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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의 언론과 현대사 산책③

북한의 작가, 시인, 문화인의 전쟁 동원

6·25전쟁 시기 남북한의 신문(상)

  •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presskr@empal.com│

북한의 작가, 시인, 문화인의 전쟁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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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세에 동원된 작가와 문화인들

김일성은 남침 준비를 완료한 시점에 평화공세를 펴면서 대남 선전을 강화하는 술책을 썼다. 6월7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평화적 조국통일을 추진하자고 제의했다. 전쟁을 앞둔 위장 평화공세였다. 북한에 억류 중이던 조만식과 남한에서 체포된 남로당 간부 김삼룡·이주하를 교환하자고 제안하여 남한의 경계심을 풀어놓으려는 전술도 병행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8·15 해방 5주년 기념을 명분으로 ‘증산투쟁’을 독려하여 전쟁물자를 비축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있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평화적 조국통일방책 추진 제의’라는 구호 아래 저명한 문화인을 동원하여 집중적인 평화공세의 선전을 최대한으로 펼쳤다. 6월부터 로동신문에 게재된 문화인들의 글은 표2와 같다(괄호 안은 로동신문에 직책이 명기된 경우이다. 작가, 또는 전문분야를 기재하지 않은 기사는 아래 명단에도 밝히지 않았다).

한설야(2회) 이기영(2회) 이태준(2회) 김사량(1회) 김남천(1회)은 남북한에서 널리 알려진 소설가들이다. 한설야는 초기 북한 문단을 주도하면서 인민위원회 교육국장, 북로당 중앙위원회 위원 및 문화부장을 맡아 북한 정권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극로는 조선어학회 회장을 지낸 한글학자로 1948년 9월 제1차 내각의 무임소상(無任所相)에 임명되었던 인물이다. 허헌은 1921년 9월부터 동아일보 감사역과 취체역을 거쳐 1924년 4월부터 5월까지 짧은 기간 사장 직무대리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1945년), 남조선노동당 초대 위원장(1946년)으로 활약했다. 1948년에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제 1기 대의원에 선출되었고 이어 최고인민회의장에 올랐으며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직도 맡았으나 1951년 8월에 사망했다.

남침이 임박한 때에 문화인들을 평화공세의 선전에 동원한 것은 전쟁을 준비하는 낌새를 드러내지 않는 동시에 장차 전쟁의 책임을 남한에 전가하려는 의도였다. 이처럼 평화를 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먼저 침략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이었다.



‘표2’ 1950년 6월 로동신문에 게재된 문화인의 글
6·5 한설야(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 우리의 손에는 평화통일의 정당한 방법이 쥐여져 있다. 그 실천을 위한 길로 힘차게 매진하자!
6·5 리극로(조선건민회 위원장) 민족적 량심 있는 인사들이라면 모두다 평화적 조국통일의 편에 가담하여 일어서라!
6·6 리기영 평화적 조국통일을 촉진시키는 한길로 다같이 나가자!
6·6 김남천(남조선문련) 평화적 조국통일 실현을 위한 투쟁력량을 일층 확대강화하자
6·7 리태준 민족적 량심 있는 인사들은 모두다 평화적 조국통일을 위하여 나서라!
6·11 허헌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투쟁한다
6·11 김사량(작가) 평화적 조국통일에 나의 모든 힘을 다하겠다
6·14 리극로 6월19일에 소집되는 남조선 국회에서 조국전선의 평화적 통일 추진제의가 상정되어야 한다
6·18 리기영(작가) 남조선 국회의 소위 무소속 중간파 의원은 평화적 조국통일을 지지하여 투쟁하라!
6·19 한설야(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남조선 국회 내에서도 량심 있는 자라면 애국적 행동을 인민 앞에 표시하여야만 한다
6·21 리태준 평화적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민족반역자들의 죄상, 미제를 구세주로 모시고 반인민 반민족의 죄악을 쌓은 친일역도 김성수


전쟁 직전에 북한 정권에서 문인들이 차지했던 서열은 홍남표(洪南杓)의 장례위원 명단을 참고로 할 수 있다. 홍남표는 일제강점기 시대일보 지방부장을 지냈던 공산주의자로 광복 후에는 극좌논조를 폈던 남로당 기관지 ‘노력인민’(1947. 6.19 창간)의 발행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1946년 11월 남로당 중앙위원에 피선되었고 월북하여 1948년 8월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6월5일자 로동신문에 실린 장의위원 26명의 서열은 다음과 같다.

김일성 김두봉 허헌 박헌영 김책 홍명희 최용건 김달현 허가이 박일우

리승엽 홍기주 리영 류영준 허성택 김원봉 박정애 강진건 최경덕 김창준

강량욱 리구훈 리기석 리기영 한설야 김남천

방송국과 통신사 장악

북한군은 서울에 진주한 후 제일 먼저 방송국을 장악했다.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장 김현수(金賢洙) 대령은 6월27일 밤 12시 방송국 주요 시설을 영등포전신국에 옮겨놓은 후 28일 새벽 2시 반에 지프를 몰고 정동에 있던 방송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북한군의 탱크부대가 이미 방송국을 점령한 뒤인 오전 5시경 방송국으로 들어가려다 현관에서 총격을 받아 순직했다. 방송국 가입과 직원 이중근(李重根·36)은 그 직후 현관에 떨어진 권총을 줍는 순간 총격을 받아 피살되었다. 이중근은 7월5일 피살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국방부 정훈국이 11월9일 발표한 자료를 보도한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김현수 대령이 피살된 직후인 6월28일이 확실하다. 같은 때에 국방부 군속 이승현(李升鉉·23)도 방송국 문 앞에서 피살되었다. 그는 방송국 경비임무를 수행 중이었을 것이다.

북한군은 김현수의 시체를 발로 차서 방송국에서 17~18m 아래 덕수초등학교 운동장에 떨어뜨렸다. 약 1주일 뒤인 7월3일까지 시체는 그대로 방치되었는데 덕수초등학교 교장 전경준이 교비로 시체를 처리했다. 이때 소식을 듣고 이중근의 부인과 아들이 달려와서 시체를 싣고 화장터로 가는 차를 따라가 남편의 유골을 받아 가지고 돌아갔다(김현수 대령의 피살은 당시 신문이 국방부 발표를 기사화하였다).

방송국은 완전히 북한군의 손에 들어갔고, 남하하지 못한 방송인들은 북한군에 협조하거나 납북되는 비운에 처했다. 기술과장서리 민병설(閔丙卨)이 그런 경우였다. 그는 8월25일 오전 8시경 연희방송소 사택에 정체불명의 청년 2명이 와서 동행한 후 소식이 끊어졌다. 그 후 서울중앙방송국에 근무하는 어떤 사람이 평양방송국 출근부에 민병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고, 날인한 것을 보았다고 가족들에게 알려주었다. 기술요원으로 납북하여 평양방송국에서 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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