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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⑤

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단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링에 오른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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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스파링을 벌이고 있는 김정훈씨.

랜스키는 러시아의 국민무술이라 할 만한 삼보도 익혔다. 한국의 씨름과 비슷한 삼보는 세계 이종격투기계의 황제로 군림하는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주짓수를 배운 지 2년6개월 됐다는 랜스키는 주짓수가 최고의 무술이라고 치켜세웠다.

김씨와 랜스키는 기자의 요청에 따라 그래플링에 타격기를 겸하는 MMA(Mixed Martial Arts·종합격투기) 스파링을 펼쳤다. 두 사람은 마우스피스를 끼었다. 랜스키는 발차기도 능숙하게 했다. 반면 김씨는 주로 주먹을 사용했다. 머리를 숙이고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상대의 펀치와 발차기를 피했다. 권투선수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위빙(weaving), 혹은 더킹(ducking)이었다.

그의 벗은 몸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다음 상대는 그의 이종격투기 스승이라는 김준용(22)씨. 그는 2005년 국내 이종격투기 대회에 참가했던 실력파로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정훈씨에게 주짓수 기초 기술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키는 작지만 역도선수처럼 상체가 떡 벌어진 김준용씨는 빠르고 힘이 넘쳤다.

“실전에서 통하더라”

김정훈씨가 주짓수에 빠져든 것은 36세 때인 2004년이었다. 당시 그는 준종합병원인 울산시티병원 가정의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한창 스트레스가 심할 때였다. 환자 가운데 주짓수 시합에 출전하던 선수가 있었는데, 그가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라며 주짓수를 권한 것이 계기였다. 김씨처럼 몸이 둥글둥글하고 조그마한 사람이 익히기에 딱 좋은 운동이라면서. 해보니 과연 작은 사람이 하기에 적합한 무술이었다.



“주짓수의 매력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지렛대 원리예요. 작은 사람이 자신의 몸을 지렛대 삼아 큰 사람을 이기는 겁니다. 주짓수를 잘하려면 관절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그런 점에서 주짓수는 과학, 의학과 상통하는 무술입니다.”

유도와는 어떻게 다를까.

“유도보다 훨씬 섬세한 운동이죠. 유도는 엎어뜨리면 끝이잖아요. 하지만 주짓수는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밑에 깔려도 이길 수 있다는 것, 깔아뭉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 키가 164㎝밖에 안 되는 엘리오 그레이시가 당대의 격투가들을 다 이겼잖아요.”

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김정훈씨가 관절기 공격을 하자 기자의 팔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주짓수의 대부로 불리는 엘리오 그레이시는 수많은 실전 대결을 통해 주짓수의 강력함을 입증한 전설적인 무도가다. 1993년 미국 덴버에서 열린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1회 대회에서 내로라하는 거구의 타격가들을 꺾고 우승한 호이스 그레이시가 바로 그의 아들이다. 오늘날 주짓수가 세계 최강의 무술이라는 명성을 얻은 데는 호이스 그레이시가 UFC 1회에 이어 2회와 4회 대회까지 제패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호이시의 형 힉슨 그레이시는 450전 무패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세계 최대의 이종격투기 대회인 UFC에서는 지금도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프랭크 미어, 파브리시오 베흐돔, 조르주 생 피에르 등 주짓수 고수들이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캐나다 국적의 한국계인 데니스 강의 주무기도 주짓수다.

“입식타격에서는 아무래도 작은 사람이 불리해요. 그렇지만 주짓수는 달라요. 제가 최홍만과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팔 하나만 꺾으면 되거든요.”

대단한 자신감이다. “실전에서 써먹어봤느냐”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아파트에 사는데, 위층에서 내는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서 얘기 좀 해보라”는 아내의 성화에 올라갔다가 번번이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내려오곤 했다. 위층 남자가 90㎏대의 거구였기 때문이다. 주짓수를 배우고 나서는 가서 당당히 얘기했다. 멱살잡이까지 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대등해졌다. 시끄러운 소리도 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막장 싸움’

한번은 길 가다 하급생들의 돈을 뺏는 불량 고등학생을 혼내줬다. 태클과 메치기로 간단하게 제압했다. 친구 중에 조폭이 있어 조폭들 싸움에 휘말린 적도 있다. 두어 번 관절기 공격을 하자 상대가 “말로 하자”며 두 손 들었다. 막상 얘기를 해놓고는 쑥스러운지 변명이라도 하듯 이렇게 덧붙였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싸움은 피해야 합니다. 격투가로서 할 짓이 아니죠. 저는 무도인의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화제가 된 루저(loser) 논란에 빗대어 루저로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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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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