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아팠다

한국 미국 유럽 입체취재 전력산업 구조개편 현장을 가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10-06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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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이후 승승장구해온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복음이 미국과 유럽에서 공격받고 있다. 한국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우등생이자 수혜자였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한국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아팠다
    Prologue 하이에크 vs 케인스

    지금, 인류는 전례 없이 풍요로운 시대를 산다.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늘려놓은 자본주의 덕분이다. 미국의 1인당 구매력은 미국 헌법이 채택된 1789년 구매력의 40배에 달한다. 자본주의는 승승장구했다. 지구의 경제체제는 북한을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자본주의로 수렴했다. 국가주도 계획경제를 꾸린 카를 마르크스 추종자들의 실패는 처참했으며, 미국의 노예제는 남북전쟁 때 북군이 승리하면서 종언을 고했다. 19세기 유럽에서 꽃핀 경제체제가 압도적 효율성을 과시하면서 세계를 석권한 것이다.

    지난 세기 자본주의 내부에선 크게 두 가지 흐름이 경쟁했다. 존 메이나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1883∼1946)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1899∼1992)의 ‘서로 다른 길’이 엎치락뒤치락 세계경제를 주물렀다. 하이에크는 정부 개입의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자유방임 원칙에 따라 시장에 맡길 것을 강조한 반면, 케인스는 자유방임은 곤란하다면서 시장의 실패를 막으려면 정부 개입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사(史)는 두 사람의 논쟁을 ‘세기의 대결’로 기록한다.

    처음엔 케인스가 승리한 듯 보였다. 공화당 소속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71년 “우리는 이제 모두 케인시언(Keynesian)”이라고 선언했다. 시장이 주무르던 자본주의가 정부의 품에 안긴 것은 1927년 대공황을 거치면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고용을 늘리겠다”면서 뉴딜정책에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뒤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큰 정부를 옹호한 케인스 이론은 자본주의를 구한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으나 임금상승으로 기업의 수익은 줄었고 복지지출이 증가하면서 국가 재정이 악화했다.

    케인스 이론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불황 속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패배한 듯 보였던 하이에크가 부활한다. 하이에크의 세례를 받은 마거릿 대처는 1979년 영국 총리에 오른 뒤 영국병(病) 해소를 표방하며 노동시장 개혁, 공기업 민영화에 나섰다. 만성적 저성장, 노조권력화, 과잉 복지부담을 해결한 이 ‘철의 여인’ 덕분에 영국 경제는 되살아났다. 대서양 건너편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두 지도자는 하이에크 패러다임의 지지자요, 실현자였다.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는 케인스를 변방으로 쫓아냈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정부와 시장의 헤게모니 다툼은 시장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영국에서 대처는 석탄노조를 제압한 후 공기업 민영화의 불을 댕겼다. 미국에선 정부 역할 축소, 자유시장 확대를 강조하는 시카고학파가 케인스학파를 역사의 뒤편으로 밀어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주류 경제학’의 지위를 얻었으며, 주류 경제학자들은 케인스를 경제학의 이단(異端)으로 몰아세웠다.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와 미국에서 주류 경제학을 공부한 개발도상국의 엘리트들은 규제완화·민영화·작은정부·감세라는 신고전학파의 복음을 세계에 전파했다.

    죽었던 케인스가 다시 숨통을 터뜨린 건 지난해 촉발한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이다. 규제 철폐가 시장 참가자의 탐욕을 불렀고, 그것이 폭발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보이지 않는 손의 실패’를 강조한 케인스와 수정자본주의를 되살려냈다. 각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으며 케인스·루스벨트 전기의 출간 붐도 일었다.

    지난해 미국 대선 때 복지정책을 강조하면서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원한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시카고학파의 대칭점에 선 네오케인시언(신케인스학파)의 대표주자다.

    재점화한 논쟁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참패한 걸 두고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신자유주의식 개혁에 따른 후유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이에크와 케인스의 다툼이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재점화한 셈이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를 거치면서 국가 주도로 산업화를 이룩했다. 신고전학파의 복음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건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신고전학파 논리에 따른 공기업 민영화에 역대 정부 중 가장 적극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공기업 개혁에서 김대중 정부보다 후퇴했으며, 이명박 정부는 규제 철폐, 공기업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으나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당초 구상에서 물러선 모습이다.

    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회가 장하준 캐임브리지대 교수를 초청해 연 토론회에서 정두언 의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만고의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 지금까지 왔으나 그 과정에서 외환위기를 겪었고, 세계적 경제위기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면 국가전략으로 채택한 신자유주의를 되돌아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총리로 낙점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케인시언으로, 국내 케인스학파의 태두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첫 제자다.

    죽은 두 천재 경제학자의 패러다임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지구적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낡은 케인스식 처방으로는 위기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인간의 야성적 충동을 고려하지 않은 시장 만능주의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아팠다

    2001년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 때 전기가 끊겨 문을 닫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상점.

    Episode 1캘리포니안 드림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키워드는 시장경쟁,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다. 이 키워드의 실현은 한국에도 일종의 숙제였다. 김대중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를 정책으로서 가동했으나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공기업 개혁은 후퇴했다. 김대중 정부 때 민영화한 공기업은 체질 개선에 성공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국가는 공기업을 시장에 내다팔면서 재정도 확충했다. 그렇다면 규제완화와 민영화, 사유화는 필연적으로 성공하는 것일까.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로 가보자.

    1998년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가장 급진적으로 전력시장 자유화에 나섰다. 규제완화의 목표는 경쟁을 도입해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게 함으로써 전력을 값싸게 하는 것이었다. 주정부는 1998년 3개 독점 전력회사에 발전소 매각을 명령했다. 경쟁(competition)과 선택(choice)이라는 시장원리를 전력산업에 적용한 것이다.

    2001년 캘리포니아에서는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었다. 발전회사들이 시장가격이 낮다면서 판매사들에 전력을 공급하지 않은 것이다. 엔론을 비롯한 민간 발전회사들은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전기가격을 조작했다. 그 결과로 도매요금이 급등하면서 배전회사들이 차례로 도산했다.

    캘리포니아는 결국 주민 세금을 쏟아 부어 전략산업을 재건했다. 미국소비자연맹(CFA)은 “자유화는 고통만 가져왔을 뿐 얻은 건 없었다”고 평가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 낸시 보겔은 “일부 발전회사가 전기요금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했다”면서 “전력회사가 전기판매 구조를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상처만 남긴 개혁

    캘리포니아공익사업위원회(CPUC) 존. A 본 커미셔너의 에너지담당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는 로버트 키노시안은 “시장화는 실패했다”고 단언하면서 “과거의 규제시스템이 시장시스템보다 좋았다”고 말했다. CPUC는 캘리포니아에서 전력, 천연가스, 통신, 상수도, 철도산업을 규제하는 기관. 그는 2001년 전력위기 때 위기 극복 담당자로 일했다.

    ▼ 캘리포니아가 미국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전력산업 자유화를 시행한 이유는 뭔가.

    “캘리포니아는 1980년대까지 미국에서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지역이었다.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유지하는 데 다른 주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환경규제 때문에 발전설비를 충분하게 갖추지 못해 다른 주에서 전기를 수입했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자유화 요구가 강하게 일어났다. 규제완화, 시장화 정책을 펼치면 요금이 떨어진다는 거였다.”

    ▼ 당시 시장화·자유화론자가 내세운 논리는 뭔가.

    “효율성이 높아져 비용이 준다는 주장이었다. 전력산업에 욕심을 가진 엔론 같은 회사,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는 사람들, 전기요금이 떨어지리라고 기대한 대형 사용자들이 찬성했다. 자금력을 이용한 로비도 대단했다. 시장화의 장점을 강조하는 토론이 많이 열렸다.”

    ▼ 일반 시민의 의견은 어땠나.

    “찬반 논란은 이해당사자 사이에서만 일어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작은 정부가 큰 정부보다 효율적이라고 여겼다. 코스트가 떨어짐으로써 소비자가 혜택을 본다고 믿었다. 1990년대부터 작은 정부론이 힘을 얻었다.”

    ▼ 법률 준비는 어떻게 이뤄졌나.

    “실제로는 주정부가 주도했다. 의원들은 법을 통과시켰을 뿐이다. 그런데도 의원들이 책임을 졌다. 민주당 소속으로 당시 주 상원 에너지위원장이던 스티븐 피스는 정치 생명이 끝났다.”

    ▼ 기존의 독점 전력회사들은 자유화·시장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처음엔 기존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전력회사의 주주들도 걱정했다. 하지만 주정부가 좌초비용(Stranded Cost) 지원을 약속한 후 의견을 바꿨다. 노후 발전설비를 새로운 발전회사에 넘기고 송·배전만 담당하는 게 유리하다고 결론내린 것이다.”

    ▼ 2001~2002년 전력위기는 어떻게 전개됐나.

    “도매시장 운영초기(1998~2000년)엔 별문제가 없었다. 2000년 이후 가격이 급등했는데 규제를 철폐한 탓에 주정부가 개입할 수 없었다. 전력위기는 발전회사의 고의적 전력생산 감축과 시장 조작(Market Manipulation) 때문에 발생했다. 전력 수요가 높아져 생산을 늘려야 할 때 조작이 일어났다. 발전회사들은 전기 생산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격을 올렸다. 모든 전력거래를 풀시장(Pool)에서 하도록 강제한 의무적 풀시장(Manda-tory Pool)이었기 때문에 조작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시장화는 결과적으로 전기 값을 올렸고 공급 안정성도 떨어뜨렸다.”

    ▼ 2003년 이후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은 어떻게 변했나.

    “시장화는 실패로 끝났다. 전력회사(IOU)가 심각한 어려움에 빠졌다.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에 도움을 요청했고, FERC는 발전회사들에는 IOU에 무조건 전력을 공급하라고 명령했다. 주정부는 IOU를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신규 발전설비 확충에 나섰다. 파산한 전기회사에 투입한 예산은 납세자가 낸 세금이다. CPUC는 캘리포니아에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자를 규제하는 권한을 회복했다. 발전회사와 배전회사가 장기계약을 맺게끔 했으며 발전소에서 발전을 중단하지 못하게끔 했다.”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아팠다

    로버트 키노시안 CPUC 에너지 담당 정책보좌관 <BR>“시장화의 실패는 캘리포니아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전력산업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자유시장이 실패한 것이다.”

    실수인가, 실패인가

    결국 캘리포니아의 전력산업 자유화는 상처를 남긴 채 자유화 이전과 비슷한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 전력산업에서 규제 아래의 독점시장과 경쟁시장 체제 중 어느 쪽이 낫다고 보는가.

    “전력산업은 특수하다. 발전·송전·배전의 수직통합 및 독점체제가 효율적이면서 안정적이다.”

    ▼ 시장화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시장 설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닌가.

    “당시의 마켓 디자인이 잘못됐기 때문에 다시 시장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기는 하다. 설계가 잘 안 됐고, 송전선로가 부족했으며 용량시장(발전소가 전기를 팔지 않고 생산만 해도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이 갖춰지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장화의 실패는 캘리포니아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전력산업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자유시장이 실패한 것이다. 텍사스 메릴랜드에서도 규제완화 정책이 실패했다. 경쟁체제에선 발전회사가 전기가격을 올리고자 신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사태 이후 여러 주가 시장화를 중단했다. 한국도 자유화를 중단한 것으로 안다. 전력산업에선 정부의 규제를 받는 독점기업이 바람직하다. 시장이 무조건 옳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에선 왜 신고전학파의 복음이 통하지 않은 걸까? 미국 연방하원, 캘리포니아 주의회 청문회에 참석해 전력산업의 규제완화와 시장화를 비판해온 유진 코일 박사는 전력산업은 △저장이 불가능하고 △수요 공급의 가격탄력성이 낮으며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자유화, 시장화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전력처럼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는 사업은 정부의 규제를 받는 독점체제가 유리하다. 시장화론자는 생산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시장만 들여다보았다. 수요가 낮으면 공급이 줄어 가격이 오르고 수요가 높으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이론은 공공서비스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전력을 비롯한 공공서비스는 가격탄력성이 낮다. 가격이 오른다고 난방을 멈추거나 냉장고를 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시장화 자유화는 공급안정성에서도 문제를 가져온다. 지금 경제위기로 전력 소비가 줄었는데, 시장시스템에선 기업들이 신규로 발전소를 짓지 않을 것이다. 수년 뒤 경제가 되살아나 전력 소비가 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봐라. 정부의 규제와 개입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의 고전적 작용이 모든 시장에서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다. 5~6년의 선(先)투자가 필요한 대형산업엔 클래식 이론이 들어맞지 않는다.”

    ▼ 캘리포니아가 시장화를 도입할 때의 분위기는 어땠나.

    “당시엔 레이건 대통령의 규제 철폐가 효과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1846년부터 연방정부가 규제해온 천연가스에 대한 규제를 레이건이 풀었다. 1980년대 천연가스 가격이 상당히 비쌌는데, 규제를 완화한 뒤 천연가스 값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전기도 시장에 맡기면 같은 효과를 거두리라고 여겼으며 독립발전사업자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로비활동을 했다. 결국 정치인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따지고 보면 천연가스의 시장화도 성공한 게 아니다. 나중에 가격이 다시 올랐다.”

    캘리포니아 전력산업에서 시장화·규제완화는 실패했다. 캘리포니아가 도입한 의무적 풀시장의 롤 모델은 영국이었다. 영국 전력시장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Episode 2 영국 모델의 흥망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슬로건을 만들어낸 복지국가였다.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이던 이 구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제 피폐의 극복 과정에서 마련된 것이다.

    1978년 총선에서 마거릿 대처가 승리한 것은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상징하는 비효율적인 큰 정부와 노조에 대한 중산층의 불만 덕분이었다. 대처가 집권한 뒤 영국은 정부 역할을 줄이면서 시장 기능을 강화했다. 하이에크 이념의 실현자인 대처의 새로운 정책으로 영국병은 치유됐으며 경제는 활력을 되찾았다. 대처리즘이란 단어가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다.

    그런데 영국의 전력시장에서도 신고전학파의 복음은 통하지 않았다. 영국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시행한 최초의 선진국. 영국은 1990년 잉글랜드의 발전·송전시장을 독점하던 국영 전력청을 3개의 발전회사와 1개의 송전회사로 나눈 뒤 3개의 발전회사를 민영화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도 시장화를 추진했다.

    발전부문은 현재 13개 회사로 쪼개졌는데, 그중 7개 기업이 외국자본에 넘어갔다. 전기요금은 떨어지지 않았으며 전력회사들은 망해나갔다.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브리티시에너지도 위기를 겪었다. 민간회사들이 수익을 늘리고자 투자보다는 유지보수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공급 안정성도 무너졌다.

    영국 정부는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오류를 인정하고 풀시장 운영방식을 바꾸었다. 2004년 영국 하원 상공업위원회는 “수명이 다한 네트워크 설비를 대체할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민영화 이전의 전력설비는 좋았지만 이를 인수한 민간기업들은 오랫동안 투자 없이 사용하기만 했다”고 꼬집었다.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아팠다

    스티브 토머스 그리니치대 교수 <BR>“대처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만능으로

    에너지 빈곤층

    영국 그리니치대 스티브 토머스 교수에게서 전력시장 구조개편의 전말을 들어봤다. 그는 “영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비극으로 종결됐다”면서 “영국의 전력시장은 현재 과점에 가까운 형태”라고 말했다.

    ▼ 영국이 전력산업 민영화에 나선 까닭은 뭔가.

    “영국은 1980년대부터 국영산업 민영화에 나섰다. 석유(1980년) 통신(1984년) 가스(1987년) 수도(1994년) 순서로 사유화했다. 시장화, 민영화가 무조건 옳다는 논리에서 비롯했다. 국영산업의 민영화는 경쟁시장을 만든 게 아니라 공공독점을 민간독점으로 바꿔놓았다. 소유권만 정부에서 민간으로 바뀌었을 뿐 산업구조엔 큰 변화가 없었다. 전력·가스산업 구조개편은 민영화의 대표적 실패 사례다.”

    ▼ 대처 정부가 영국병을 치료하지 않았나.

    “질문에 오해가 있다. 영국병은 경쟁력이 떨어진 제조업에서 발생한 문제로 국영산업과는 특별한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대처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만능으로 여기면서 국영산업을 민영화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민영화한 공공산업 그 어디에서도 경쟁시장은 도입되지 않았다.”

    ▼ 영국에선 민영화 이후 전기요금이 떨어진 것으로 안다.

    “착시 현상이었다. 원자력 부문의 효율성 증대와 발전소 헐값 매각의 결과가 오해를 일으킨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직전까지 화석연료 가격이 오르면서 전기요금은 다시 올랐다. 경기 회복기에 막대한 규모의 전력설비를 새로 확충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다. 민영화 이후 전기·가스산업에서 효율성이 향상됐다는 연구결과가 단 하나도 없다. 에너지 빈곤층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 영국 모델이 왜 전세계로 확산했다고 보나.

    “영국 모델을 확산시킨 건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다. 전력시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잘못된 모델을 퍼뜨렸다.”

    ▼ 경제학 이론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은 까닭을 뭐라고 보나.

    “공공재와 일반재화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공재엔 완전경쟁 모델이 들어맞지 않는다. 공공재는 대체재가 존재하지 않고 수요가 탄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재의 완전 경쟁시장은 구축하는 데 비용도 많이 든다. 영국은 전력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면서 시장 설계, 마케팅, 수수료 등에 15억달러를 추가로 지출했다. 공공재는 규제독점이 경쟁시장보다 안정적, 효율적이라는 게 현재까지의 평가다.”

    ▼ 한국에선 공공부문의 무사안일과 비효율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국영기업이 민간기업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많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 아니다. 그건 매니지먼트의 문제다. 대처 정부가 공기업을 시장에 내다판 건 재정을 확보하고 민간부문의 영국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영국의 공기업이 비효율적이었다면 민간기업이 인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 북유럽이 도입한 전력산업 경쟁시장은 성공했다. 영국이 시장 설계를 잘못한 거 아닌가.

    “북유럽시장(Nordpool·노드풀)은 영국과는 개념이 다르다. 영국은 국가소유 단일 전력망을 인위적으로 분리한 반면 북유럽은 잉여 전력을 국가 간에 거래하는 데서 출발했다. 북유럽시장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이 대부분 공기업이라는 데 있다. 영국은 그와 다르게 전력산업 자체를 사유화했다. 수력자원이 풍부해 공급 안정성이 갖춰진 것도 스칸디나비아의 장점이다. 노르딕 자본주의가 앵글로-색슨 자본주의보다 온건한(moderate)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pisode 3 끝나지 않은 다툼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아팠다

    에릭 트라네 노드풀 CEO

    1993년 설립된 북유럽 전력시장 노드풀에선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의 지역송전사업자가 전기를 구입한다. 1996년 노르웨이, 스웨덴이 풀시장을 통해 전력거래를 시작했고 핀란드(1998년) 덴마크(2000년)가 합류했다. 노드풀은 성공한 전력산업 시장화 모델로 손꼽힌다. 에릭 트라네 노드풀 CEO(최고경영자)는 “정부의 규제와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덕분에 노드풀이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 성공 비결은 뭐였나.

    “정부로부터 독립한 운영체계를 가졌다는 점과 상호신뢰 투명성 덕분이다. 우리는 상호신뢰에 바탕을 두고 거래 내용과 정보를 시장 참여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 전력시장 자유화 모델은 영국, 캘리포니아가 도입했다가 실패한 강제적 풀(Mandatory pool)과 자발적 풀(Voluntary pool)로 구분한다. 어느 쪽이 좋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우리가 선택한 자발적 풀이 더 좋다. 의무적 풀은 위험을 분산하기 어렵다. 선물투자, 쌍무계약 같은 헤징이 필요하다.”

    ▼ 노드풀에선 시장 조작이 왜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나. 영국의 한 전문가는 노르딕 자본주의가 온건한 것도 이유라고 했다.

    “캘리포니아와 달리 시장 설계가 잘돼 있기 때문이다. 정보공개와 투명성이 확보되면 특정 참여자가 시장을 교란하기 어렵다.”

    ▼ 전력산업의 경우 정부의 규제를 받는 독점과 경쟁시장 중 어느 쪽이 장점이 많다고 보는가. 캘리포니아의 한 당국자는 전력산업에선 규제를 받는 독점이 시장경쟁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규제독점과 경쟁체제는 국가별 특징에 따라 도입할 문제이긴 하지만 당연히 효율성이 높은 경쟁시장이 더 좋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그런 주장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된다. 시장은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 국가별로 보면 노르웨이는 수력, 덴마크는 화력, 핀란드는 화력과 원자력, 스웨덴은 수력과 원자력에 특화해 있다. 물이 풍부한 여름철에 노르웨이가 남아도는 전력을 덴마크에 팔면 덴마크는 화력발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겨울철엔 스웨덴, 덴마크가 발전량이 줄어든 노르웨이에 전기를 판다.”

    노드풀은 환경이 다른 지역 간 교역이라는 점에서 같은 환경을 가진 단일 시장인 영국이나 캘리포니아와 다르다. 세계화를 강조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복음대로 서로 다른 국가 간 자유무역이 참가자 모두에게 혜택을 준 것이다.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아팠다

    사라 매킨리 FERC 대외담당관

    미국 연방정부의 목표도 노드풀처럼 고립된 전력망을 연결해 미국 전체를 아우르는 전력 도매시장을 만드는 데 있었다.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등 동부지역 13개 주가 연합한 전력 도매시장 PJM은 성공적으로 운영된다. PJM은 캘리포니아, 영국처럼 단일지역 시장이 아니라 13개 주가 서로 교역하는 시장이다.

    PJM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에서 발생한 도매시장 붕괴 이후 미국에서 자유화 움직임은 주춤한 상태다. 미국 전력산업의 핵심 이슈는 자유화에서 △기후변화에 대비한 에너지 효율성 증가 △신재생 에너지 개발 △낙후한 전력설비 보강 쪽으로 옮겨갔다.

    다음은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의 사라 매킨리 대외담당관과의 일문일답. FERC는 미국 전체의 전력, 천연가스, 석유산업을 규제하는 기관이다.

    ▼ 미국 연방정부가 전력산업 자유화를 시작한 이유는 뭐였나?

    “가스산업 자유화를 통해 요금인하와 효율성 향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때 얻은 자신감을 토대로 전력산업에서도 규제를 풀기로 했다. 전력산업은 결과가 조금 복잡하다. 전기요금 급등이 재앙으로 불거졌다. 힘든 상황이지만 자유화가 반드시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 캘리포니아의 실패를 어떻게 보는가.

    “캘리포니아의 특수성에서 나온 문제다. 캘리포니아의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곤란하다. 잘못된 시장 설계, 지나친 환경 규제가 원인이었다. 동부의 13개 주가 참여한 PJM은 잘 운영되고 있다.”

    ▼ 전체적으로는 성공했다는 건가.

    “우리는 도매시장을 규제하는 기관이다. 도매시장 경쟁은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본다. 소매시장 자유화는 각 주가 결정할 일이지만 조금 위험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 요즘 미국 전력산업에서 중요한 이슈는 자유화인가.

    “1960년대 이후 신규 건설이 없는 송전선로 보강이 시급하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늘려야 한다.”

    미국 의회를 감시하는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의 타이슨 슬로컴 에너지담당 국장은 FERC의 견해와 달리 자유화가 가져온 혜택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 전력산업 자유화의 모멘텀이 된 가스산업 자유화는 성공하지 않았나.

    “가스 자유화가 전력 자유화로 이어진 건 사실이다. 1980년대까지 미국의 가스 값은 정부가 결정하는 고시가격이었다. 에너지기업의 요구에 따라 가스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었는데, 2000년 이후 가스 가격은 급등,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가스가격 급등 때 과잉투자된 LNG(액화천연가스) 설비도 골칫거리다.”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아팠다

    타이슨 슬로컴 퍼블릭 시티즌 국장

    ▼ 연방정부 차원에서 자유화론이 힘을 얻은 까닭은 뭔가.

    “지금은 파산한 엔론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퍼부은 로비자금이 워낙 많았다. 대용량의 전기를 사용하는 기업들도 가격하락을 바라면서 자유화를 지지했다.”

    ▼ 자유화가 거둔 성과로는 뭐가 있나.

    “전혀 없다. 치른 비용과 피해가 막대하다. 전기는 상품으로서 거래가 어렵다는 걸 보여준 값비싼 실험이었다. 억지로 꼽는다면 사람들이 전기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 자유화가 가져온 악영향은 뭔가.

    “자유화를 추진한 모든 지역에서 전기 요금이 올랐다.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에서 자유화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못 된다.”

    ▼ 과거 자유화를 주장한 사람들은 지금 어떤 논리를 펴고 있나.

    “전기요금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은 쏙 들어갔다. 지금은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위해선 자유화가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자유화를 지지하던 대기업들은 규제체제로의 복귀를 요구한다. 알루미늄 제련을 비롯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들의 연합체인 엘콘(ELCON)이 의회를 상대로 입법 로비를 벌인다. 시장가격 경쟁 체제(Market Based Rate)는 폐해가 많다. 비용 중심의 가격 제도(Cost Based Rate)로 선회해야 한다.”

    Episode 4 멈춰 선 한국

    한국은 1999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나섰다. 영국식 강제 풀시장 도입과 독점 전력회사인 한국전력공사의 분할 및 민영화가 골자였다.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 회사로 나누고 전력거래소를 설치하는 1단계 구조개편은 2001년 4월 완료됐다. 한국동서발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중부발전 등 6개사가 한전의 자회사 형태로 출범했다. 배전부문도 발전부문과 마찬가지로 분할한 뒤 민영화, 시장화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2004년 노사정위원회 공공부문구조개편특별위원회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기대 이익에 비해 위험이 크다고 결론짓고 정부에 전략산업 구조개편 중단을 요구했다. 캘리포니아의 시장화 실패가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멈춰선 상태다.

    정부 실패보다 시장 실패가 더 아팠다

    유진 코일 박사

    공기업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한 이명박 정부도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에 불안을 야기하는 에너지 공기업 민영화엔 신중하게 접근하는 분위기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도 2008년 의정보고서에서 전기, 가스, 수도, 의료보험은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에선 지능형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구축을 계기로 전력 소매시장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식 풀시장 도입을 주장하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전력 소매시장 도입 의견이 제기된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런던, 오슬로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중간에 멈춰선 한국 상황과 스마트 그리드에 대해 서로 다른 처방을 내놓았다.

    로버트 키노시안 CPUC 정책보좌관은 “정부가 소유한 독점기업의 자회사 형태로 발전회사가 존재하고 송전 배전망은 독점체제로 일원화한 한국의 특이한 체제가 오히려 좋아 보인다. 소매시장 경쟁과 스마트 그리드는 상관이 없는 것인데 왜 그런 주장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에릭 트라네 노드풀 CEO는 “한국도 도매시장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중간에 멈춰 서 있는 건 이상하다. 시장화가 어렵다면 과거처럼 발전, 송전, 배전 일원화 체제로 가는 게 차라리 낫다. 나라별 사정에 따라 판단할 문제지만 소매시장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성공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유진 코일 박사는 “과거의 한전 같은 수직통합 독점모델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라 매킨리 FERC 대외담당관은 “스마트 계량기를 사용해 시간대별 사용량을 소비자가 알게 되면 효과적인 절전이 가능한데, 스마트 그리드는 시장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국에서 왜 그런 주장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퍼블릭시티즌의 타이슨 슬로컴 국장은 “스마트 그리드는 미국의 낙후한 전력망을 일신하는 것으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불과 몇 달러를 아끼겠다고 새벽에 세탁기를 돌리겠느냐”고 말했다.

    그리니치대 스티브 토머스 교수는 “스마트 그리드의 효과가 과장됐으며 전력 소매시장이 필요하다는 건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스마트 그리드도 규제받는 독점체제 안에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pilogue 정부의 실패 vs 시장의 실패

    공기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신이 내린 직장’이다. 방만한 경영과 경쟁력 저하가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완전경쟁과 사유화가 치료약이라고 답한다.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공기업 매각이 불가피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영국과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이 웅변하듯 공공성이 강한 분야의 민영화, 시장화는 독이 될 수 도있다.

    세계 각국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의 경제 모델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앵글로-색슨식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을 정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도 대처리즘 이전으로 회귀하는 모습이지만, 중국 원자바오 총리는 시장의 힘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결이 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한국에 가져다준 풍요는 엄청나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이 시스템의 수혜자다. 그러나 1997년 이후 미국 모델을 숨가쁘게 좇으면서 발생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교역 정책에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방점을 찍고, 국내 정책에선 정부의 규제와 감독을 강조하는 절충의 길을 제안한다.

    죽은 두 경제학자의 다툼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된다. 신고전학파와 네오케인시언은 각각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실패’를 우려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 모델이 나타날 것인가.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속도를 올려도 빠져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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