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자체 보조금’, 朴 시장이 주면 괜찮다?
- 노동복지센터 운영권 놓고 노동단체 이전투구
- 15억 원 중 비정규직 노조활동 사업은 3.3%뿐
- 서울시민 세금으로 조합원 자녀만 장학금 혜택
- ‘무상임대면서 입주 단체에 임대료 받았다’논란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서울시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는 문제로 시끄럽다.
서울본부의 관련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노동센터는 서울지역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화, 권익 보호, 복지 증진, 노동환경 개선을 통한 노사관계 안정화, 노조 설립 지원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상근 인력 10여 명을 채용하고, 노동자 법률학교, 노동인권교육, 법률지원센터 운영,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사업, 비정규직 노조 설립 지원 및 자문 사업,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 장학금 사업 등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또한 서울시 15억 원 이외에 자치구 사업응모를 통해 추가 예산 5억 원을 확보, 총 20억 원 예산으로 10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7월 18일엔 서울본부 홈페이지에 ‘비정규노동센터 직원 채용 공고’도 올렸다.
서울본부는 8월 초, 서울시에 15억 원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양측은 조율을 거쳐 정책연구사업 2억 원, 교육사업 1억7800만 원, 법률구조사업 1억2000만 원, 비정규직 노조활동 보장사업 5000만 원, 노동자 복지지원사업 1억3200만 원, 지역공동체 연계사업 2000만 원, 근로자자녀 장학금사업 8억 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서울본부는 이미 1억3000여만 원의 지급을 요청해 실제로 사업비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흔들리는 정당성
서울본부가 서울시로부터 사업보조금을 받는 것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재 민주노총에서는 공식적으로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사업비나 보조금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부 때 내부 논의를 거쳐 ‘국고지원금 및 정부 지원금은 건물, 토지 등 부동산과 최소한의 관리유지비를 포함한 비용으로 제한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정부가 국고지원금을 갖고 장난질치며 한국노총 등을 관리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자주성과 민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같은 방식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돈을 매개로 한 통제와 유착 가능성’은 오랫동안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을 어용노조라고 폄하하는 근거이자 민주노총의 도덕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근거가 돼왔다.
서울본부 역시 이명박, 오세훈 등 이전 서울시장들의 수십억 원대 지원 제안을 거절해왔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 체제에서 그 원칙을 스스로 파기한 것이다. 이에 일부 조합원이 강하게 반발하며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8월 중으로 예정된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본부의 문제를 넘어서 민주노총 전체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지자체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안산지부가 마라톤 행사를 하면서 경비 일부를 안산시로부터 지원받아 논란이 됐다. 경남본부도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시절 경남도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를 만들었다. 당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는 ‘방침 위반’이라며 승인하지 않았지만 경남본부는 사업을 강행했다. 이외에도 몇몇 지역본부가 해당 지자체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상 민주노총의 ‘원칙’이 무너진 것이고, 한국노총과의 차별성이 사라진 셈이다.
반면 이재웅 서울본부장은 ‘방침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지원 사업’은 민주노총이 역점을 둬야 할 사업임에도 그동안 재정문제로 소홀했는데, 박원순 서울시장과 선거 전에 합의한 ‘정책연합’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는 게 왜 잘못이냐는 항변이다.
그런데 15억 원의 성격을 놓고 서울시와 서울본부는 작지만 중요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서울본부는 합의된 정책연합에 근거한 ‘비정규직노동센터’ 사업 지원비로 규정하는 반면, 서울시는 민주노총 활동사업 보조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는 “비정규직센터 지원이 목적이 아니라 노동단체 지원을 목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근로자복지기본법 3조와 4조에 의거해 서울지역 노사정 간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과 지역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노동단체에 민간경상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며 “지난해에 이미 2013년 예산을 편성하며 서울본부에 15억 원을 배정해놓은 것으로 안다.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에도 같은 항목으로 20억 원이 배정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노동단체 지원 사업 계획서에는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와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노동단체로부터 사업계획을 신청받아 공익성과 건전성 등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 사업 선정 및 지원을 한다’고 돼 있지만, 이미 예산 편성이 확정된 상태라 사업계획 신청과 심사는 형식상 절차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는 해마다 사업보조금을 받아왔기 때문에 서울시가 관례에 따라 예산을 책정했다고 할 수 있지만, 민주노총은 지난해까지 민간경상보조금은 물론 어떤 사업비도 지원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누가, 왜, 어떤 근거로 15억 원을 새롭게 책정했는지 의문이다. 아무튼 15억 원은 ‘비정규노동센터’가 아니라 다른 어떤 항목이어도 서울본부가 요구하면 지급될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이다.
“조합원을 사겠다는 거냐”
서울본부 비정규노동센터의 가장 큰 사업은 장학사업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장학금 사업은 서울시가 직접 할 수 있는 사업인데 굳이 서울본부가 용역을 받아 할 이유가 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더 큰 문제는 서울본부가 “(비정규센터 사업의) 복지혜택은 무작위 노동자가 아닌 민주노총 조합원에 한하여 제공하고, 노동조합 확대에 기여토록 한다”고 규정한 점이다. 즉, 민주노총에 가입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에게만 장학금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도 서울시로부터 13억 원을 지원받아 소속 조합원 자녀를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장학금 수혜 대상을 무작위로 하면 선별하기가 어렵다. 재산, 소득, 다른 장학금 수혜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조합원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서울시민이 낸 세금으로 특정 노조단체 조합원 자녀에게만 장학금을 주는 게 합당할까. 이 문제는 몇 년 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조합원을 돈으로 사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서울본부장도 인터넷 매체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기회를 통해 서울시 250만 비정규직의 10%만 조직하자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비정규노동센터의 다른 사업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센터 성격에 걸맞은 사업이라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조활동 보장 사업 할당액은 5000만 원으로, 전체 예산의 3.3%에 불과하다. 그나마 세부항목도 ‘준비위 구성’과 ‘워크숍’뿐이다. 서울지역비정규노조연대회의(서비연)는 “이런 센터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며, 이런 사업을 왜 서울본부가 지자체 예산을 받아 집행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도 “서울본부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지자체 지원금을 받고 있는 지역본부들도 하나같이 대외적으로 ‘비정규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비정규직 사업을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인지, 돈이 필요하기에 ‘비정규직’이란 명분을 갖다 쓰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의문점은 또 있다. 이재웅 서울본부장은 ‘민주노총 스스로의 힘으로 비정규센터를 운영해야 한다’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에 ‘재정능력이 안 된다’며 서울시 지원 사업비 활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비정규노동센터 상근 직원 10명을 선발 중이며, 추후 6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문제는 서울시 지원금 15억 원은 한 푼도 상근직원 인건비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서울시 담당자는 “우리가 제공하는 돈은 보조금이다. 보조금에 관한 조례에 의해 인건비는 인정이 안 된다. 인건비로 지급되면 전액 환수조치된다”고 말했다. 재정능력이 안 된다는 서울본부가 인건비를 어떻게 충당할지에 대한 계획은 들을 수 없었다. 더구나 민주노총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상근직 채용자들은 ‘불가피한 사유의 발생으로 센터 사업이 중단될 시 고용은 종료’되는 것으로 내부 방침이 정해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채용 공고에는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웅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서울본부는 왜 비정규직노동센터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지난해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당초 올해까지 서울 시내 모든 구에 노동복지센터를 설립, 운영할 계획이었다. 서울시가 돈을 지원하고, 지자체가 알아서 전문기관에 운영을 맡기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5개 구를 선정해 노동복지센터를 설립하도록 공문을 내려보냈고, 3억 원씩 지원하기 위해 예산 45억 원도 편성해놓았다.
구로구와 서대문구, 성동구에서는 이미 노동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네 번째로 노원구에서, 다섯 번째로 광진구에서 센터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광진구에서 위탁한 센터장이 ‘특정 정치세력’이라는 이유로 다른 노동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노동단체와 진보정치세력이 센터 운영을 위탁받기 위해 너나없이 달려들어 이전투구를 벌인 것이다. 서울시의 조정 노력이 무산되자 박원순 시장은 사업 자체를 보류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웅 서울본부장은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자신과 박 시장 사이에) 야권연대 과정에서 합의된 것은 매년 75억 원을 비정규직 사업에 배정하기로 했지만, 지난해 각 지역 센터 건설 과정에서 서울본부 직접 운영을 부정하고 여기저기 조직들이 자기들이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서울본부가 그 사업을 하지 못했다”며 “이 문제를 놓고 (박) 시장과 오랫동안 얘기를 해왔다. 서울본부가 다시 직접 운영을 한다는 요구를 한 거고 올해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비정규노동센터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본부가 25개 구 단위 노동복지센터 운영을 독식하려 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신들이 정책연합이란 이름 아래 노동복지센터 운영 등을 전제로 박 시장 당선을 도왔으니 그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으로 들린다면 과잉 해석일까.
470만 원의 정체
서울시는 2개의 근로자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다. 영등포에 있는 서울근로자복지관은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가, 은평구에 있는 강북근로자복지관은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위탁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양대 노총 서울본부에 무상으로 사무공간을 제공한 셈이다.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는 제세공과금과 관리비를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담당자에 따르면 200만~500만 원을 입주단체들과 나눠 내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건물 노후화에 따른 보수공사비 정도만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서울시로부터 매달 1000만 원 정도를 관리비로 지급받고 있다. 서울시는 “강북근로자복지관이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현재의 은평구 녹번동 소재 질병관리본부 18동으로 이전하면서 월 800만 원이 소요되는 관리비 부담으로 이전에 어려움을 호소해 관리비를 시에서 부담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관리비가 부담스러워 못 들어가겠다는 것을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관리비까지 대신 부담해주면서 사용하게 했다는 것인데, 쉽게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지역운동 강화를 위한 모임(서울모임)은 “올 상반기 서울본부 결산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 서울본부는 현 건물에 입주한 다른 노조와 단체들로부터 월 470만 원 정도를 임대료로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담당자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이라면 바로 시정조치하겠다”며 “지난해 11월 현장실사를 나갔을 때 노동단체 외에 다른 단체가 입주해 있어서 강제퇴거조치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며칠 후 확인 여부를 묻자 “유선상으로 유상 재임대 여부를 확인했는데 서울본부로부터 ‘그런 사실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한편 본 기사와 관련해 사실 확인과 변론을 듣기 위해 이재웅 서울본부장과 실무담당자에게 인터뷰 요청과 공식 질의서를 보냈지만 “할 말 없다” “연락하지 마라”는 대답 외엔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