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인류는 전례 없이 풍요로운 시대를 산다.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늘려놓은 자본주의 덕분이다. 미국의 1인당 구매력은 미국 헌법이 채택된 1789년 구매력의 40배에 달한다. 자본주의는 승승장구했다. 지구의 경제체제는 북한을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자본주의로 수렴했다. 국가주도 계획경제를 꾸린 카를 마르크스 추종자들의 실패는 처참했으며, 미국의 노예제는 남북전쟁 때 북군이 승리하면서 종언을 고했다. 19세기 유럽에서 꽃핀 경제체제가 압도적 효율성을 과시하면서 세계를 석권한 것이다.
지난 세기 자본주의 내부에선 크게 두 가지 흐름이 경쟁했다. 존 메이나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1883∼1946)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1899∼1992)의 ‘서로 다른 길’이 엎치락뒤치락 세계경제를 주물렀다. 하이에크는 정부 개입의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자유방임 원칙에 따라 시장에 맡길 것을 강조한 반면, 케인스는 자유방임은 곤란하다면서 시장의 실패를 막으려면 정부 개입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사(史)는 두 사람의 논쟁을 ‘세기의 대결’로 기록한다.
처음엔 케인스가 승리한 듯 보였다. 공화당 소속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71년 “우리는 이제 모두 케인시언(Keynesian)”이라고 선언했다. 시장이 주무르던 자본주의가 정부의 품에 안긴 것은 1927년 대공황을 거치면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고용을 늘리겠다”면서 뉴딜정책에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뒤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큰 정부를 옹호한 케인스 이론은 자본주의를 구한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으나 임금상승으로 기업의 수익은 줄었고 복지지출이 증가하면서 국가 재정이 악화했다.
케인스 이론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불황 속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패배한 듯 보였던 하이에크가 부활한다. 하이에크의 세례를 받은 마거릿 대처는 1979년 영국 총리에 오른 뒤 영국병(病) 해소를 표방하며 노동시장 개혁, 공기업 민영화에 나섰다. 만성적 저성장, 노조권력화, 과잉 복지부담을 해결한 이 ‘철의 여인’ 덕분에 영국 경제는 되살아났다. 대서양 건너편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두 지도자는 하이에크 패러다임의 지지자요, 실현자였다.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는 케인스를 변방으로 쫓아냈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정부와 시장의 헤게모니 다툼은 시장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영국에서 대처는 석탄노조를 제압한 후 공기업 민영화의 불을 댕겼다. 미국에선 정부 역할 축소, 자유시장 확대를 강조하는 시카고학파가 케인스학파를 역사의 뒤편으로 밀어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주류 경제학’의 지위를 얻었으며, 주류 경제학자들은 케인스를 경제학의 이단(異端)으로 몰아세웠다.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와 미국에서 주류 경제학을 공부한 개발도상국의 엘리트들은 규제완화·민영화·작은정부·감세라는 신고전학파의 복음을 세계에 전파했다.
죽었던 케인스가 다시 숨통을 터뜨린 건 지난해 촉발한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이다. 규제 철폐가 시장 참가자의 탐욕을 불렀고, 그것이 폭발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보이지 않는 손의 실패’를 강조한 케인스와 수정자본주의를 되살려냈다. 각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으며 케인스·루스벨트 전기의 출간 붐도 일었다.
지난해 미국 대선 때 복지정책을 강조하면서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원한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시카고학파의 대칭점에 선 네오케인시언(신케인스학파)의 대표주자다.
재점화한 논쟁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참패한 걸 두고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신자유주의식 개혁에 따른 후유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이에크와 케인스의 다툼이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재점화한 셈이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를 거치면서 국가 주도로 산업화를 이룩했다. 신고전학파의 복음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건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신고전학파 논리에 따른 공기업 민영화에 역대 정부 중 가장 적극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공기업 개혁에서 김대중 정부보다 후퇴했으며, 이명박 정부는 규제 철폐, 공기업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으나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당초 구상에서 물러선 모습이다.
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회가 장하준 캐임브리지대 교수를 초청해 연 토론회에서 정두언 의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만고의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 지금까지 왔으나 그 과정에서 외환위기를 겪었고, 세계적 경제위기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면 국가전략으로 채택한 신자유주의를 되돌아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총리로 낙점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케인시언으로, 국내 케인스학파의 태두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첫 제자다.
죽은 두 천재 경제학자의 패러다임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지구적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낡은 케인스식 처방으로는 위기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인간의 야성적 충동을 고려하지 않은 시장 만능주의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이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