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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40代

“배고파 죽겠는데 세상은 다이어트만 권하네요”

‘진보 지향하는 고달픈 생활인’ 40대 23명 심층 인터뷰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배고파 죽겠는데 세상은 다이어트만 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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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가장 큰 고민 ‘노후’

“배고파 죽겠는데 세상은 다이어트만 권하네요”

10년 전과 비교해 40대의 소득은 67.7% 상승했지만, 주택가격지수는 69.5% 높아졌다.

이 박사의 말처럼, 40대 인터뷰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한국 정치가 아니라 ‘노후 생활’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생긴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 ‘사오정(45세에 정년퇴직)’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지도 오래다. 은퇴연령이 낮아지면서 40대가 경제활동의 중심에 섰지만, 그 무게는 다른 세대보다 훨씬 육중하다.

과거에는 40대 때 열심히 벌어 내 집 마련과 자녀교육을 마친 뒤, 50대에 노후를 대비하는 사이클이 보편적이었다. 40대 때 자녀교육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50대 때 늘어난 연봉을 아껴 쓰며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40대 초반부터 ‘이대로 회사에서 살아남아야 하나’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고, 생활하며, 자녀 교육시키며, 집 장만하며, 동시에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하소연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 앞으로 각각 ‘월백(한 달에 100만원)’ 나가요. 일주일에 2,3회 하는 영어 40만원, 수학 40만원이죠, 학교 특기적성교육으로 피아노, 검도 한두 가지 시키면 사교육비만 기본 200만원입니다. 여기에 집 산다고 대출 받은 2억여 원의 이자만 100만원입니다. 생활은 팍팍해지는데 노후를 따로 준비할 여력이 없죠.”(89학번 회사원 이모씨)



“1987년에 처음 입사 면접을 보는데 ‘회사와 집에서 급한 일이 동시에 생기면 어디로 달려갈 거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회사’라고 했죠. ‘왜냐’고 묻기에 ‘회사가 나를 먹여 살리고, 동시에 가족을 먹여 살리니까 회사가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평생직장’ 개념이었으니 일종의 모범답안을 낸 거죠. 그런데 지금의 모범답안은 ‘집으로 가겠다’입니다. 학원에 애들 태우러 가야죠. 아내에게 혼나요(웃음).”(82학번 기업인 장모씨)

이러한 40대의 고민은 최근 동아일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산출한 ‘노후 경제행복지수’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후생활의 예상 만족도를 측정하기 위해 30~60대의 2000년과 2010년 경제수준을 비교했는데, 10년 새 40대의 월평균 지출은 53.2% 늘어나 250만원을 웃돌았다. 40대 월평균 소득은 2000년 223만9635원에서 2010년 375만5544원으로 67.7% 상승했지만, 이 기간 주택가격지수는 69.5% 올랐고, 가계부채는 285% 급증했다. 또 지난해 40대의 자녀양육비 월 지출액은 108만9371원으로 가장 많았다. 10년 사이 소득이 67.7% 늘어나는 동안 자녀양육비는 이보다 더(70.7%) 증가한 것이다. 결국 소득은 늘어도 집값과 사교육비가 더 올라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오히려 줄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미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2000년에는 50대의 월평균 소득(234만여 원)이 가장 많았지만, 2010년에는 40대(375만여 원)가 ‘임금피크’ 세대가 됐다. 40대는 소득이 줄어들 일만 남았고, 지금 저축하지 못하면 노후 대비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최혁민(46)씨는 ‘대출 이자’도 40대의 노후 대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한다.

“40대 중에는 ‘하우스 푸어’가 특히 많아요. ‘노후 대비’를 위해 집을 사려고 한 세대가 우리가 마지막일 거예요. 2005~06년 부동산 붐이 일기 시작할 때는 우리 나잇대 사람들이 내 집 마련에 대한 욕구가 가장 컸던 시절이었어요. 자고 나면 수천만 원씩 오르는 걸 지켜보며 불안해하다가 결국 덜컥 ‘상투’ 잡은 거죠. 이후 세계금융위기 등으로 집값은 곤두박질쳤고 이제는 오를 기미가 없어요. 생활이 더욱 팍팍해지는 거죠.”

‘하우스 푸어(House Poor)’는 빚을 내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 대출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산한 ‘연령별 하우스 푸어 분포’를 봐도 40대가 36만5000가구로 가장 많다. 국토연구원의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내 집 마련 평균 소요 연수는 2006년 평균 7.9년이었지만 2010년 말에는 9.01년으로 늘었다.

탤런트 김모(43)씨는 최근 이슈가 된 무상급식에 40대가 찬성하는 것은 팍팍한 생활 때문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40대들은 대체로 무상급식에 찬성합니다. 자녀가 대부분 학생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가계 경제에 큰 보탬은 안 돼요. 그보다는 ‘힘든 40대 가장의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는구나’ ‘차츰 복지가 확대되는구나’하는 위안, 즉 희망을 주는 면이 더 크다는 거죠. 반값 등록금에 대해서도 50, 60대는 ‘포퓰리즘’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40대는 희망을 보는 거 같아요.”

“가난이 창틈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현관문으로 나간다”

독일 시인 뮐러는 ‘가난이 몰래 집안으로 들어오면 우정은 서둘러 창문으로 달아나버린다’고 했다. 기자가 만난 40대들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가난은 아니지만,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사랑은 이미 현관문으로 나갔다’며 씁쓸해했다. 자신은 가족을 위해 살고 있는데, 가족은 더 이상 젊다고 할 수 없는 40대 가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가 컸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하는 공통점을 보였다.

“우리는 ‘세상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돈다’고 배우고 커왔어요. 대문 앞에서 헛기침 한번 하시면 옷매무새를 고치고 나가 인사를 했어요. 노란 월급봉투와 시장에서 산 치킨 한 마리 들고 오시는 날이면 온 가족이 ‘아비어천가’를 불렀죠. 당시의 40대 아버지는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존경받았어요. 다들 못사는 시대이다보니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애들 등하교시키고 와이프 출퇴근 도와줘도 고맙다는 말 듣기 어려워요. TV를 봐도 ‘슈퍼 연하남’이 연상의 여인을 기쁘게 해주는 드라마가 대세잖아요?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보고 자란 우리는 허탈해요. 40대 이혼율이 높은 이유가 다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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