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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 정권교체’ 하토야마 내각 출범

하토야마 측근 “한일 관계 더 좋아진다” 귀띔

  • 윤종구│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일본 최초 정권교체’ 하토야마 내각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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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 정권교체’ 하토야마 내각 출범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가 5월14일 오자와 이치로 대표의 초상화 곁을 지나고 있다.

논쟁은 끝없이 이어졌고 어느새 사람들이 하나둘 불어났다. 기자들도 카메라를 들고 몰려들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이런 광경은 일본에선 일찍이 볼 수 없었다. 자기 생각을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 오죽하면 혼네(本音·속내)와 다테마에(建前·겉표현)가 다른 게 일본인이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하물며 모르는 사람과 길거리에서, 그것도 정치적 주제를 갖고 언쟁을 벌이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일본 사회, 일본 국민 전체가 들떠 있었다. 이런 흥분 속에서 철옹성 같았던 자민당의 ‘1955년 체제’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 정말 독하네”

8월30일 밤 총선 개표방송을 보면서 문득 이런 말이 나왔다. 민주당이 압승할 것이란 전망은 진작부터 모든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실해진 사실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망치보다는 상당히 완화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한국에서 총선을 취재한 경험에 바탕을 둔 추론이었다.

2004년 4·15 총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한나라당은 궤멸 직전까지 갔다.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심하게는 30석 정도로 몰락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박근혜 당시 대표의 막판 호소가 좀 먹혀들긴 했지만, 다들 ‘열린우리당 압승-한나라당 참패’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개표 결과 양당의 표차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152석, 한나라당 121석. 막판 견제심리가 작용한 결과였다. 2008년 4·9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은 대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170~180석을 넘볼 기세였지만 과반을 간신히 넘기는 153석을 얻었다. 한국 국민은 정에 약한 것일까. 어느 한쪽이 너무 기울면, 약자에 대한 막판 견제심리가 여지없이 발동했다.

2009년 8·30 일본 총선은 달랐다. 7월21일 아소 총리가 국회를 해산할 시점만 해도 여론의 최대 관심은 민주당이 단독 과반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졌다. 선거 막판에는 민주당이 전체 480석 중 3분의 2선인 320석을 넘길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개표 결과 민주당 308석, 자민당 119석이었다. 선거 직전 의석이 민주당 115석, 자민당 300석이었으니 총선을 통해 얼마나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본 사람은 한번 정을 끊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 국민은 자민당 실세들을 처참하리만큼 응징했다.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전 총리는 49년 연속 지켜온 텃밭 아이치(愛知)현에서 민주당의 30대 후보를 맞아 개표 초반 탈락이 확정될 정도로 완패했다. 이시카와(石川)현이 지역구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는 30대 초반의 여성 신인에게 줄곧 뒤지다 막판 가까스로 역전했다. 이른바 ‘미녀 자객’이었다. 예전 같으면 지역구는 비서에게 맡기고 후배들 지원유세를 돌던 모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운동화를 신고 지역구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방영됐지만 유권자들은 동정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자민당 최대 파벌 마치무라파의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회장이 홋카이도 지역구에서 패하는 등 내로라하는 파벌 영수들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자민당이 패전 후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고인 물은 썩는다’는 진리 앞에 자민당도 예외는 아니었고 국민은 분노했다. 잇따른 정치부패로 이어진 정치와 돈의 커넥션, 국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주의, 대국민 서비스 약화 등 일본 사회의 부정적 현상에 대해 일본 국민은 너나없이 돌을 던진 것이다.

오죽하면 작년 말 부임한 기자에게 몇몇 일본인 지인이 “우리 일본도 정권교체가 가능한 나라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거나 “아직 일본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란 말을 자조적으로 내뱉었을까. 작년 가을 전세계를 덮친 금융위기로 인해 일본경제가 침체된 것도 자민당으로선 뼈아팠다. 억울한 면도 있지만 이 역시 집권당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민주당은 자민당의 장기집권에 국민이 염증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국민이 가려워하는 부분, 목말라 하는 대목에 정확히 주사를 놨다. ‘관료주의 타파’ ‘생활정치 복원’ ‘아동수당 확대’ 공약에 유권자가 열광한 것이다.

‘생활정치’‘아동수당’에 열광

하토야마 총리는 9월16일 소집된 중·참의원 합동 특별국회에서 일본의 제93대 총리로 선출됐다. 인물로는 60명째다. 그는 운이 엄청 좋은 사람이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가 다 차려놓은 밥상을 막판에 차지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오자와는 2006년 4월부터 3년 넘게 민주당 대표를 맡아 수권정당으로 체력을 길렀다.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선 오자와의 진두지휘하에 자민당을 꺾고 제1당으로 올라섰다. 양당제하에서 실권을 가진 중의원에선 비록 야당이었지만, 참의원에선 2년 전에 이미 여야가 역전된 것이다.

그러나 다들 ‘차기 총리는 오자와’라고 믿었던 올 3월 초, 난데없이 도쿄지검 특수부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불법 비자금을 만든 혐의를 받고 있던 건설업체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 민주당과 오자와는 ‘권력형 기획수사’라며 반발했지만, 오자와의 회계담당 비서가 구속되면서 오자와의 사임을 바라는 여론이 70%를 오르내렸다. 자민당과의 지지율도 역전됐다. 버티던 오자와는 ‘총리 문턱’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퇴했다. 5월16일 대표 선거에서 오자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하토야마가 선출됐다. 그는 이후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단기간에 민주당 지지율을 회복하면서 총선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특히 하토야마 총리의 부인 미유키 여사는 일본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미유키 여사는 1943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나 1960년대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요리책을 펴내기도 한 부인은 총선 다음날인 8월31일 ‘마이니치신문’ 기고를 통해 ‘인간 하토야마’를 거침없이 공개했다. “보통사람이고 자연 그대로의 인간이다. 휴일엔 함께 슈퍼마켓에 가서 즐겁게 카트도 끌어준다. 새우 센베를 좋아하는데, 내게 혼날까봐 그런지 들키지 않으려는 듯 카트 안으로 살짝 집어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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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구│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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