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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⑬

100년 뒤엔 어떤 선율 들려줄까

정명화 241년 된 첼로, 정경화 67.7억짜리 바이올린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100년 뒤엔 어떤 선율 들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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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번 결혼해 7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악기 제작기법은 대를 이어 전수되지 못했다. 1대 스트라디바리가 사망하고 공방을 물려받은 지 5년이 지났을 무렵 아들 프란체스코(1671~1743)와 오모보노(1679~1742)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 가족 간에 이루어지던 스트라디바리우스 공방의 도제식 전수 방식은 불행하게도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고, 찬란하게 빛나던 영광스러운 공방 제작소는 남은 악기들의 판매소로 전락하고 만다.

주세페 과르니에리

아마티 공방에서 니콜로 아마티의 수제자로 있다가 독립한 안드레아 과르니에리(1626~1698)는 스트라디바리보다 먼저 자신의 공방을 만들고 현악기를 제작했다. 과르니에리는 아마티 공방 악기처럼 크기는 아담하나 더 깊은 곡선을 사용해 우아한 멋을 냈다. 그의 7명의 자녀 중 두 아들이 공방을 지켰고, 작은아들 주세페(2대)와 그의 아들 3대 주세페 과르니에리(1698~1644)가 태어나는 것을 보고 눈을 감는다. 3대 주세페 과르니에리는 아버지와 이름이 같다. 하지만 그가 본 이 3대 과르니에리는 가문의 최고봉을 이룬 장인으로 성장한다. 3대 과르니에리가 제작한 악기에는 자신이 만든 표시로 ‘I.H.S’(Iesus Hominum Salvator·인류의 구원자 예수란 뜻)를 새겼다. 이로 인해 그에게는 ‘과르니에리 델 제수’라는 별칭이 생겼다. 그의 바이올린은 130여 대로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적어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비슷하거나 더 비싸게 팔리는 유일한 악기로 남았다.

정경화 씨 등 많은 연주자는 젊은 시절에는 정교하고 섬세하게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용하다가 거칠게 제작되어 나무의 결이 보이는 과르니에리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같은 아마티 공방 출신이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니에리 델 제수는 전혀 다른 독특한 빛깔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둘 다 심오하고 깊은 울림을 가지고 있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우아하게 귀족적으로 완성된 화려한 울림이고, 과르니에리는 다소 투박하고 거칠지만 깊은 희로애락의 울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스트라디바리우스는 그 소리가 음악에 맞추어가고, 과르니에리는 연주자가 원하는 음악을 가지고 직접 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거장들은 마지막 연주를 할 때면 과르니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따지고 보면 바이올린이 세상에 나왔을 때 반응은 냉담했다. 지나치게 경직된 음을 가진 매우 빈약한 소리여서 춤곡 반주 혹은 여러 대의 현악기와 어울려야 연주할 수 있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장인들과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작곡가들의 노력으로 이탈리아 음악계는 바이올린 독주를 인정했고,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공연도 항상 만석이 됐다. 하지만 교회 음악 중심의 이탈리아와 독일 공연계는 오페라가 아니면 지극히 협소하고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바이올린 수요는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니에리도 생전에 자신들이 만든 악기를 모두 판매하지는 못했다.

당시 최고의 공연 도시였던 프랑스 파리에서는 음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바이올린을 경시했다. 물론 독주 악기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곡자이자 연주가였던 이탈리아 출신의 조반니 바티스타 비오티(1754~1824)가 등장하면서 파리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에 열광하게 된다. 비오티가 연주한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당시 프랑스에서 연주되던 악기보다 화려하고 영롱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신동’ 볼프강 모차르트의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1751~1829)의 일생을 다룬 영화 ‘나넬 모차르트’(Nannerl, Mozart′s Sister·2010)를 보면 음악교육자인 아버지 레오폴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어 하는 어린 딸에게 ‘바이올린은 남자들만이 하는 악기’라고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음악가들은 바이올린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바이올린에 대한 ‘인식의 혁명’을 일으킨 비오티가 1782년 파리에서 첫 콘서트를 열기 전이었다.

지금은 모두 바이올린을 어깨에 걸치고 목으로 괴어 연주를 하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 해금처럼 허벅지 위에 얹어 연주할 수 있었다. 악기를 목에 괴어 격정적으로 연주하던 비오티에게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제격이었다. 비오티의 연주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재발견한 파리의 악기상들은 이탈리아에 숨어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눈을 돌렸다. 고악기를 얘기하면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를 빼놓을 수 없다. 파가니니는 스트라디바리우스 11대(바이올린 7대, 비올라 2대, 첼로 2대), 아마티 바이올린 2대, 과르니에리 바이올린 4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그가 가장 아낀 바이올린은 1742년에 제작된 과르니에리 델 제수였다. 호색한에 노름을 즐겼던 파가니니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노름 판돈으로 걸었다가 잃기도 했다.

비쩍 마른 몸, 어깨를 뒤덮는 찰랑찰랑한 단발머리, 날카로운 눈매, 매부리코 등 그의 인상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 도중에 동물소리를 재현하고, 빠른 테크닉으로 1초에 18개의 음을 구사한 그는 현대적인 연주자였고 낭만적인 작곡자였다. 다만 그의 작품은 거의 즉흥적이어서 악보로 기록해놓지 않았다. 남아 있는 악보와 당시 평론가들의 문헌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의 독특하고 괴팍한 성격 탓에 제자 양성도 하지 않아서 그의 연주법은 전승되지 않았다.

“위대한 바이올린은 살아 있다”

파가니니의 현란하고 신기에 가까운 연주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낳을 정도였다. 그의 악기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후에 그의 유해와 악기가 고향 제노바로 돌아오지 못한 것도 제노바의 흉흉한 민심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바이올린이 제노바로 들어왔지만 곧바로 시청 보관실로 보내져 100여 년간 처박혀 있었다. 1937년 파가니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게 된 제노바 시민은 잊어버렸던 보물을 확인하러 시청 지하 보관실로 갔다. 그러나 그의 바이올린은 이미 음색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명기는 명기였다. 악기 전문가들이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을 수리하고 재조립하자 한 세기 전 유럽을 매료시켰던 음색을 되찾았다. 제노바 시 당국은 1954년 신설된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에게 전설적인 이 바이올린을 연주할 기회를 주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음색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학자들은 현악기가 수세기에 걸친 음과 진동, 겹겹이 쌓인 소리의 나이테를 전부 기억한다고 말한다. 연주자들에게 자신의 악기는 가족이다. 자신의 연주 스타일과 맞는 음색의 악기를 발견했을 때에는 첫사랑에 빠진 느낌이라고 한다. 20세기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인 예후디 메뉴인(1916~1999)은 “위대한 바이올린은 살아 있다. 바이올린의 모양은 제작자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나무는 소유자들의 역사나 영혼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연주할 때마다 내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 또는 속박당하는 영혼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고악기에도 집값처럼 거품이 끼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고악기는 또 하나의 예술품으로 단순하게 지금 그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동안 그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청중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우리는 정경화 씨가 연주하는 ‘사랑의 인사’를 2012년에 들었지만, 시간을 거슬러 1912년에 누군가는 그 악기로 다른 연주자의 음악을 감상했을 것이고, 이는 2112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바이올린은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성찰의 감동을 깊이 안겨주며 예술로서 연주하는 이와 듣는 이들의 200년을 연결할 수 있다. 명기의 가치가 높아지는 이유다.

신동아 201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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