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_ 박수용 지음, 김영사, 435쪽, 1만6000원삶을 살아가기는 사람이나 호랑이나 매한가지다. 그 뒤에 영혼이 있다. 다들 자신의 영혼이 상처 받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영혼은 늘 상처 받고 또 상처 입히며 살아간다. 그게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자신의 법칙을 가차 없이 집행하지만 자연스러운 수준까지만 실행한다. 하지만 문명은 자연의 일부이길 거부하고 신이 되려고 한다. 그 와중에 많은 자연물의 삶이 붕괴되고 영혼이 파괴된다. 한때 1만 마리에 달했던 시베리아호랑이가 지금은 350여 마리만 살아남았다.
시베리아호랑이는 장백산맥과 함경산맥을 타고 한반도와 만주를 넘나들며 살아왔다. 한반도로 넘어오면 한국호랑이, 만주로 넘어가면 만주호랑이로 불렸다. 이들은 인간의 눈을 피해 광활한 산맥을 은밀히 누비며 살아간다. 산중에서 그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자신의 기척을 감추는 은밀함 외에도, 상황을 파악하고 물러설 때와 나설 때를 아는 현명함, 일단 나서면 결말을 짓고 마는 대담함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필자는 시베리아호랑이를 조사해왔다. 한 해의 절반은 호랑이의 흔적을 따라 산맥을 넘고 숲을 헤맸으며, 나머지 절반은 아름드리나무 위나 땅굴 속에서 호랑이를 기다렸다. 호랑이를 기다리는 일은 자신을 기다리는 일이다. 영하 30℃ 오지의 한 평짜리 지하 비트에서 얼어붙은 주먹밥을 녹여 먹고 대소변을 해결하며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과 싸운다.
씻지도, 소리 지르지도, 불을 켜지도 못하고 6개월씩 갇혀 지내다보면 독방에 갇힌 죄수가 부러워진다.
오랜 기다림 끝에 호랑이가 나타나면 꿈에 사무치던 연인을 만난 듯 반갑다. 심장 둥둥 울리는 환희가 밀물처럼 밀려오며 짧은 순간 영원을 느낀다. 그러다 불현듯 공포가 엄습한다. 낌새를 챈 호랑이가 어둠 속에서 푸른 안광(眼光)을 빛내며 다가온다. 뿌드득 눈을 밟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이윽고 멈춘다. 뜨뜻한 콧김이 훅 끼쳐오며 뻣뻣한 수염이 손등을 스쳐간다. 삶과 죽음, 그 허약한 존재의 추가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피의 메리(Bloody Mary)’라고 불리던 암호랑이가 있었다. 이 책은 그의 가족이 3대에 걸쳐 겪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다. 동시에 호랑이 숲에 스며들어 자연의 일부가 된 한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을 충분히 상대하며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존재가 있는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인간은 왜소해진다. 그럴 때 자연과 더 깊이 대화하고 세월을 더 넓게 보게 된다. 자연과 대화하고 사색에 빠져들다보면 자연 속에 떠다니는 어떤 느낌들, 세월을 가로지르는 긴 흐름들을 느낀다. 이런 느낌들을 눈앞의 일에만 매달리며 살아가게 하는 도시로 가져오고 싶었다. 숲 속의 호랑이는 인간을 자연과 세월 앞에서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존재다.
박수용 | 콘텐츠 제작자, 네이처21 대표 |
New Books
기후대전 _ 귄 다이어 지음, 이창신 옮김‘전쟁(War)’ ‘미래: 긴장(Future: Tense)’ 등의 책으로 유명한 저자는 국제 안보 전문가이자 군사 지정학 분석가다. 그는 “지구 평균 기온이 2℃만 상승해도 세계 정치는 끓는점에 도달하게 된다”며 “대대적인 기후 난민 물결, 국가 시스템 파탄, 부족한 식량과 물을 둘러싼 충돌과 분쟁은 결국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자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환경의 영역을 뛰어넘어 정치, 경제, 군사를 움직이고, 세계 각국은 갈수록 뜨거워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벌한 정치, 외교, 안보 전략을 펼 수밖에 없다. 그의 주장은 기후변화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생기기 전, 국제사회가 다 함께 지구의 기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그동안 축적한 군사ㆍ안보 정보와 다양한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작성한 시나리오가 아찔할 만큼 현실적이다.
김영사, 365쪽, 1만5000원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 _ 요하네스 발라허 지음, 박정미 옮김, 홍성헌 감수‘인간다운 행복을 외면하는 경제적 사고에 제동을 건다’는 부제가 붙은 책. 독일 뮌헨철학대 총장인 저자는 “과도한 물질 추구와 지나친 비용-편익적인 사고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경제학이 꿈꾸는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통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행복은 단순하다. 소득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많은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저자는 높은 소득이 행복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결론 낼 경우, 우리가 놓치는 가치가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안정된 직장, 인간관계, 정치 참여 가능성, 부의 분배 정도, 건강 등,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요소들이 간과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인간다운 경제’를 세우기 위한 의식 변화와 빈곤과 기아, 자원 고갈, 지구온난화 같은 세계적인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 공동체의 정치적 의지를 강조한다.
대림북스, 232쪽, 1만3000원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_ 이주한 지음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인 저자는 우리 학계의 가장 큰 병폐로 노론사관과 그 뒤를 이은 식민사관을 꼽는다. 저자에 따르면 “사물을 선과 악, 흑과 백, 천사와 악마,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의 뿌리는 … 노론에서 비롯되었다 … 중국에 사대하던 것을 일본으로 바꾸자는 것이 노론의 입장이요, 사상이자 이데올로기다. 민초를 중심으로 시대가치를 추구하는 프레임이 노론에는 없다.” 더불어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에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은 76명의 수작자(受爵者)를 분석해보면 … 80%에 가까운 57명이 노론이다”라고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최근 역사학계에서 불붙고 있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독살설’을 둘러싼 논쟁을 분석하며 ‘노론 후예 학자들’이라고 지칭하는 주류 사학자들에게 날선 비판을 쏟아낸다.
역사의 아침, 302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