ‘GH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여기는 이미지를 통해 확인된다. 2005년에 GH의 지지집단은 GH에게서 ‘잡초 같은 영업팀장’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응답했다. 2007년 GH의 지지집단은 GH에게 결코 ‘현대 가신’과 같은 이미지는 없다고 보았다. 이 둘은 모두 지지집단이 GH와 대비시키는 이미지의 표현이며 각 시점에서 GH와 경쟁하거나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인물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에비타에게 위협적인 현대 가신
2005년 잡초형 영업팀장은 전형적인 야당 정치인으로 당시 노무현의 이미지다. 그리고 2007년 현대 가신은 분명히 MB의 모습이다. 당시 사람들은 서울시장 임기를 마치고 청계천 복원 등의 업적으로 막 떠오르던 MB를 현대 가신의 이미지와 쉽게 연결시킬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GH의 지지집단이 GH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은 GH와 대비되는 이미지에 현대 가신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인식시키고, 이 현대 가신이 훌륭한 에비타에게 위협이 되는 대립적 존재라는 것을 알릴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2007년 지지집단이 직면했던 GH의 이미지 전투
2007년 GH 지지집단은 GH의 이미지를 에비타라고 보았다. 그것에 대비되는 이미지는 현대 가신이었다. 이런 경우 대비되는 현대 가신 이미지는 당시 노무현을 대변하는 사회운동가 이미지에 비해 GH에게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따라서 지지집단이라도 자신들이 나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상황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즉 2007년 지지집단이 가진 GH의 대중적 이미지는 가장 강력한 지원을 필요로 했을 당시의 GH에게 그 자체로 모순적인 상황을 던져준다. 지지집단은 GH를 에비타로 보고 열광했지만, 이미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상황에서 특별히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볼 수 없었다. 특히 그녀는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은 현대 가신의 이미지와 대립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특별한 위기감이 생겨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대중을 상대로 한 투표 결과로 선거의 여왕이 패배한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현대 가신의 이미지가 에비타의 이미지를 위협할 수 있겠는가? 결국 GH는 이미지 측면에서 지지집단에게조차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동시에 자신을 지지하는 대중에게마저 도움이 필요한 위기상황임을 인식시키지 못하면서도 전혀 아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지집단이 GH를 볼 때에는 그러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GH캠프는 MB의 현대 가신 속성을 부각시키지 못하였다. 대신 BBK 문제를 들춰 MB를 줄기차게 공격했다. GH진영에서는 MB를 공격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사건으로 BBK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당시 GH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한다”는 MB의 도덕적 흠을 부각시킴으로써 그가 최종 대선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점을 드러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GH의 지지집단에게도 큰 의미를 부각시킬 수 없었다.
에비타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현대 가신’을 공격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발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조건이다. 특히 ‘현대 가신’이던 사람이 BBK라는 비즈니스를 했든, BBQ라는 비즈니스를 했든 그 자체로 에비타와 연결시키기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MB캠프는 GH의 대척점에 노무현과 같은 사회운동가 이미지의 이재오를 포진시켰다.
이미지의 측면에서 보면, MB에 대한 GH의 공격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현대 가신의 이미지 속에는 이미 “도덕적으로 흠이 있지만 유능하다”는 문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중의 마음속에 MB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BBK 정도는 용서할 수 있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미 있었던 것이다. 어두운 호숫가에서 에비타는 돌팔매질을 열심히 했다. 무엇을 위해, 왜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지나간 일이지만, 혹시라도 2007년의 상황에서 GH가 자신의 이미지를 잘 알았더라면, 아마 다른 전략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일 오히려 자신의 ‘출신 좋은 에비타’이미지를 내세워, MB의 간사하고 차가운이미지를 부각시켰다면 MB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빚어졌을지도 모른다.
이와 반대로 MB캠프는 경선 내내 언론에서 끊임없이 MB가 수많은 공격에도 꿋꿋하게 참는다는 기사가 연속으로 보도된 점, 그리고 상대인 GH의 대척점에 노무현과 같은 사회운동가 이미지의 이재오를 연결시킨 점으로 미루어 적어도 GH와 관련된 대중의 이미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감은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대중에게 이미 GH와 노무현의 대립으로 자리매김한 퀸과 사회운동가의 대립구도를 노무현과 같은 이미지의 이재오를 내세워 더욱 더 부각시킴으로써 만에 하나 형성될 수 있는 MB와 GH의 대립관계마저 희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한나라당에서 박근혜와 이재오를 대립관계로 연결하는 것은 이런 퀸과 사회운동가 이미지 대립의 잔존인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당시 상황에서 GH가 대중에게서 이끌어냈어야 할 심리는 ‘그런 말을 할 정도라면 얼마나 당했을까?’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따위의 측은지심이었다. 이런 연민은 대중이 무작정 GH에게 동조하는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미지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생활에서 이것이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킬 정도로 강력하다. GH는 대중이 자신에게 주는 인기와 지지도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정작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반대집단이 가진 GH의 대중 이미지
2007년에 들어서면서 GH를 선호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녀를 퀸의 이미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몰락한 집안의 한(恨)을 품은 ‘토지’의 서희 정도로 보았던 그녀를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나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GH를 여왕의 이미지로 보는 심리에는 여전히 그녀의 힘을 부모 덕으로 축소하려 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다. 명문가 또는 왕족의 일원과 같은 출생의 혜택을 받는 존재이기에 정치인 GH로 보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대중적 인기를 마지못해 인정하는 수준이었다. 실질적인 정치활동의 결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평가절하하고 싶은 심리의 표현이다.
반대집단이 GH를 보는 이미지는 2005년과 여전히 동일한 속성들도 있었지만, 2007년 확실하게 달라졌다. ‘토지’의 ‘서희’에서 퀸으로 바뀌는 과정에 여전히 남아 있는 속성과 변화된 속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계속 남아 있는 이미지는 ‘자신의 생활, 건강, 이미지 등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여론의 향배에 민감하며 지지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없다’이다. 하지만 2007년에는 반대집단들이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한 이미지들이 다음과 같은 속성으로 뚜렷이 부각되었다.
싸움의 목적이 분명치 않은 정치인
위기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취미나 친구 등을 공개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드러낸다. 공인으로서 처신이나 생활이 깨끗하고 분명하다. 냉정하게 자신의 감정이나 표현을 매우 절제한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말한다. 전형적이며 구태의연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이미지 항목들은 당시 반대집단의 사람들이 GH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 수 없으며 이해하기 힘든 정치인으로 보기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분명한 것은 이 시점부터 정치인 GH로 그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집단에게는 ‘전형적이며 구태의연한 정치인의 모습’으로, 일반 대중에게는 ‘귀한 집 딸’이 아닌 정치인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GH의 경우 이 시점에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 정치인’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녀가 반대집단의 사람들에게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 여왕’의 이미지로 인식된 것도 ‘정치인인 것 같은데, 정치인으로 볼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두고 GH의 대중 이미지는 노무현과 대비되는 이미지에서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한 인물과 대비되는 이미지로 뚜렷하게 부각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핵심에는 GH를 확실한 정치인으로 만들어놓았던 GH 대비 이미지가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 변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서 자신을 지명도 높은 정치인으로 격상시켰던 GH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립 이미지로 인해 정작 자기 이미지 변신을 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반대집단이 ‘GH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이미지는 2005년 ‘토지’의 ‘길상’ 과 2007년 ‘아직도 운동권’이라고 할 수 있는 386 정치인들의 이미지였다. 대중이 ‘GH는 결코 그렇지 않다’라고 인식하는 이미지는 바로 당시 대중에게 GH가 동경하는 또는 중요한 인물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그녀의 이미지는 바로 만족할 수 없는 정치인, 특히 대통령이던 노무현을 대신할 수 있었던 이미지였다. GH를 여왕으로 보는 사람들은 GH에게 대비되는 인물로 노무현이나 이재오(민중당 시절), 김문수, 기타 386 정치인을 떠올렸다.
GH의 존재 이유는 자신의 분명한 역할로 생겨나기보다 그녀와 대비되는 사람의 이미지에 의해 분명해진다. 특히 2007년부터 GH 이미지는 이런 경향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정작 GH 자신이 무엇을 해서 어떤 이미지를 갖는 정치인이 아니라, 그가 누구와 대척점에 있느냐에 따라 그의 대중적 이미지가 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MB 인기 하락할수록 박근혜 지지도는 상승
흥미로운 점은 GH와 대비되는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 즉 2005년의 노무현과 2007년의 MB는 그 대척점이 분명해지면서 대중의 인기가 급속히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GH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노무현과 MB를 미워했다기보다 대척점의 인물이 대중에게 낮은 지지와 인기를 얻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GH가 부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현실의 정치인에 대해 대중의 불만이 커지면 커질수록 GH의 이미지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GH는 자신의 대척점에 있는 정치인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대중이 GH를 마치 구세주의 이미지로 인식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대통령이 된 MB가 GH의 대척점에 있는 뚜렷한 정치인으로 등장하면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다.
GH 이미지 변화 정리: 어떻게 달라졌나?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대중적 지지도가 높지 않은 현 상황에서 GH는 유력한 차기 대통령감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GH가 차기 지도자로 여론조사에서 1순위를 차지하는 현상에서 엿볼 수 있다. 현실의 정치가 불만스러울 때,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상적 정치인을 기대하는 대중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현재의 MB에 대한 반감이 구세주 이미지를 유발하고, 이런 이미지를 특정 정치인에게 부여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난세에 기대하는 구세주 이미지로 대중의 마음속에 떠오른 인물이 GH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GH의 대중 이미지는 2007년과는 또 다르게 나타나면서 GH 이미지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줄 것이다.
2009년 6월에 실시된 GH 이미지 조사 결과는 사람들에게 구세주로 인식되는 GH의 이미지가 새로운 분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2005년엔 대중이 생각하는 GH의 뚜렷한 반대 이미지는 노무현 하나였다. GH 지지집단과 반대집단 모두 GH의 대척점에 노무현의 이미지를 내세운다.
그러나 2007년이 되면 GH의 반대 이미지에 현대 가신인 MB와 사회운동가인 노무현이 나타난다. 이는 다시 말하면 GH의 이미지가 2007년에 들어서면서 둘로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더해서 2009년 조사 결과를 보면 GH 이미지는 3개 형태로 분화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GH 한 사람의 이미지가 대중의 인식에서 꾸준히 분화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 대중이 인식하는 GH 이미지는 두 집단으로 분화되었다. 이것은 대중이 GH에 대해 비교적 뚜렷하게 호(好) 불호(不好)를 표현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동시에 GH의 대중적인 이미지는 비교적 안정되고 뚜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지를 먹고사는 정치인에게 이보다 더 큰 자산은 없다. 반대집단이 있지만, 아주 분명한 대중적 지지집단과 그들이 그 정치인을 지지해야 할 분명한 이유까지 있다는 뜻이다. 인기 연예인 수준의 이미지다.
그러나 2009년 GH 이미지가 셋으로 분화되었다는 것은 이런 대중 이미지의 큰 변화를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GH를 뚜렷이 지지하고 반대하는 집단 외에 입장이 분명하지 않은 중도 집단이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즉 대중이 GH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를 갖지 못했거나, 기존의 뚜렷했던 GH 이미지가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2005년 GH의 대중 이미지는 당시 노무현과 대비되는 품격 있고 좋은 집안의 괜찮은 사람이었다. 2007년 GH는 상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전히 높은 대중적 인기와 품위가 있는,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 유력 정치인이었다. 2007년 GH는 비록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대중 이미지의 측면에서는 대통령 당선자 MB나 대통령이던 노무현보다 더 높은 위치의 여왕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면 2009년 GH의 대중 이미지는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까. GH의 이미지 변화에는 GH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는 현상이 바로 반영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실체를 삼킨 이미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패배 당시 사진을 보면 승자와 패자가 뒤바뀐 느낌이 든다. MB가 마치 GH에게 복종하겠다고 인사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대통령 당선자와의 만남에서 나타나는 GH의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이를 마치 대통령 당선자가 여왕에게 인사하는 모습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런 GH의 이미지는 한나라당 공천과 관련된 이미지에서 아주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노여운 여왕의 이미지다. 누가 여왕의 화를 다스릴 것인가?
마지막 사진은 GH가 이명박 대통령과 회동하는 모습이다. 이 역시 여왕이 수상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회동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면 지나치게 이미지에 근거한 해석이라고 비난할 사람이 있을 듯싶다. 그러나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는 말이 있듯이, 대중이 가진 정치인 GH의 이미지는 조금씩 정치인 GH를 삼키는 것 같다. 2009년 이후 나타나는 GH의 이미지는 대중이 만든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뚜렷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GH가 이미지의 분산과 혼란으로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GH의 이미지는 바로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먹고사는 대중 정치인의 운명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2009년의 대중이 보는 GH의 이미지에는 정치인으로 보이지 않았던 GH에게서 대중이 점차 중요하고 강한 정치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 대통령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GH에 대해 대중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치인의 대중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현재에서 미래의 모습을 조금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3부에서는 2009년 이후 GH의 대중 이미지가 무엇이며, 과거와 다른 이미지의 변화가 불러일으킬 새로운 정치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2009년 현재 세 가지의 각기 다른 형태로 대중에게 지각되는 GH의 이미지 속성이 무엇이며, 이것이 그녀의 대중적 인기도나 지지도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현재 GH의 이미지는 거의 칩거하고 있는 상태에서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GH의 대중 이미지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