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호

성장잠재력 회복 최후 카드 후진 정치문화에 좌초할라

첫걸음 뗀 ‘창조경제’의 험로

  •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ahnd@snu.ac.kr

    입력2013-08-22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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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락한 성장잠재력으론 선진국 진입 어려워
    • 창조경제-경제민주화-복지확대 불가분 관계
    • 도덕적 해이, 디테일 취약, 계량목표 부재…
    • 기꺼이 ‘risk taking’ 하는 문화 정착돼야
    성장잠재력 회복 최후 카드 후진 정치문화에 좌초할라

    8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창한 미래창조과학부 기획조정실장(마이크 앞) 등이 ‘창의인재 육성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8월 6일 정부가 ‘창조경제를 견인할 창의인재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6월에 나온 ‘창조경제 실현 계획’의 후속조치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교육부, 고용노동부가 합동 브리핑한 창의인재 육성방안은 ‘Five-Jump’라 이름 지은 5가지 핵심 역량(꿈과 끼, 융합·전문, 도전, 글로벌, 평생학습)과 11개 추진과제로 구성됐다. 정부는 정책 입안 초기부터 제기돼온 창조경제의 모호성과 디테일의 취약성에 대한 비판을 극복하길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벌써 ‘추진 목표와 세부 정책 간 인과성이 취약하다’ ‘실효성이 있을지 의심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창의 씨앗이 열매 맺는 경제

    창조경제는 경제민주화 및 보편적 복지 확대와 함께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3대 국가운영과제 중 하나이며, 특히 최우선 성장전략에 해당한다. 창조경제 포털사이트(www.creativekorea.or.kr)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씨앗이 자라고 열매 맺는 경제’라고 정의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 상상력과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된 창의적 자산이 활발하게 창업 또는 기존 산업과 융합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생겨나게 함으로써 양질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창조경제의 목표는 ‘경제성장’이고, 경제성장을 위해 경제체제의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한 정부의 문제인식을 좀 더 살펴보자.

    지난 40여 년간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끈 ‘추격형’ 전략은 신흥 산업국가들의 등장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고용 없는 성장, 청년 실업,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성장의 질 역시 저하됐다. 한편 세계경제는 부가가치 창출요소가 노동·자본(산업경제), 지식·정보(지식경제) 중심에서 혁신적 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중심이 되는 창조경제로 이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모방·응용을 통한 추격형에서 창의성에 기반을 둔 ‘선도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강점인 과학기술과 ICT 역량 등을 활용해 한국형 창조경제를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짚어볼 문제는, 우선 우리 경제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창조경제가 해법으로 제시됐는 지다. 아울러 창조경제가 일견 거리감 있어 보이는 나머지 국정운영과제와 어떻게 조율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최근 크게 추락했다. 1970~80년대 9%대에서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7.5%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2007년까지 4.7%대로 급격하게 추락한 뒤 현재는 3.9%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전망치에 따르면 이 수치는 올해부터 2017년까지 3.4%대로 떨어진 후 가속도가 붙어 2018년부터 2030년까지 2.4%, 2031년부터 2050년까지 1%로 추락할 것으로 예측된다.

    1인당 GDP 3만5000달러가 선진국 진입 기준으로 간주된다. 현재 우리의 1인당 GDP는 2만2000달러로 선진국 진입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세계경제의 평균 잠재성장률은 3.5% 정도로, 현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세계 평균을 하회해 선진국 진입은커녕 중진국 위치도 위협받을 수 있다.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이렇게까지 추락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폴 크루그먼의 얘기처럼 노동과 자본 등 요소투입량의 증가가 한계에 부딪힌 반면 요소생산성이 정체된 면을 들 수 있다. 더불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지적한 것처럼 경제가 정치에 예속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외에도 무수한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현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는 사회 전반에 팽배한 위험회피 성향, 양극화에 따른 사회통합의 붕괴, 국가전략 모형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중산층 붕괴 진행 중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투자 기조는 소극적인 방향으로 돌아섰다. 최근 한 민간금융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건설투자 항목의 평균증가율은 7분의 1, 설비투자 증가율은 2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설비투자는 노무현 정부 이래로 급격히 감소해 지난 3년간은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는 대부분 중견기업 및 중소기업의 투자 감소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설비투자 규모는 1.8% 감소했는데, 중소기업은 12%, 중견기업은 18.7% 감소했고 대기업은 2.1% 증가했다. 이는 대기업 성장률은 더 높이고 중소·중견기업은 뒤처지게 해 산업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며, 이로 인해 다시 투자 여력에 차이가 나는 악순환이 초래된다.

    기업만 그런가. 1960~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수 인재들은 대거 이공계통으로 진학해 경제성장 주역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다들 의대나 로스쿨 진학에 목을 맨다. 기업, 개인 할 것 없이 사회 전반이 안정 지향적이다. 이렇게 위험을 회피하고 투자를 기피하는 경제체제에서 어떻게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경제 양극화는 성장을 저해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혼용하는 부의 불균형(wealth inequality)과 부의 양극화(wealth polarization)는 학문적으로 구별되는 개념이다. 부의 불균형이란 부의 분포가 중심이 낮고 넓게 퍼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반면, 양극화는 최부유층과 최극빈층의 양쪽 꼬리가 두터워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즉, 부의 양극화는 중산층 붕괴를 수반하며 수요 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같은 부의 불균형이라도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소득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로는 보통 지니계수가 쓰이고, 부의 양극화 척도로는 최상위 10%의 평균 소득이 최하위 10%의 평균 소득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퍼센타일계수(Percentile Ratio)가 주로 쓰인다.

    최근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지니계수는 0.31로 OECD 국가 평균에 해당하지만, 퍼센타일계수는 5배로 멕시코, 칠레, 이스라엘, 터키, 미국, 일본, 포르투갈 다음으로 높은 편이다. 즉 중산층 붕괴가 동반된 부의 불균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의 불균형이 심화된 결정적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지니계수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0.25로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0.3으로 심화된 후 계속 증가하다 최근 2년은 줄어든 모양새다.

    국가전략 모형의 부재 역시 성장률 하락에 일조했다. 1961년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91년 제6차 계획까지 나오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과 안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때 제7차 계획이 박제화된 뒤 시장에 성장의 조타수를 넘겨줬다. 지난해 작고한 경제전략 모형의 대가 강광하 서울대 교수는 “미성숙한 시장에 너무 일찍 주도권을 이전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진단한 바 있다. 장기적 안목이 부족하고 단기 성장에만 치중하는 시장에 모든 성장의 키를 넘기기에 앞서 공공부문이 미래성장 동력을 위한 투자를 수행했어야 하는데, 이런 역할에 공백이 생기면서 잠재성장률 제고 기능이 취약해졌다는 주장이다.

    ‘재기의 기회’

    그렇다면 성장잠재력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명확해진다. 우리 경제의 위험 부담(risk taking) 여력을 제고하고, 정부가 장기 전략을 제시하며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정부가 제시한 3가지 주요 국정운영과제-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창조경제-는 이러한 고민과 궤를 같이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게 하려면 재기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창조경제의 원형인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으로는 산학연계를 통한 우수한 인프라, 벤처 캐피털과 사모펀드(PEF)를 통한 활발한 자금 공급 등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그 근저에는 미국 사회의 최고 강점으로 꼽히는 재기의 기회(second chance)를 주는 문화가 있다.

    재기의 기회, 즉 패자부활전은 한 번 낙오된 주자가 다시 뛸 수 있게 함으로써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하고 위험 부담을 안도록 한다. 그런 면에서 복지 확대는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용해 경제 주체의 위험 부담 여력을 늘려줌으로써 창조경제의 틀을 정립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더불어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산업과 가계 부문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발판이 된다. 창조경제의 선결조건 중 하나가 경제민주화다. 대기업과의 갑을 관계, 인재 빼가기, 지적재산권 보호 장치 결여 등으로 개인이나 중소기업의 창의와 혁신이 대기업으로 무단 이전되는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세 가지 국정운영 과제는 상호 의존하고 있고, 상호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밀한 조율과 속도 조절이 요구된다.

    창조경제의 목표와 방향성은 우리 경제 문제의 핵심을 적시하고 있고, 여타 국정운용 원칙과 개념적으로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총론적인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여러 측면에서 취약점이 있다. 정책 자체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겨냥하고 있기에 모호하고 장기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도덕적 해이, 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한 디테일의 취약성, 계량목표의 부재, 주무부처의 전문성 부족,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치문화의 부재, 빈부격차 확대 등을 들 수 있다.

    玉石 가려낼 평가시스템 절실

    성장잠재력 회복 최후 카드 후진 정치문화에 좌초할라

    6월 20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 창조경제 포럼에 참석한 정홍원 국무총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한다는 것은 위험을 안고 투자하는 것이다. 즉, 창조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전반적인 위험 부담 여력을 증대해야 한다. 복지 확대를 통해 실패의 부담을 완화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것이 과도할 경우 위험을 전가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도덕적 해이는 2000년대 초반 미국을 강타한 IT 버블에서 이미 잘 드러났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0년 당시 코스닥지수가 지금 지수로 환산하면 2900이 넘었다. 지금 지수가 550선으로 당시와 비교해 80% 폭락한 수준이니 벤처 열풍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많던 벤처 중 현재까지 살아남아 중견기업 이상으로 성장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알맹이도 없는 아이디어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일반 투자자를 현혹하는 ‘먹튀’가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사업의 옥석(玉石)을 가려낼 수 있는 평가시스템이 자본시장에 구축돼야 한다. 즉 벤처캐피털이나 PEF 등 씨 뿌리는 자(seeder)들이 전문적인 식견으로 사업성을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전문성이 취약한 데다 그나마 전문성을 갖춘 곳도 그 분야가 협소하다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사업화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나라 자본시장 자체가 기능 면에서 선진화되지 못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질 경제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란 용어는 영국의 전략컨설턴트 존 호킨스가 2001년 출간한 ‘The Creative Economy’란 책에서 유래됐다. 그에 따르면 창조경제는 새로운 사고와 행위를 통해 제조업, 서비스 산업, 소매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역동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는 창조경제의 투입요소는 개인의 창의력이며, 특히 이를 새로운 방법으로 변환해 산업화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략이론이 그렇듯, 호킨스가 기술한 창조경제는 몇몇 성공사례를 소개하는 사례 연구에 기초하고 있다. 몇몇 사례적 증거(anecdotal evidence)를 통해 제시된 이론은 일반화의 오류와 함께 정밀한 이론의 결여로 인해 구체적인 시사점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역시 이 부분이 가장 험난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장기 전략의 특성상 내용이 거시적이고 추상적이다. 6월 발표한 6개 전략과 24개 추진 과제를 보더라도 상당 부분 추상적인 내용으로 일관돼 있다. 애초 창조경제의 주요 비판 대상이었던 모호성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거시적, 추상적, 임의적

    예를 들어 추진과제 1-1을 보자. ‘창의적 아이디어 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는 여전히 ‘어떻게?’라는 질문을 낳는다. 실제 24개 추진과제 하나하나가 모두 이러한 문제점에 노출돼 있다. 창의인재 육성방안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창의인재가 가져야 할 핵심역량 제고에 교육적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전략으로 이를 위해 11개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이번 추진과제는 보다 구체성을 띠고 있긴 하다. 가령 과학기술인재 진로지원센터 설치, 한국형 일·학습 듀얼시스템 도입 등이다. 다채로운 정책이 제시됐지만, 이런 세부 과제가 상위 전략과 어떤 연계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명확지 않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창의적 인재로 육성될 인센티브가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대학에 꼭 가야 하고 대학이 서열화해 있는 현실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학업 성적보다 창의적 활동에 집중할 학생이 있겠는가. 독일처럼 장인(마이스터)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립되지 않았고, 장인이 된다 해도 임원급으로는 승진하기 힘든 기업문화에서 누가 굳이 대학을 마다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장인을 꿈꾸겠는가.

    또한 ‘5년 안에 64만~65만 개의 일자리 창출’ 외에는 구체적인 수치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이 역시 세부과제와 전략에 따른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이 없다보니 추상적으로 급조한 숫자처럼 보인다. 어떤 분야에서, 또 어떤 직급에서 이러한 수치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지 그 경로가 제시돼 있지 않다. 반세기 전 수립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국민총생산 7.1%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농림어업, 광공업, 수출, 수입 등 분야별로 상세한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인구 증가율까지 예측해 계획 수립에 반영했다. 이에 반해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계량 목표는 임의적(ad-hoc)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구체적 목표가 결여된 전략은 표류하기 마련이다.

    창조경제는 국가운영 전략이다. 물론 시장친화적 정책이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운영주체는 정부다. 그런데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업계가, 그것도 사실 창조경제의 주요 대상이 아닌 재벌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먼저 움직이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재벌이 창조경제 나선다고?

    삼성은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통해 기초과학, 소재기술, ICT 융합형 창의과제에 10년간 1조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추진계획을 내놓았다. 현대차의 창조경제 프로젝트는 7조 원 규모의 친환경차량 기술 개발, 일자리창출 프로그램 등 투자 계획을 담았다. SK는 ICT 융합사업과 행복창업 프로그램 등에 3년간 1조2000억 원을 투자할 방침이고, LG도 LG사이언스 파크 설립 등으로 새 정부의 창조경제론에 화답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최근 조사 결과 54.4%가 “창조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뭔지도 모르면서 정부 눈치가 보이니 일단 판을 벌인 것인데, 원래의 투자안을 창조경제에 맞춰 각색한 인상이 짙다.

    그런데 기업들은 정작 정부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심지어 7월 말 제주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에 강연자로 나선 최문기 미래부 장관은 참석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최 장관은 미국 보스턴에 창업지원센터를 만들 계획을 설명하면서 또 구설에 올랐다. 보스턴에 벤처를 세울 의향이 있는 희망자를 국내에서 공모해 선정한 뒤, 보스턴에 보내 회사를 세우게 하고 정부가 국내에서 이 회사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이 펀드에 자금을 투입하고, 손실이 나면 정부 돈부터 소실되도록 해서 민간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것인데, 우려스러운 발상이다. 왜 미국에 회사를 설립하는데 한국의 세금으로 후순위채를 사주는가. 창조경제를 통해 우수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다 공염불인가. 이러한 우려 때문인지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을 교체했지만, 수석 하나 교체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진 않다.

    더불어 창조경제의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경제정책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어떻게 정책 조율을 할지, 즉 누가 마지막 결정권을 행사할지 정부 내 거버넌스도 명확하지 않다. 이런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래도 단기적으로 대응해야 할 경제 현안이 정책의 우선순위로 부상하고, 장기적으로 덜 시급한 창조경제 정책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창조경제는 성공한다고 해도 이번 정권 내에 과실을 맺기 힘들다. 5년이란 시간은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기에는 터무니없이 짧다. 따라서 다음 정권까지의 연속성을 담보로 정책이 집행돼야 하는데, 이는 현 여당이 다시 집권한다고 할지라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들어서는 정권마다 5년짜리 시한부 정책을 남발한다면 어떻게 경제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창조경제가 성공할 경우 부의 양극화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성공의 과실을 대부분 소수의 창업자와 벤처캐피털이 가져가고, 주로 전문직 고용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조업 및 서비스 산업과의 연계성을 제고해 창조경제 생태계의 외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제갈공명을 데려다놔도…

    필자는 진정 창조경제가 성공하길 원한다. 우리 경제의 추락을 막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창조경제 전략에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창조경제 자체의 문제점은 차치하고 그 어떠한 장기적 정책이든 뿌리를 내리기에 현재 우리 사회의 경제 토양이 너무나 척박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과제를 꾸준하게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정략적인 정치에 포획되어 있다.

    최근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를 바로잡으려면 거버넌스를 바꿔야 하며, 5년 단임 대통령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의 말처럼, 지금 우리 경제 환경은 제갈공명을 데려다놔도 옴짝달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창조경제 역시 첫걸음부터가 위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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