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이 왜 ‘사랑의 공간’이 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직접 그 정취를 맛보면 그 연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남산에선 서울 강남과 강북의 주요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석양이 질 때면 여의도 63빌딩이 반사한 붉은빛이 한강에 떨어져 물빛은 금빛으로 변한다. 석양과 함께 도시의 건물에 하나 둘 불이 켜지면 낮에 보였던 도시의 분주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낭만적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하늘의 별들이 땅에 내려앉아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 같다. 천상의 지리학이라 할까.
서울 남산은 한양의 안산으로 목멱산 또는 잠두봉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 어디서나 남산이 보이고, 남산에 올라가면 서울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봉수대가 조성됐다.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 독창적 조선 화풍인 진경산수를 창시한 정선은 목멱산을 단골주제로 삼았는데, 그의 ‘목멱조돈(木覓朝暾)’에는 이른 아침 남산의 기상과 선비의 유유자적함이 담겨 있다.
아쉽게도 오늘날의 남산은 이전 모습과 많이 다르다. 1972년 들어선 N서울타워(남산타워)로 인해 그 경관이 크게 바뀌었다. 서울 시내에서도 높은 건물들 때문에 남산을 한눈에 담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남산의 정취는 여전하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호연지기를 심어줬던 남산은 어느덧 사랑의 신화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바뀌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