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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 사회학

‘소나 타는 자동차’에서 ‘국민 중형차’로 우뚝 서다

  • 나성엽│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기자 cpu@donga.com│

쏘나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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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 사회학

쏘나타2(위)와 쏘나타3 신문광고(아래).

하지만 쏘나타는 ‘앞 엔진 앞바퀴 굴림 방식(FF)’이어서 앞바퀴가 힘을 받고 뒷바퀴는 그저 따라다니는 노릇만 했다. 엔진 힘을 뒷바퀴로 전달하는 부품이 필요 없기 때문에 뒷좌석은 가운뎃부분도 평평했다. ‘뒷좌석 가운뎃자리는 불편하다’는 것을 당연시하던 운전자들의 눈에 쏘나타는 그 어느 차보다도 실내가 넓고 안락하고 조용하고 푹신한 차였다.

쏘나타는 때도 잘 맞춰 태어났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경제가 연간 두 자릿수의 무서운 성장을 시작했다. ‘중산층’이 사회 주도 세력으로 떠올랐다. 경제학에서 정의한 사전적 의미의 중산층이 아니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은 잘사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못사는 사람도 초고속 경제성장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평가했다.

‘나는 중산층, 고로 쏘나타 정도는 타 야 한다’는 ‘근거 없는 중산층’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면서 쏘나타는 대박이 터졌다. ‘스텔라 쏘나타’를 넘어선 이 차는 이후 5년간 60여만대가 판매되면서 현대자동차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쏘나타는 한국의 쏘나타였다.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는 여전히 싸구려 취급을 면하지 못했다.

쏘나타의 경쟁자들



‘뉴쏘나타’는 1991년에 나왔다. 헤드램프 디자인을 좀 더 둥글게 만들고, 리어콤비네이션 램프도 폭을 키운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었다. 이때부터 현대자동차의 페이스리프트 기술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나왔다. 앞 뒤 모양만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차로 보이게 하는 테크닉.

소비자 사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미리 만들어놓고 그보다 좀 뒤떨어지는 디자인으로 하나 더 만들어 이걸 먼저 파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고개를 들었다. 이 차는 당시 최고급 사양이던 후륜 디스크브레이크와 ABS 등을 갖추고‘제2의 쏘나타 신화’를 썼다.

쏘나타의 인기는 노력 없는 대가가 아니었다. 아무리 새 차가 나왔다고는 하나 대우자동차의 로얄시리즈는 여전히 쏘나타에 힘겨운 적수였다. 기아자동차도 일본 마쓰다사의 글로벌 모델 626시리즈를 들여와 만든 ‘콩코드’로 쏘나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우자동차도 쏘나타에 맞설 모델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에스페로’로 맞불을 놓았다.

하지만 큰 차체와 정숙성, ‘신비(神秘)의 세단’ ‘그랜저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등 중산층의 의식에 깊숙이 파고드는 쏘나타의 마케팅 앞에 에스페로와 콩코드는 1위 자리를 빼앗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 국내 생산 자동차의 급수를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에쿠스’-‘제네시스’ ‘오피러스’-‘그랜저’ ‘SM7’-‘쏘나타’ ‘토스카’ ‘SM5’-‘아반떼’ ‘라세티 프리미어’ ‘SM3’-‘베르나’ ‘프라이드’ ‘젠트라’-‘모닝’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순이 될 것이다.

이 순서에서 보면 쏘나타는 위에서 4번째에 위치해 있으나 당시의 지위는 사뭇 달랐다. ‘그랜저’-‘쏘나타’ ‘로얄’ ‘콩코드’-‘엘란트라’ ‘에스페로’-‘엑센트’의 순서였다.

지금 ‘제네시스’타는 사람이 당시에 ‘쏘나타’를 탔던 것. 그 시절 쏘나타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학교 다닐 때 ‘S’자를 떼고 다니던 지금의 30대들이야 미리부터 이해하고 있는 서열이지만 김연아, 박태환 세대만 해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날렵한 물고기처럼 생긴 1993년형 쏘나타는 한국 경제에서 ‘마지막 풍요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두툼하고 아늑했던 2세대 쏘나타가 단종되고 1993년 5월 풀 모델 체인지된 쏘나타2는 1990년 개발된 준중형차 ‘엘란트라’와 디자인에서 궤를 같이했다.

내수 100만대 돌파

생선 몸통을 연상시키는 곡선이 전체적으로 살아 있는 차체, 동글납작한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로 당시 국내 자동차 디자인을 선도했다. 기존 쏘나타보다 차량의 무게중심을 낮추고 폭을 넓혀 안락감을 더했으며, 에어백 등 안전장치를 강화해 제품의 가치를 높였다.

쏘나타2의 흠잡을 데 없는 디자인은 경쟁사를 자극했다. 쏘나타2가 나오자 대우자동차는 ‘왜 요즘 중형차 디자인은 프린스를 닮았을까요’라는 카피로 광고를 내고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쏘나타는 당시 대우 프린스와 디자인 콘셉트는 비슷했으나 뭔가 2% 부족한 면을 채운 모습을 하고 나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아차의 콩코드 후속모델 ‘크레도스’도 둥글둥글한 쏘나타2의 분위기를 이어받았다.

1996년 2월에는 쏘나타2를 페이스리프트한 쏘나타3가 나왔다. 전투기의 공기흡입구를 형상화한 그릴과 지금도 많은 자동차에 채택된 리어램프 디자인으로 쏘나타2의 인기를 계승했다. 쏘나타 브랜드로 내수 100만대 고지를 찍은 차가 바로 쏘나타3. 하지만 이 차는 당시 다소 ‘불미스러운’ 논쟁에 휩싸인다.

일부 여성단체와 관련 기관이 쏘나타3의 헤드램프 디자인이 남근(男根)을 형상화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디자이너가 남근을 형상화했는지 여부는 끝내 밝히지 못한 채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쏘나타2와 3은 특히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명작’으로 통한다. 태어난 지 10년 넘은 모델이지만 지금도 도로에서는 이들 차량이 주행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만큼 품질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한국 사람들이 이 차에 향수를 갖는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때까지 생산된 모델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길거리에 쏘나타가 넘쳐나던 시절을 가장 풍요롭고 걱정 없던 시절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쏘나타2, 3에 이르러서 쏘나타는 ‘국민 중형차’라는 칭호를 받았다. 과거 ‘중산층 차’라는, 다소 범접하기 어려운 자동차에서 드디어 대중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었다. 중산층의 자동차였던 쏘나타가 국민차가 된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 돈이 많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당시 웬만한 대기업 직원은 기본급 보너스 외에 성과급 등 각종 명목으로 적지 않은 추가 수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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