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패션과 정치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패션 전문기자가 ‘파워드레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 김민경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채널A ‘스타일 A’ 진행자 holden@donga.com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3/4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잇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적이 분명해진 이후, 박 대통령의 옷에서는 패션 감각보다 정치적 메시지가 더 중요해진다. 특히 2005년 당 대표 시절 숏커트에 가까운 단발 헤어스타일(젊은 층은 좋아했으나 어르신들은 아쉬워했다)을 잠시 시도했다 다시 올림머리로 돌아간 2007년 이후 이런 특징이 더욱 강화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옷에서 ‘의미’ 이상의 것을 읽어내는 것을 반기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의 딸’보다는 ‘정치인’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부담과, 옷 때문에 시비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는 조심스러움이 작용한 듯하다. 예를 들어 2011년 유럽 특사 방문 때 외교적으로 올바르게 방문 장소와 상황에 맞춰 갈아입은 옷들이 국내 언론에서 ‘패션’으로 떠들썩하게 보도된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해했다’고 정치부 기자들은 전한다. 박 대통령은 한동안 같은 옷을 입고 다녀 이 같은 심기를 드러냈다.

또 국회에서 남성 의원이 박근혜 당시 당 대표에게 말을 붙이느라 “오늘 입으신 옷이 참 예쁘십니다” 하자 “여러 번 입고 왔던 옷입니다”라고 말해 의원이 당황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많은 남성이 이런 식의 실수를 한다. 이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차라리 옷의 메시지를 설명했어야 했다(‘빨간색 옷을 입으신 걸 보니 선거가 본격화한 듯하다’ 운운). 평소 아무런 패션 센스도 보여주지 못하던 남성이 어설프게 여성의 옷차림을 화제로 삼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당신은 여자니까 무조건 예쁘다고 하면 좋아할 것’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적인 의회에서, 상대가 당 대표라면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검소함과 ‘브로치 정치’

박근혜 대통령은 파워드레서다. 파워드레서의 옷은, 그림의 미적 아름다움보다 강아지는 ‘충성’으로, 해골은 ‘죽음’으로 해석하는 도상학의 세계와 같다.



2012년 대선부터 최근까지 박 대통령 패션의 도상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검소함’이다. 선거 운동을 위해 빨간색이 더해지긴 했지만, 박 대통령은 늘 단순한 테일러드 컬러 재킷과 바지, 오래된 검은색 구두, 무채색 패딩들만 돌아가며 입었다. 구두는 갈색, 은회색, 감색, 검정 네 켤레를 돌려 신는데, 두 켤레는 10년 이상 됐다고 한다. ‘엘레강스’ 라이선스를 받아 국내 중소업체가 생산 중인데, 지난해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갈아 신을 때 브랜드가 처음 알려져 ‘대통령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시계는 30년 된 라도와 론진이다. 판매가도 비싸지 않지만, 비싼 시계라도 이 정도 착용하면 ‘검소’해진다.

현대의 여성 정치지도자가 이처럼 같은 옷과 구두를 돌려가며 착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박 대통령조차 대권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전까진 같은 옷을 계속 입은 적이 거의 없다. 강조된 검소함은 명품도, 사치할 여력도 없이 누구나 열심히 일해야 했던 시절을 미덕으로 기억하게 하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이 다시 실현되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 다른 특징은 엄격한 ‘권위’의 실현이다. 도전과 비난이 이어지는 현실 정치의 세계에서 여성 정치인 박근혜의 주요한 방어막이 된 것은 미니멀한 단어와 미니멀한 패션이었다. 권위와 절제가 드러나는 단순한 옷은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배색으로 강조하곤 하는 재킷의 깃과 만다린 칼라는 꼿꼿하게 서 있다. 대처가 즐긴 ‘파워숄더’(어깨에 패드를 넣어 강인함을 강조)도 박 대통령 패션의 특징으로 남성적 권위를 부여한다.

박근혜, 패션 디테일에 강하다?

박 대통령이 3월 4일 첫 대국민담화 때 입은 재킷은 취임식의 녹색에 그늘이 짙어진 듯한 색의 셔츠 컬러로 일에 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대국민담화에 성장이 아닌 사무적 차림이어서 오히려 긴장감이 더해졌다.

반면 브로치와 목걸이, 귀고리 같은 액세서리와 분홍, 주홍 같은 여성적 색상의 활용은 ‘여성성’에 대한 호소다. 박 대통령 취임 후 더 관심을 모으는 브로치 정치는 ‘내 브로치를 읽어라’라는 책을 펴내는 등 ‘브로치 외교’로 유명했던 미 정치인 매들린 울브라이트를 연상시킨다. 울브라이트는 러시아와 미사일 감축 협상을 할 때 로켓 모양 브로치를 하고 나가 러시아 외무장관이 “그거 우리 쪽에서 가져간 미사일인가요?”라고 하자 “맞아요. 우리가 그것들을 가져다 아주 작게 만들었다우”라고 받아치는 식이었다. 울브라이트는 옷은 심플하게 입었지만 화려한 액세서리를 즐겼다. 그는 “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좋다. 직업적으로 훌륭하면서 동시에 행복한 여성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난 브로치와 액세서리를 좋아하는데, 낮에 일할 때 입던 옷을 바로 파티복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2011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액세서리는 옷을 입었는데 뭔가 허전할 때 한다. 이 브로치가 없다면 지금 내 의상이 얼마나 우중충하겠나. 액세서리의 역할은 그것 하나로 분위기 전체가 살 수 있다는 건데, 과도하면 제 역할을 못한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마다 큰 반지를 꼈는데 하나도 살아나지 않더라.”

일반적으로 파워드레싱의 세계에서 분홍은 가장 기피되는 색이다. 사회적으로 여성화한 색이기 때문이다. 분홍 재킷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서의 감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 소통이 어렵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에겐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3/4
김민경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채널A ‘스타일 A’ 진행자 holden@donga.com
목록 닫기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