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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②

일본 자위대에서 독도 논문 쓴 진석근 전 대령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역사 바로잡기 계속하겠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일본 자위대에서 독도 논문 쓴 진석근 전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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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에서 독도 논문 쓴 진석근 전 대령

1997년 진석근 대령이 일본 자위대에서 쓴 독도 논문 표지. 왼쪽 것은 최초 인쇄한 표지. 가운데 것은 수정된 표지. 가운데에 ‘유학생 개인의 견해’라는 토가 붙어 있다. 오른쪽 것은 한국어 번역본.

시간 끌기 작전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알았는데 일본에 오니 일본 땅이라고 한다. 일본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일본까지 왔으니 그것을 알아내고 싶다. 양국의 주장을 비교해서 객관적으로 쓰겠다.”

어렵사리 승낙을 얻어낸 그는 ‘작전’을 짰다. 논문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일본어로 논문을 쓰는 게 쉽지 않다는 핑계를 내세워 최대한 제출시기를 늦추기로 작정한 것이다.

당시 그의 가족은 일본 정부가 마련해준 외부 관사에 거주했다. 부대에서 전철로 한 시간가량 걸렸다. 논문을 쓰는 동안 같은 반의 일본인 학생장교 한 사람이 도우미 노릇을 했다. 그는 수업이 끝나면 진 대령의 집에 함께 가서 논문 작성을 도왔다. 해가 바뀌고 마침내 졸업일이 다가왔다. 다른 학생들은 다 논문을 제출했지만 그는 계속 시간을 끌었다.

졸업 일주일쯤 전 논문이 완성됐다. 도우미 노릇을 하던 일본 학생장교를 통해 고급과정 반 학생들에게는 논문내용이 알려졌다. 절차대로라면 일단 논문을 제출해 학교당국의 승인을 받은 다음 인쇄와 제본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논문은 곧바로 인쇄에 들어갔다. 졸업식이 임박한 탓에 상부에서 검토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담당교관은 그의 속셈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일본 자위대에서 독도 논문 쓴 진석근 전 대령

진석근씨가 군복무 시절 펴낸 역사서들.

육상자위대 내에는 고급과정반말고도 여러 수업과정이 있었다. 진 대령의 논문은 자위대 내에서 300부가량 배포됐다. 논문에는 한일 양국의 주장이 균형 있게 실렸다. 하지만 논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결론이 얼마나 논리정연하게 도출됐는지를.

자위대가 발칵 뒤집히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뒤늦게 논문내용을 알게 된 학교당국은 “일본 우익의 최선봉인 자위대에서 어떻게 이런 논문을 낼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지휘부는 즉각 논문 회수 결정을 내렸다. “외국인 학생이 논문까지 내는 건 무리다”라는, 이유 아닌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이번엔 진 대령과 1년 동안 수학한 일본인 학생장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그동안 왜 한국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지 아무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진 대령이 알려줬다”며 “1년 동안 연구해 작성한 논문을 못 내게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항의했다.

난감해진 학교장은 간부회의를 거쳐 자위대 본부에 보고했다. 본부에서는 논란 끝에 “자칫 한일 양국 간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 있으니 조용히 매듭짓자”는 방침을 정했다. 결론은 조건부 발행이었다. 논문 발간을 허가하되 표지에 ‘이 논문 내용은 저자의 개인 의견’이라는 글을 붙이는 조건이었다.

그에 따라 논문은 표지만 바꾸어 재인쇄에 들어갔다. 다음날 진 대령은 논문 발표식을 가졌다. 한국군 장교가 일본 군대에서 일본 장교들을 상대로 독도 논문을 발표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애초 고급과정반 학생들 외에 교관 50여 명이 행사 참석을 신청했지만 발표 당일 교관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학교당국의 제동 탓이었다.

논문 발표는 1시간 반 동안 이뤄졌다. 어찌된 일인지 교실 칠판에 걸린 동북아시아 지도에도 독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돼 있었다. 일본 학생들은 놀랐다. 다들 평소 눈여겨보지 않다가 하필 진 대령의 논문이 발표된 날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발표가 끝난 후 이 지도는 조용히 철거됐다.

롯폰기의 가라오케

진 대령의 논문은 육상자위대에서 교육을 받는 군 장교 500여 명에게 배포됐다. 사흘 뒤 졸업식이 치러졌다. 1997년 2월의 일이었다.

일본 학생장교들이 진 대령의 논문 발표를 도운 것은 그간에 쌓인 돈독한 우정 때문이었다. 진 대령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1년간 정성을 다했고 그 결실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난 것이다.

학기 초 일본 학생들과 진 대령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진 대령을 은근히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학교당국의 방침에 따라 그는 중요한 군사훈련을 받을 때는 빠져야 했다. 그중엔 독도 상륙훈련도 있었다. 나중에 친해진 후 일본 학생들은 “진 대령이 독도를 방어하면 우리가 공격할 수 없잖은가”라고 농담을 했다.

그는 어떻게 일본 학생들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도쿄 롯폰기에 있는 술집이 매개체였다. 그는 이 술집에 매주 두세 명씩 데리고 갔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가라오케였다. 주인과는 술값의 반만 내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일본 장교들에게는 한 턱 쏘는 게 상상이 안 된다. 2차도 없다. 노래방에서 캔맥주를 먹는 정도다. 롯폰기 가라오케에서 그들에게 한국 노래를 가르치고 나도 일본 노래를 배웠다. 이들과 사귀느라 군인공제회에 저축해둔 돈을 다 썼다. 이들은 한국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2학기 중간인 1996년 10월 일본 학생들은 한국으로 일주일간 연수를 떠났다. 비무장지대(DMZ)와 경주 등지를 둘러보며 한국의 정치문화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 기간에 진 대령은 오사카 나고야 교토 등지를 돌며 독자적인 연수를 했다. 한편으로 육사와 고등학교 동기·후배들에게 연락해 일본 학생들에 대한 대접을 부탁했다.

“매일같이 회식을 시켜줬다고 한다.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서 ‘마산고가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국 연수를 다녀온 후 그들은 한국 팬이 됐고 친한파(親韓派)가 됐다. 술집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게 사적인 얘기를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그들의 초청으로 고교 동기생들이 일본에 놀러갔다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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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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