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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⑨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말하는 ‘검찰과 정권’

“‘청와대 들어와 대선자금 문제 상의해보자’는 노무현 대통령 제안 거절했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말하는 ‘검찰과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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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말하는 ‘검찰과 정권’

2003년 4월3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송광수 검찰총장.

▼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사퇴 파동은 어떻게 보십니까.

“천성관 검사는 제가 법무부 과장 할 때 같이 일했어요. 머리도 좋고 일도 참 잘했습니다. 청문회 때 제기된 의혹 중 대부분은 곁가지고, 집이 문제가 된 거지요.”

▼ 한마디로 스폰서 의혹 아닙니까. 항간엔 검사들이 스폰서 한두 명씩은 거느리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웃음) 요즘 검사 스폰서 해서 득 보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겠습니까.”

▼ 총장님은 없었습니까.



“전 없었습니다.”

▼ 주변에서 얘기는 들으셨겠지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요. 선배 검사 중 누구에게 어떤 스폰서가 있다고…. 그런데 저는 이것(청문회 파동)이 사회 발전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인도 스폰서 있지 않습니까. 예전엔 언론사 편집국장, 사회부장들 다 스폰서가 있었습니다. 힘 있는 자리엔 다 스폰서가 있습니다. 어쨌든 스폰서 문화는 없어져야죠.”

내기바둑 참견하다가 맞을 뻔해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4남1녀 중 셋째다.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형과 함께 하숙을 했다. 서울중과 서울고를 나온 후 1967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그는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것을 굉장히 수줍어했다. 지금까지 그런 습성이 남아 있는데 그나마 군법무관으로 근무할 때 교관을 하면서 좀 나아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검사가 꿈이었다. ‘장비호’라는 탐정소설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걸 탐독하면서 막연히 수사하는 직업을 동경했다. 형의 가정교사를 하던 고시생의 검사 예찬론에도 영향을 받았다.

고등학생 때 모범생이던 그는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게 취미였다. 특기할 점은 바둑에 미쳤었다는 사실. 중3 때 배웠는데, 고1 때 벌써 1급의 실력을 갖췄다.

“그때 아주 미쳤었지요. 아버지한테 프로기사 되겠다고 일본 보내달라고 했다가 호되게 야단맞았지요. 고3 때 정신 차려 죽을 판 살 판 공부했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대학 들어가기가 쉬웠습니다.”

현재 그의 기력은 아마 6단. 대학생 시절엔 교내대회에서, 검사를 할 때는 전국 공무원 부처별 대항전에 나가 우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독일 병정’

아버지가 사업을 해서 집안은 넉넉한 편이었다. 그가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부친의 사업 물품을 쌓아뒀던 창고에 큰불이 났고 이후 가세가 기울었다. 그는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었다. 졸업하던 해인 1971년 사법시험(13회)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으면 대체로 판사를 지망하는 게 법조계 풍토다.

“자랑은 아니지만 연수원 성적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꿈이 검사 아니었습니까. 죄 지은 사람, 잘못한 사람을 심판해야 한다는 그런 소박한 생각이었지요. 지금도 눈앞에 잘못된 게 보이면 그냥 못 있는 성격입니다. 심지어 내기바둑을 구경하면서 꼼수 쓰는 사람한테 한소리했다가 된통 얻어맞을 뻔한 적도 있어요. 나이 들면서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잘 안 돼요.”

1977년 임관한 그의 첫 근무지는 서울지방검찰청 수원지청(현 수원지검)이었다. 그가 검찰에서 걸어온 길을 보면 수사통이라기보다는 기획통이라 할 만하다. 부산지검 특수부에서 마약수사를 할 때를 빼고는 특별히 눈에 띄는 수사를 한 적이 없다. 서울지검 형사3부장 시절 대학입시부정 사건을 수사한 게 꼽힌다.

부산지검 근무 후 검사들의 선망인 법무부 검찰1과로 발령이 났고 이후 대검 연구관을 거쳐 법무부 검찰4과장, 검찰2과장을 지냈다. 1991년엔 ‘검찰의 황태자’로 불리는 법무부 검찰1과장을 꿰찼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이다.

“검사 시절 ‘독일 병정’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그게 듣기 좋았습니다. 철저히 일하니까 그런 말을 듣는구나 하고. 물론 간부가 되고 지휘관이 되면 조금 물렁한 맛도 있어야죠. 그런 점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후회되는 게 많아요.”

인사에서 좌절을 느낀 적이 없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염치없는 놈이지요. 오히려 혜택을 많이 입었지요. 동료나 후배들에게 미안하지요. 검사장도 제때 됐고요. 다만 사치스러운 얘기지만, 김대중 정부 초기 내가 부산고검 차장을 1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인사 때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보내더라고. 나는 별로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주변에서는 좌천이라고 하더라고요.”

“재인아. 담배 한 대 주라”

널리 알려진 대로 김대중 정부 시절 검찰은 호남 출신 검사들이 주요 보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는 호남 출신 동기생들에게 밀리는 와중에서도 검찰의 4대 보직으로 꼽히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냈다. 검찰국장은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짜는 핵심 보직으로 역대 검찰총장 중에는 이 자리를 거쳐 간 사람이 많다.

노무현 정권 출범 당시 그는 대구고검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총장으로 발탁된 경위에 대해 “모르겠다”고 했다.

▼ 노무현 정권에 가까운 인사가 없었나요?

“정말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 어떻게 추천됐다는 얘기는 들으셨을 것 아닙니까.

“못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대검 차장 간다는 설도 돌았는데, ‘검사와의 대화’가 쾅 터졌어요. 일요일이라 서울에 올라가 있었는데 TV로 그걸 보다가 ‘아이쿠 큰일났다’ 싶어 그날 밤 대구로 내려왔어요. 대통령께서 ‘나는 지금의 검찰 지휘부를 못 믿겠다’라고 하셨잖아요. 총장이 그만둘지 모르는데 고검장이 근무지를 떠나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그길로 내려왔지요. 밤에 도착해 식당에서 밥 먹는데 TV에서 ‘검찰총장 사의 표명’뉴스가 나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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