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링을 벌이고 있는 김정훈씨.
김씨와 랜스키는 기자의 요청에 따라 그래플링에 타격기를 겸하는 MMA(Mixed Martial Arts·종합격투기) 스파링을 펼쳤다. 두 사람은 마우스피스를 끼었다. 랜스키는 발차기도 능숙하게 했다. 반면 김씨는 주로 주먹을 사용했다. 머리를 숙이고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상대의 펀치와 발차기를 피했다. 권투선수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위빙(weaving), 혹은 더킹(ducking)이었다.
그의 벗은 몸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다음 상대는 그의 이종격투기 스승이라는 김준용(22)씨. 그는 2005년 국내 이종격투기 대회에 참가했던 실력파로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정훈씨에게 주짓수 기초 기술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키는 작지만 역도선수처럼 상체가 떡 벌어진 김준용씨는 빠르고 힘이 넘쳤다.
“실전에서 통하더라”
김정훈씨가 주짓수에 빠져든 것은 36세 때인 2004년이었다. 당시 그는 준종합병원인 울산시티병원 가정의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한창 스트레스가 심할 때였다. 환자 가운데 주짓수 시합에 출전하던 선수가 있었는데, 그가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라며 주짓수를 권한 것이 계기였다. 김씨처럼 몸이 둥글둥글하고 조그마한 사람이 익히기에 딱 좋은 운동이라면서. 해보니 과연 작은 사람이 하기에 적합한 무술이었다.
“주짓수의 매력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지렛대 원리예요. 작은 사람이 자신의 몸을 지렛대 삼아 큰 사람을 이기는 겁니다. 주짓수를 잘하려면 관절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그런 점에서 주짓수는 과학, 의학과 상통하는 무술입니다.”
유도와는 어떻게 다를까.
“유도보다 훨씬 섬세한 운동이죠. 유도는 엎어뜨리면 끝이잖아요. 하지만 주짓수는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밑에 깔려도 이길 수 있다는 것, 깔아뭉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 키가 164㎝밖에 안 되는 엘리오 그레이시가 당대의 격투가들을 다 이겼잖아요.”

김정훈씨가 관절기 공격을 하자 기자의 팔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입식타격에서는 아무래도 작은 사람이 불리해요. 그렇지만 주짓수는 달라요. 제가 최홍만과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팔 하나만 꺾으면 되거든요.”
대단한 자신감이다. “실전에서 써먹어봤느냐”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아파트에 사는데, 위층에서 내는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서 얘기 좀 해보라”는 아내의 성화에 올라갔다가 번번이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내려오곤 했다. 위층 남자가 90㎏대의 거구였기 때문이다. 주짓수를 배우고 나서는 가서 당당히 얘기했다. 멱살잡이까지 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대등해졌다. 시끄러운 소리도 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막장 싸움’
한번은 길 가다 하급생들의 돈을 뺏는 불량 고등학생을 혼내줬다. 태클과 메치기로 간단하게 제압했다. 친구 중에 조폭이 있어 조폭들 싸움에 휘말린 적도 있다. 두어 번 관절기 공격을 하자 상대가 “말로 하자”며 두 손 들었다. 막상 얘기를 해놓고는 쑥스러운지 변명이라도 하듯 이렇게 덧붙였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싸움은 피해야 합니다. 격투가로서 할 짓이 아니죠. 저는 무도인의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화제가 된 루저(loser) 논란에 빗대어 루저로 자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