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댐이 낙동강 상류의 그런 마을 수십 개를 한꺼번에 묻어버렸지. 도산의 골짜기마다 하회마을 하나씩이 숨어 있었거든! 만약 지금 안동댐을 건설하려면 동강댐 건설 반대보다 100배 이상 강한 저항을 받을 걸. 하하. 가정이지만 안동댐의 수위를 불과 몇 미터만 낮추었어도 도산은 하회마을 수십 배의 문화·경제적 가치를 보존했을 것을!”
▼ 왜 그때 저항하지 않았어요.
“정부 정책은 대의(大義)이고 가문을 지키는 것은 소리(小利)라고 공론이 모아졌으니까! 하하.”
안동댐에 묻힌 종가
댐 건설 당시 그의 선친이 분주히 움직여 일을 수습했지만 20대의 끓는 피였던 그였기에 절망의 깊이는 더욱 컸다. 그 뒤 20년을 허전하게 떠돈 삶이었다. 겉으로는 정착했지만 마음은 헤매어 돎을 멈출 수가 없었다. 20대가 지나고 30대가 지나고 40대에 이르렀다. 그 어느 날 잃어버린 땅 주변을 맴돌던 발걸음이 무인지경의 협곡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었지만 걷지 못할 길도 아니었다.
“깨끗하고 예쁘게 흐르는 강물의 굽이, 물결에 다듬어진 강돌맹이, 야생화와 잡초, 키 큰 포플러나무가 자라는 강변 언덕, 그 사이를 비집고 절묘하게 조성된 은빛 모래사장. 그리고 이런 수평적 아름다움을 수직적 아름다움으로 감싸 안은 병풍 같은 단애. 정신을 차려보니 도산면 가송리, 올미재라는 땅이었어. 잃어버린 부내에서 불과 이십여 리 떨어진 곳이었지.”
그는 모래사장 가운데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머니 품안 같은 안온함과 우주로 통하는 열린 감각’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는 외쳤다. 여기다. 바로 여기다! 이튿날 아내와 함께 다시 오고 우여곡절 끝에 그 땅들을 사들였다. 파라다이스 재건이 시작된 것이다.
간단히 한 문장으로 ‘그 땅들을 사들였다’라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별의별 이야기가 숨어있다. 지금 농암종택이 들어선 땅은 모두 2만여 평(6만6000여m2)에 달한다. 그걸 다 사들이기까지 일개 서생이었던 그가 바친 시간과 노력은 하늘에 닿을 정도다.
그날 무인지경을 걷던 종손의 눈앞엔 신선이 사는 듯한 흙집이 몇 채 발견된다. 그는 그 흙집에 사는 노인에게 아무개라고 인사하며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 깃들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탄식했다. 당시 그는 안동 길원여고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후로도 자주 들러 강변을 걷고 바위를 쓰다듬고 물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봤다.
“어느 날 흙집 노인에게서 연락이 왔어. ‘정 탐이 나면 내 땅을 팔겠소’ 하는 거야. 당장 달려갔지 뭐. 거 희한하데. 무슨 운명 같더라고.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어른이 중병이 났지 뭐야. 땅을 처분할 필요가 생겼던 거지. 내가 일 년만 늦게 왔어도 그 땅은 못 샀을 거야. 어른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나에게 올 수가 없는 땅이었거든.”
그렇게 청량산이 발치를 담그고 있는 가송의 강변은 한 자락씩 종손의 소유가 돼갔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슬쩍슬쩍 등을 밀어주는 듯했다고 한다. 그는 낙관과 기개로 우쭐우쭐 앞으로 나갔다. 그즈음 그는 학교를 그만뒀다. ‘낙원회복’을 위해 에너지를 한군데로 모을 필요가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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