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이 됐으면 미국으로 영영 떠날 생각이었지.”
그는 박근혜 후보 선대위에서 ‘100% 대한민국대통합위’ 기획특보를, 대통령직인수위에선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엔 청와대로부터 공직 제의를 받았지만 고사했다.
‘문화적 차이’ 많이 느껴
대선 때 배수진의 각오로 박근혜를 밀었던 그는 ‘박근혜 정부 6개월’을 어떻게 평가할까. 최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내가 모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시청률이 3.5%까지 뛰었다. 출연료를 3배 올려주더라”는 근황을 전하며 인사를 대신했다.
▼ 지난해 박근혜 캠프에 들어갔을 때 ‘문화적 차이’를 느끼지 않았나요.
“좀 많이. 새누리당 사람들은 바이탈리티(vitality·활력)가 너무 약해…. 그럼에도 표가 나온 것 보면 신통해요. 거저먹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말 없는 중도 보수층’이 두꺼운 것 같아요.”
▼ 박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나요.
“국회 상임위를 같이 했는데 목례만 하던 사이였죠. 나를 ‘고약한 사람’으로 생각했겠지. 그런 책(‘김형욱 회고록’)이나 쓰고 했으니까. 한번은 4·19 기념행사장에 있을 때였어요. 4·19 행사에선 내가 상주(喪主) 노릇 하거든. 이경재 의원(현 방송통신위원장)이 다가서더니 ‘박근혜 대표가 오시는데 알은체해달라’고 해요. 그래서 처음 제대로 인사를 했어요. ‘차갑고 정밀하고 위엄이 있고, 과연 박정희의 딸은 다르구나’ 하는 느낌…. 나중에 박 후보로부터 도와달라는 허심탄회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 왜 수락했습니까.
“다른 것보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 만약 손학규 전 지사가 민주당 후보가 되어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했다면?
“그럼 박근혜 후보 쪽으로 못 왔지. 나는 문재인 의원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문 의원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문 의원 주변 386 코어(core)들이 너무 강성이고 독하다. 사상적으로 의심스러운 데도 있다. 이 나라 끌고 가기 어렵다”고만 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IT(정보통신기술)가 널리 보급되기 전, 노무현 정부 때죠.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통평)에서 우리 정치인들에게 팩시밀리로 지령이 많이 내려왔습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걸 문구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말해요. 나도 그 팩스 받은 적이 있어 잘 알아요. 이들은 대개 삼민투 같은 거 만들어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대항하던 386들이죠. 나도 소싯적에 그쪽에 대해 상당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당시엔 ‘오라 북으로, 가자 남으로’ 정서에 십분 동의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어요. 북측과 감성적 연대감을 가진 사람들은 북측에 악용됩니다. 이들에겐 정권을 못 맡겨요.”
“상시 이산가족 상봉도 기대”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대선 때 박근혜-김경재의 만남에서 두 사람은 DMZ평화공원 조성 문제에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최근 DMZ평화공원 비전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매우 흐뭇했다”고 말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과 박근혜 후보의 대북관이 잘 맞을 것 같진 않은데요.
“참 잘 맞았어요. 내가 ‘어지간한 것 내밀지 않는 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겠습니까. 아, 받을 만한 것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닙니까’라고 했어요. 그러자 박 후보가 ‘그게 뭡니까’라고 해요. ‘내가 폭 4km, 길이 248km, 2억5000만 평인 DMZ를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면 되죠. 박근혜 벨트로 만들자는 거죠. 미국·중국도 관여하게 하고. 박 후보가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대선 때 김경재의 KBS 정책연설은 SNS에서 화제가 됐다. 수많은 사람이 퍼나르기를 하며 돌려봤다고 한다. 여권 내에선 ‘김경재 영입은 신의 한 수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