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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송홍근 기자의 세상 속으로 풍덩~ ①

역사의 뒤안으로 스러질 소금땀, 구슬땀의 흔적

첫 번째 르포 : 가리봉동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역사의 뒤안으로 스러질 소금땀, 구슬땀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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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뒤안으로 스러질 소금땀, 구슬땀의 흔적
금단반점 아가씨

오전 11시, 중국식당이 하나둘씩 문을 연다. 삼팔교자관은 궈바로우, 가지볶음, 마파두부를 잘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인 내외의 성격이 깔끔해선지 수저를 티슈로 일일이 닦아 상에 올린다. 왕중왕미식성은 100명 넘는 손님을 동시에 받을 만큼 규모가 크다. 1층에선 꼬치를 팔고, 지하에선 요리를 낸다. 10명이 회식해도 술값 포함 10만원이면 돈이 남는다. 하얼빈맥주, 라오콴맥주에 즈란에 찍은 양꼬치를 곁들이면 요기가 된다. 둥베이(東北)요리를 내는 금단반점서 일하는 중국인 웨이트리스는 곱다. 고운 색 티셔츠 하나 걸쳤는데도 귀티가 난다. 옷소매로 땀을 훔치면서 심줄꼬치를 굽는데, 밑반찬을 내오면서 나를 보고 수줍게 웃는다.

가리봉시장은 한국에 온 중국인, 중국동포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中國食品, 菊花館 國際電話房 같은 간판을 내건 상점이 줄을 이뤘다. 이 골목에선 컵술보다는 커우베이주, 건두부보다는 간더우푸, 연변보다는 옌볜이라고 발음해야 소통이 쉽다. 한글로 적은 메뉴도 없고, 종업원도 한국어를 잘 못한다.

한국계 중국인이 가리봉동에 자리 잡은 때는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진 뒤부터다. 구로공단이 번성하던 1970년대 쪽방촌이던 이곳에 저렴한 숙소를 찾는 중국동포가 입소문을 타고 몰려들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동포 밀집지역으로 변모했다.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는 통계에 잡힌 사람만 4000명이 넘는다. 1만5000명 남짓한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중국동포. 김용필 중국동포타운신문 편집국장은 “중국동포들이 구로공단이 쇠락한 후 슬럼화한 가리봉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보증금 100, 월세 15’라고 적은 벽보가 곳곳에 붙었다. 중국동포들은 보증금 100만~200만원, 월세 15만~25만원짜리 방에 2명씩 사는데 둘이 눕기엔 비좁을 만큼 방이 작다. ‘쪽방’은 1970년에 지은 양옥인데, ‘벌집’이라는 세간의 말 그대로 방이 다닥다닥 붙었다.



사글셋방이 부담스러운 이도 많다. 보증금 100만원조차 아쉬운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으면서’ 쉼터에서 잔다. 쉼터는 쉬는 곳이 아니라 숙소다. ‘남자전용쉼터’란 간판을 내건 한 업소의 숙박료는 하룻밤 7000원. 1주일 숙박권은 4만5000원, 15일 숙박권은 8만5000원, 1개월 숙박권은 14만원에 팔린다.

중국동포들의 바람은 돈을 벌어 영등포구 대림동, 관악구 신림동·봉천동, 광진구 자양동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대림동 사글셋방은 보증금 500만~2000만원, 월세 25만~50만원 수준이다.

보증금 100, 월세 15

가리봉동과 대림동을 잇는 5618번 버스는 중국동포가 주 고객이다. 5618번 버스에서 만난 박동길(43)씨는 “2년 전 가리봉동을 떴다”면서 웃었다.

가리봉동 중국직업소개소에서 만난 중년 남성에게 “한국에 살아보니 어떠냐”고 묻자 “돈 벌긴 좋다”고 무뚝뚝하게 답했다. 할아버지 고향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돈 모으면 흑룡강으로 돌아간다”고 딴청을 부렸다.

다른 남자가 대화에 낀다. 하얼빈에서 온 김수응(44)씨다.

“길 가는 조선족한테 물어보소. 중국이랑 한국이랑 운동경기하면 누구 응원하는지.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동족으로 대해준 적 없어. 뭣하러 한국을 좋아하겠소. 그런데도 나는 중국 공민보다 한국 국민이 되고 싶소. 조건을 맞추는 대로 국적을 회복할 거요.”

그는 대림동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가게를 내는 데 5000만원이 들었단다. 3000만원이면 작은 식당을 낸다고도 했다.

“겉으론 동포라고 부르면서 속으론 무시하는 거 우리가 다 알지. 중국의 고향보다 서울이 좋다는 나 같은 사람 별로 없을 게요.”

지금은 크게 줄었지만 과거엔 임금을 체불하거나 근로자를 학대하는 일이 많았다. 12시간 넘게 일하는데도 월급이 60만~70만원인 곳도 허다했다. 중국동포 시인 김윤배는 ‘조선족의 노래’라는 시에서 모국의 야박함을 고발한다.

우리를 동포라고 부르지 마라

우리는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에서 온

조선족일 뿐 중국동포라고 부르지 마라

살아 생전 가리봉시장 메케한 중국 거리

건두부와 컵술로 분노를 달랬었지만

조국이 우리를 배신했다고 말하지 않으마

내 조국 땅에 숨어 들어와 일하는

조선족, 노임 깎고 체불하고 구타했다고

말하지 않으마 밥이 치욕인 줄 알아버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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