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로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시계가 등장하는 걸까. CJ 비자금 수사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그 대목이었다. 이번 사건에 등장한 시계는 무엇이고, 시계를 로비 수단으로 이용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시계가 실제로 재산 가치가 있는지, 과연 그런 시계들은 누가 사는지 등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까르띠에, 프랭크뮬러…
검찰은 CJ그룹이 국세청 간부 대상 로비에 사용한 시계가 까르띠에와 프랭크뮬러라고 밝혔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평소 자주 이용하던 서울 남산 힐튼호텔에서 시계를 직접 구입했다. 이 회장이 세금 관련 로비를 위해 구입한 까르띠에와 프랭크뮬러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에게 전달됐다.
까르띠에는 2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이 브랜드의 시계도 보석 제품만큼 인기가 높다. 까르띠에의 시계 컬렉션 중 탱크나 산토스 라인은 1990년대부터 결혼 예물로 애용됐다. 안철수 의원도 2000년대 초반에 찍은 사진을 보면 까르띠에 탱크를 차고 있다. 탱크나 산토스는 보통 수백만 원대인데, CJ가 로비에 사용한 시계는 수천만 원대라고 한다. CJ가 로비를 한 시기는 2006년. 까르띠에가 여전히 수백만 원대 스틸 소재 쿼츠 시계를 주로 선보이던 때다. 따라서 수천만 원대 시계는 브랜드 내에서 상당히 고가에 해당하는 모델이었을 것이다.
프랭크뮬러는 까르띠에보다 덜 알려진 브랜드다. 2003년 한국에 정식 론칭한 이 브랜드는 1991년 천재적인 시계 제작자 프랭크뮬러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설립한 브랜드다. 힐튼호텔을 시작으로 2005년 에비뉴엘 백화점에 단독 매장을 여는 등 한국에서 잘나가는 명품 시계 브랜드 중 하나다. 시계 값이 1000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초고가 브랜드다.
프랭크뮬러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후보 부인 김윤옥 여사가 착용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화제가 됐다. 김현미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이 김 여사의 시계가 1500만 원에 팔리는 스위스제 프랭크뮬러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개성공단에서 제작한 통일시계로 가격은 10만 원 이하였다.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최근 가수 싸이를 모델로 한 시계가 프랭크뮬러 직원의 실수로 이 브랜드의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유출되면서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소 프랭크뮬러를 즐겨 차던 싸이를 위해 말춤을 추는 싸이의 모습을 다이얼에 새긴 시계를 한정 수량으로 제작한 것. 싸이는 7월 2일 미국 공항에 이 시계를 차고 나타났다.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의 인기 모델 서브마리너의 경우 백화점 소매가격이 1000만 원 안팎이다.
시계는 가로, 세로 각 20cm 정도의 작은 상자에 들어간다. CJ그룹이 국세청 간부들에게 전달한 두 개의 시계 가격을 합하면 5000만 원이다. 작은 시계 상자 2개에 5000만 원이 들어간 셈이다. 같은 액수의 뇌물을 현금으로 전달한다면 부피가 훨씬 커졌을 것이다. 액수가 올라갈수록 돈이 담긴 가방이나 상자의 크기는 커지게 마련 아닌가. 시계는 그렇지 않다. 1000만 원짜리든 1억 원짜리든 상자 크기는 엇비슷하다. 그렇기에 은밀한 거래인 로비의 수단으로 시계가 각광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