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저 CO2 시대의 한국기업

“규제에 겁먹지 말고 녹색市場 개척할 때”

  • 김희연│ 자유기고가 foolfox@naver.com│

    입력2009-10-08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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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감축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경영계와 선진국과 비교하면 감축 수준이 낮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엇갈린다.
    저 CO2  시대의 한국기업
    8월4일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가 2020년을 목표시점으로 삼은 중기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시나리오는 셋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BAU·Business As Usual) 대비 각각 21%, 27%, 30%를 줄이는 안이다. 2005년 온실가스 배출량인 5억9400만t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각각 8% 증가, 동결, 4% 감소에 해당한다. 정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올해 말까지 확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이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의 배출량을 온난화 기여도에 따라 1t 단위의 CO2 수치로 계산한 게 온실가스 배출량. 5억9400만t의 배출량은 1990년부터 15년 동안 두 배가 증가한 것으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배출량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녹색위는 “이번에 발표한 시나리오는 유럽연합(EU)이 개발도상국에 요구하는 BAU 대비 15~30% 감축 권고안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AU 대비 21%를 감축하는 1안은 2020년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이 되는 해로 설정하고 있다. LED 조명 등 에너지 고효율 제품과 단열 기능을 강화한 ‘그린 빌딩’을 보급하는 등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게 녹색위의 설명이다. BAU 대비 27%를 감소하는 2안은 2015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을 찍은 뒤 2020년엔 2005년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그러려면 변압기, 냉매에 사용되는 불소계 가스 사용을 중단하고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바이오 연료 이용을 늘려야 한다. 2005년보다 4% 감축하는 3안은 전기자동차를 비롯한 차세대 그린 카 도입, 최첨단 고효율 제품 보급 등의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에 맞춰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엔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과정에서 초기 부담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녹색위 시나리오에 따르면 1안은 0.29%, 2안은 0.37%, 3안은 0.49%의 국내총생산(GDP) 감소를 가져온다. 다만 녹색산업을 통한 추가 성장을 통해 GDP를 3.5~4% 늘릴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당장 부담해야 할 몫이 큰 기업들은 고민이 많다. 온실가스는 에너지, 제조, 건설, 수송 등의 분야에서 주로 발생한다.

    기업들도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이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과 에너지 소비가 많은 기업 508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 대응 업무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기업이 91.9%로 나타났다. 자발적으로 감축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곳도 57.7%에 달했다.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업무 담당자를 배정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선진국을 상대하며 에너지 사업을 운영하는 곳이 많았다.

    기업, “가능한 한 천천히”

    그럼에도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21% 감축안이다. 응답자의 65.6%가 1안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박태진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 원장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면 제조설비의 해외 이전을 고려하겠다는 기업이 15%나 됐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황인학 산업본부장도 “온실가스 감축엔 적지 않은 비용이 수반되며, 한국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은 에너지 소비가 많다.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중 72.7%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업종이다. 전경련은 주요 업종의 에너지 효율은 현재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밝힌다. 재계는 또 “기업들이 벌써부터 자발적 감축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주장하면서 대한상의, 전경련, 중소기업중앙회 등 28개 업종 단체가 참여한 ‘산업계 온실가스 자발적 감축 선언’을 예로 든다. 이 선언에 참여한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 향상 △공정 개선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을 통해 2020년까지 원단위(原單位·제품 1개를 만들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원단위란 발생 총량이 아닌 생산된 부가가치 양에 따른 배출량이다.

    발걸음이 가장 빠른 곳은 철강업계다. 한국철강협회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베스틸, 동일산업이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사업을 완료했다고 밝힌다. 온실가스 인벤토리는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기록·유지·관리하는 체계를 말한다. 국회가 심의 중인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엔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환경부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체의 기후변화 대응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워크숍’을 실시 중이다.

    에너지관리공단의 ‘온실가스 감축실적 인증’에 따르면 포스코, LG화학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서 1,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철강업계의 대표이자 온실가스 감축 실적이 우수한 포스코도 정부안에 부담을 느낀다. 9월8일 열린 한 공청회에 참석한 포스코 이경훈 상무는 “산업계의 부담을 줄이려면 기준연도를 2005년이 아닌 최근으로 설정해야 한다”면서 “한국이 자발적 감축안을 발표해도 국제사회엔 효과를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온실가스 감축은 기업에 절박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철강업계는 2010년을 기준으로 2020년까지 5%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더라도 2013년부터 매년 9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본다.

    탄소稅

    정부가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는 문제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37.6%의 기업이 산업계의 자발적 감축이 바람직한 수단이라고 응답했으며, 29.1%의 기업은 자발적 협약 체결에 의한 자율 규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탄소세(稅)도입이나 정부 협약에 의한 반자율 규제를 선호한 기업은 24.2%에 그쳤다.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규제하는 제도로는 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가 거론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업장 간 배출 권한을 거래하는 배출권 거래제에 28.5%의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부과하는 환경세인 탄소세 도입엔 24.8%의 기업이 선호를 나타냈다. 두 방식 모두 선호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1.5%였다.

    심의 중인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된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들이 기준 배출량 대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초과하거나 목표에 미치지 못한 양을 서로 거래하는 제도다. 정부는 당초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산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원단위 기준 등 다른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배출권 거래제의 도입 시기도 국제 협상의 결과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감안해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기업들은 배출권 거래시 ‘100% 무상 할당’ 방식을 선호한다고 답했다(51.4%). 일단 무상 할당 방식으로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배출허용량 할당을 무상으로 할 것인지, EU처럼 경매를 통한 유상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앞으로도 논쟁이 거듭될 전망이다. 배출권 거래제가 민감한 사안이어서인지 녹색위는 아직까지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탄소를 배출하는 모든 에너지원에 세금을 물리는 방식인 탄소세는 기업에 미치는 파장이 더 크다. 기획재정부, 환경부, 지식경제부가 이와 관련해 연구 용역을 발주한 상황인데 해당 부처들은 용역 발주가 탄소세 도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탄소세는 에너지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는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는 법률이 통과되고 부처 조율을 거쳐 세부안이 나온 뒤 가동된다. 세부안에는 업종별 맞춤 시나리오가 담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력 제품을 EU에 판매하거나 선진국과 경쟁하는 업종의 반발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경쟁상대가 개발도상국이거나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업종의 불만은 크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의 영향을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한 일부 기업들은 ‘먼 훗날의 얘기’라고 오해한다. 친환경 제품 개발과 설비 도입 등으로 만들어지는 시장은 기업에 기회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엔 가다듬을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부안이 확정되지 않아 기업들이 겁을 먹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컨설팅기업 삼정KPMG 김성우 상무는 “화들짝 놀란 듯한 기업들의 반응은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인 만큼 사회적 수용을 위해선 지속적 소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은 불확실한 상황에선 상정 가능한 최악을 염두에 둔다. 저CO2라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 당장의 손해만 고려한 단기적 의사결정은 기업에 도움이 안 된다. 전환이 일어날 때 앞장서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이 영속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수익성이 높은 제품이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미래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면 공정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환경·기술 분야에 국한하지 말고 경영 전략으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돈으로 환산하거나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기술을 담당하는 부서와 재무를 맡은 부서가 분리된 한국 기업이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온실가스 감축엔 최고경영자의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환경을 경영과 직결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감축치 너무 낮다”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기업 자율에 맡겨달라고 호소하는 반면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발표한 시나리오의 감축 목표가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환경단체들은 감축 전망치의 기준이 되는 배출량 추이 BAU가 잘못 계산됐다고 본다. 미래의 인구성장률과 GDP, 유가상승률,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추산한 BAU는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다른 숫자가 나온다.

    진보신당 정책위원회와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참여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을 위한 시민사회위원회’가 9월7일 공청회를 열었는데, 이들이 내놓은 감축 목표 설정 원칙은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4차 보고서에 나온 ‘전세계 공유비전’을 기초로 한다. 이 공유비전을 달성하려면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한국의 지구온난화 기여도와 감축역량으로는 2005년 대비 최소 25% 이상의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연합 이유진 기후에너지국장도 “기후변화 대응은 원치 않아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라면서 “산업계가 ‘회피’ 전략만 쓸 것이 아니라 변화를 기회로 활용하는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을 목표로 한 각국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보면 영국은 1990년 대비 34%, EU는 1990년 대비 20%다. 일본은 2005년 대비 15%, 미국은 2005년 대비 17%를 목표로 제시했다. 대만은 2025년까지 2000년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개발도상국인 중국과 인도는 감축 의무 설정에 반대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비용이 원가에 반영되면 개발도상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경영계의 우려는 중국과 인도의 태도를 근거로 한다. 규제 완화를 바랄 때는 선진국 수준을 외치던 기업들이,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대응하자고 나서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앞으로 나타날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 정도를 두고도 경영계와 시민단체의 의견이 갈린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한 토론회에서 “한국은 경제규모 15위, 온실가스 배출량 10위, 온실가스 누적배출량 21위로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할 명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2005년 영국 재무부의 위탁으로 수행된 스턴 보고서는 “세계가 온실가스와 관련해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지구온난화 대책 비용이 전세계 GDP의 5~20%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 기업, 시민단체는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주목한다. 이 총회가 끝난 뒤 온실가스 감축목표 시나리오를 발표하자는 게 기업의 의견이다. 1997년 합의한 교토의정서가 2012년에 만료된다. 당사국들은 이 총회에서 2013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틀을 새로 짠다. 교토의정서 합의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의무감축국에서 제외됐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정KPMG의 김성우 상무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낀 한국의 위치가 오히려 기회 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부터 원가를 절감하고자 ‘마른 수건 쥐어짜기’를 해온 한국 기업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게 습관으로 배어 있다. 이 노하우를 선진국보다 싼 가격에 개발도상국에 전수할 수 있다.”

    국내의 규제에 겁먹지 말고 더 넓은 시장을 들여다보자는 거다.

    온실가스 감축이 인류의 숙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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