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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③

북한 집단체조

1분40초 열병식 위해 1년간 지옥훈련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집단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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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도중 가장 무서운 것은 일사병이다. 땡볕에서 하루 종일 훈련을 하게 되면 쓰러지는 학생도 나온다. 하지만 조별 훈련을 책임진 선생들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노동당 입당과 같은 개인적 이해관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전체 리허설에 들어가면 행사 인원을 제시간에 수송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이때는 군용트럭이 행사 차량으로 대규모로 동원된다. 평양 시내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도 특별 동원된다. 행사 참가자들은 일반 정류장이 아닌 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수송용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간다. 보통 저녁 훈련이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은 밤 10시경이다.

지금은 북한도 행사 요령이 생겨서 행사 인원 수송체계가 잘 잡혀 있지만 20년 전에는 집이 멀리 있는 학생들은 밤 12시까지 훈련하고 경기장 안에서 단체로 자는 일도 많았다. 남녀가 하루 종일 함께 훈련하고 잠까지 함께 자다보니 ‘사고’도 잦았다고 한다.

훈련 기간에 학생들은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학부모들이 2인1조로 돌아가면서 학급별로 국을 끓여오기도 한다. 다른 부모보다 못하면 자기 아이가 ‘왕따’라도 당할까봐 없는 살림에 장마당에 나가 육류를 사서 고깃국을 끓여가는 일이 많다.

국가에서 간식으로 빵과 과자 등도 공급하지만 배불리 먹을 양은 아니다. 또 집단체조에 참가하면 많이 먹지 말라고 요구받는다. 배가 부르면 나른해지고 동작이 굼떠진다는 이유에서다.



학급이 행사에 참가했지만 개인적으로 질병이 있는 경우엔 후방조에 소속된다. 후방조의 임무는 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의 소지품 지키기, 간식 받아오기, 국 날라오기 같은 심부름 위주다.

집이 평양에 있는 학생들은 그나마 낫다. 가장 불쌍한 학생이 대학에서 동원된 기숙사생들이다. 기숙사생들은 비닐봉지에 밥을 받아오는데 기숙사 식당에서 개별적으로 상대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밥을 학급 또는 학과별로 인원수에 맞게 한꺼번에 담아준다.

기숙사 밥 양이 워낙 적은데다 학생 간부들이 그 밥을 빼내 배부르게 먹고 나서 행사장에 가져다주기 때문에 결국 한줌도 못 되는 양만 남는다. 돈이라도 많으면 장마당에서 보충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집에서 다니는 ‘자가생’들의 신세를 지지 않는 한 버틸 수가 없다.

집단체조의 훈련 과정이 매우 혹독하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는 이러한 집단체조가 아동학대의 대명사로 비치지만 정작 북한에서는 많은 성인과 학생들이 저마다 이 행사에 참가하려고 경쟁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바깥세상을 많이 알고 있는 일부 고위 간부와 부유층들이 자기 자녀를 힘든 훈련에서 빼서 후방조에 포함시키는 사례도 많아지고는 있다.

아리랑 공연 참가선물, TV

많은 사람이 행사참가에 적극적인 이유는 바로 보상 때문이다. 보상은 정치적 보상과 물질적 보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전에는 정치적 보상의 비중이 컸지만 최근에는 물질적 보상이 큰 동기부여가 된다. 어린 학생들 중에는 구경하기 힘든 간식을 받아먹기 위해 참가하는 사례도 많다.

학생에 대한 보상이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적은 1982년 열렸던 음악무용서사시 ‘영광의 노래’ 때였다. 이 공연에는 학생 위주로 약 5000명이 참가했다. 공연이 끝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체 참가자에게 ‘공로메달’을 수여할 것을 지시했다. 공로메달은 북한의 상훈 순위에서 제일 하위에 속하는 메달이다.

그러자 북한의 공로자들이 수군거렸다. 특히 6·25전쟁 참가자들은 “우리는 피를 흘리고도 공로메달 받기 힘들었는데 고작 몇 개월 수고한 어린아이들에게 메달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이후엔 어린 학생들에게 메달을 수여하지 않는다.

어쨌든 영광의 노래와 몇 년 뒤 완공된 남포갑문 건설은 북한에서 ‘바가지 메달’이란 용어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참가자들에게 메달을 바가지로 푹푹 퍼서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북한 상훈의 가치를 크게 하락시켰다.

1980년대 말에는 집단체조가 끝난 뒤 한 마리분의 꿩고기를 나눠주는 이색 보상도 있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물질적 보상은 거의 없어졌다가 2000년 집단체조 ‘백전백승의 조선노동당’부터 보상이 강화됐다. 이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번엔 참가자들에게 컬러TV를 준다는 말이 돌았다. 참가지원이 쇄도했다. 서로 하겠다고 나서서는 싸움까지 날 지경이고 탈락자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TV는 구경도 할 수 없었고 담요와 통조림, 남방과일이 선물로 지급돼 참가자들의 실망이 컸다.

그런데 2002년에는 정말 ‘아리랑’ 상표가 붙은 컬러TV가 선물로 전달됐다. 북한 가정에서 TV수상기는 매우 소중한 가전제품이다. 아직도 지방에는 TV가 없는 집도 많고 특히 농촌에는 컬러TV가 있는 집이 매우 드물다. 요즘 북한에서 컬러TV 한 대 가격이면 4인 가구가 두 달은 먹고살 수 있다. 10년 전에는 컬러TV 한 대 가격이면 4인 가족이 1년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지금보다 훨씬 가치가 있었다.

이런 비싼 가전제품을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어린 학생들이 받을 수 있으니 이는 북한에서 자녀가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 효도인 셈이다. 아이들은 집단체조가 끝난 뒤 받을 TV를 상상하면서 힘든 훈련과정에서 이를 악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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