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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코드’를 찾아서 ③

한국을 이끄는 일류 공학자 4인 인터뷰

“1년 중 15일 실험결과 좋으면 성공 350일은 시멘트 바닥에 머리 찧는 고통 겪어”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한국을 이끄는 일류 공학자 4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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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이사

중학생 만능수리공, 원자현미경 세계1위 기술력 기업 만들어


첨단 나노 계측장비인 원자현미경을 제작하는 벤처기업 파크시스템스의 박상일(51) 대표이사는 서울대 물리학과(학사,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박사)를 거쳐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해 성공적으로 경영한 경험을 가진 공학도다.

1997년 귀국해 파크시스템스를 창업한 그는 2004년 중소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상’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한국공학한림원의 ‘젊은 공학인상’을 수상했다.

▼ 어릴 때부터 공학도로 적성이 있었나.



“그랬던 것 같다. 기계에 관심이 많아서 유치원 시절부터 시계, 유성기, 녹음기 등 집에 있는 것은 다 뜯어봤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 분해하고 조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물론 야단맞은 적도 있지만 대체로 그냥 두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고장을 냈지만 물건을 원상복구시키기도 했고 나중에는 고장 난 기계를 고쳤다. 중학생이 된 뒤에는 ‘만능 수리맨’이어서 전기제품이나 공구류가 고장이 나면 내가 다 고쳤다. 내가 유학 가 있을 때 부모님이 ‘만약 상일이가 있었다면 수리공을 부를 필요가 없었을 텐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 학부 때 전공은 공대가 아닌 물리학인데….

“처음에는 전자공학과가 적성에 맞아 지원하려고 했다. 당시 서울대는 계열별로 신입생을 모집해 2학년 때 학과를 정했다. 그런데 대학에서 아마추어 무선 클럽활동을 했는데 전자공학과 선배들이 학부 시절에는 물리학을 공부한 뒤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해서 학부 때 물리학을 택했다. 그런데 당시 물리학과에는 대학원 때 공대로 진학하는 것을 양반 출신이 대장간 차리는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대학원도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다행히 스탠퍼드는 학풍이 실용적이다. 물리학과도 광학, 음향학, 원자현미경 등 물리학에 기반을 두면서도 엔지니어링에 가까운 분야를 많이 공부한다.”

▼ 물리학도로서 원자 현미경에 필이 꽂힌 배경은.

“당시 원자현미경으로 실리콘 원자 하나하나를 측정한 결과를 담은 논문이 나왔다. 대단한 내용이었다. 당시 지도교수가 그 분야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원자현미경 개발을 하면서 상업적으로 만들어 팔면 많은 사람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 연구원 대신 벤처사업가로 나선 이유는.

“미국은 예전부터 그런 분위기였다. 인텔, HP도 한때는 벤처기업이었다. 스탠퍼드 졸업생은 특히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뭔가 될 것 같으면, 교수건 학생이건 학교를 떠나 사업을 시작한다. 점심 때 학생들이 툭하면 사업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도 이런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다른 한국 유학생들은 좀 달랐던 것 같다. 대부분은 빨리 학위를 따서 한국에서 교수가 되려 했다. 사업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한국에 왔더니 모두가 ‘학벌도 좋고 멀쩡한 사람이 무슨 사업을 하느냐’며 말렸다. 당시 한국에선 사업은 궁여지책으로 여겨졌고 첨단 기술을 가지고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낯선 개념이었다. 지도교수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공채에 지원하라며 말렸다. 이런 말을 계속 듣다보니 내가 세상 물정도 모르고 백일몽을 꾸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에 돌아가서 마음을 잡았다. 지금 벤처를 하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교수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내가 교수가 되면 다른 사람 일자리를 하나 채가는 게 되지만 내가 좋은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소명의식도 들었다. 나는 도전의식이 강한 편이다.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미지의 길을 개척해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차고(車庫)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 미국에서 사업을 접고 한국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미국에서 사업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특히 1993년에는 자금난으로 회사 문을 닫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극복해 1995년에 회사를 정상화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 재미원로 과학자를 여럿 만났는데 어딘가 외롭고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이 못살고 연구비도 부족하고 정정(政情)도 불안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좋은 자리가 있으면 한국에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당시 연봉 차이가 5배, 10배였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동료들이 한국에 돌아가서 나중에 위상이 역전된 사례가 많았다. 미국이 대단히 합리적이고 다른 나라에 비해 타민족에 공정하지만, 그래도 아시아계로서 살기에는 불리한 점이 있는 사회다. 끝까지 미국에 남아 있으면 인생이 재미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 40세 이전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아이들도 너무 늦게 돌아오면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 어려움은 없었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원리원칙대로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규제가 모호하고, 회색지대가 많았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직원들이 힘들어했다. 그런데 한국사회도 외환위기를 계기로 많이 달라졌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우리 인생인데 내가 옳은 일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 공학도로서 성공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능동적으로 문제를 찾고 솔루션을 찾아가는 사람이 아쉽다. 시키는 일을 하는 수동적인 엔지니어가 아니라, 군대로 말하면 사령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회사에서도 그런 엔지니어를 키우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결국 교육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국 교육은 졸병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학교에서 누가 생뚱맞은 질문을 하면 면박을 주는 게 우리 교육 현실이다. 교사들이 반성을 많이 해야 한다. 발표력도 문제다. 엔지니어들도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하는데, 발표를 너무 못한다. 문과 출신은 그나마 낫지만 이공계 출신은 발표력이 많이 떨어진다. 글쓰기도 문제다. 문법도 틀리고 어휘도 적절치 못하다. e메일로 간단하게 의사전달도 못해선 성공한 공학도가 될 수 없다. 한국 교육의 치명적인 약점에는 영어도 포함된다. 한국은 전세계를 상대로 일해야 한다. 첨단 장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국내에서 모두 조달할 수 없다. 해외에서 어떤 교수가 더 좋은 방법을 개발했다면 그 교수와 접촉해서 이를 접목하는 방법을 알아봐야 한다. 엔지니어가 영어가 안 된다면 기대난망이다. 영어를 극복하지 못하면 세계무대에 나설 수 없다. 모든 지식이 인터넷에 있는데, 인터넷에 있는 대부분의 정보가 영어로 돼 있다. 중국인도, 독일인도 영어로 논문을 쓴다.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려면 영어가 돼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 용어는 모두 영어로 돼 있다. 첨단제품들은 다 영어로 돼 있어 영어를 쓰지 않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 벤처기업 경영은 단순한 엔지니어와는 또 다른 분야다. 성공한 벤처기업인이 되기 위해선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나.

“사업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합리성을 필요로 한다. 과거에 중소기업을 하기 위해서는 뱃심도 있고 술도 잘 마시고, 이런 사람이 전형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갈수록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되기 때문에 누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어떤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고 있는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또 남이 흉내를 내기 어려운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다음은 성격이나 스타일이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 필요하다. 열정이나 확신이 필요하지만 맹신은 곤란하다. 또 슈퍼A급 엔지니어들이 사업을 해야 한다. 남들은 흉내 낼 수 없는 핵심 경쟁력이 있다면 대기업 횡포에 맞설 수 있다. 독일의 강소기업이 이런 기업이다. ‘미투 (me too)’ 사업으론 경쟁할 수 없다. 우수한 사람이 사업을 시작해야 우수한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다.”

▼ 회사가 대기업도 아닌데 우수인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나.

“사업을 시작할 때 일의 절반은 사람을 모으는 일이었다. 일대일로 만나서 설득했다. 당장 대기업보다는 월급이 적지만 회사 가치가 높아지면 스톡옵션을 통해 몇 억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데 전환점은 유영국 박사의 영입이었다.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제의한 교수직을 마다하고 우리 회사에 입사하면서 전에는 병역특례기간이 끝나자마자 떠나던 직원들이 남기 시작했다. 유 박사 같은 사례는 미국에선 당연한 것인데 한국에선 ‘특이한 뉴스’거리로 취급돼 신문에 실렸다.”

▼ 원자현미경 시장에서 파크시스템스는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또 전세계 원자현미경 시장 규모는.

“원자현미경 시장에서 우리 기술력은 전세계 1위라고 확신한다. 아직 시장점유율은 2위다. 그런데 기술력이 앞서 있어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3년 사이에 1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에도 우리 회사는 오히려 좋았다. 하반기 전망은 더욱 좋다. 전세계 전자현미경 시장은 ‘현미경’에만 그치면, 전체 시장 규모가 몇 천억원대에 머물 것이다. 그런데 이 기술은 나노기술의 길목을 지키는 기술이다. 제약 등 바이오와 의료기시장에서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원자현미경의 기술을 적용시킨 특별한 솔루션이 터지면 시장규모가 조 단위로 커질 수도 있다. 한국시장에서 한국만 보고 사업을 하면 안 된다. 전세계를 봐야 한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으면 한국에서도 경쟁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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