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호

해리포터가 계급투쟁하는 ‘사회참여 판타지’

봉준호의 ‘설국열차’

  • 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입력2013-08-22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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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8월 초 개봉했다. ‘설국열차’는 김지운 감독의 현대판 서부극 ‘라스트 스탠드’와 박찬욱 감독의 심리 스릴러 ‘스토커’처럼 한국의 유명 감독이 서구의 자본과 배우들을 기용해 작품을 완성한 사례다. 김지운과 박찬욱은 이전에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을 이미 만든 적이 있다. 그러나 봉준호는 ‘설국열차’ 이전엔 동화적 느낌의 판타지 공상과학영화를 제작하지 않았다.

    신화와 反자본주의 버무려

    ‘설국열차’는 순식간에 500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흥행 돌풍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상반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봉준호는 ‘괴물’ 등 이전 작품들에서 냉소적인 유머와 한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주제의식을 보여줬다. ‘설국열차’에서도 이를 기대한 관객은 실망했을 것이다. ‘봉준호 영화’에 대한 일정 수준의 기대치가 설정돼 있는데 ‘설국열차’가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확실히 여러 관객은 ‘설국열차’에서 실망과 함께 낯선 느낌을 가진 것 같다. 판타지 공상과학영화가 국내에선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반면 ‘해리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서양 판타지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은 ‘설국열차’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열차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인물들 간의 갈등에서 봉준호 특유의 비판의식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후자의 관점을 지지하는 편이다. ‘설국열차’는 ‘신화적 판타지’와 ‘반(反)자본주의 운동’을 버무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설정은 대강 이렇다. 가까운 미래에 79개국 정상들은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기온을 낮춰주는 화학약품인 CW-7을 살포한다. 그러나 그 부작용으로 2031년 지구는 빙하기에 접어든다. 이를 예상한 윌포드(에드 해리스)는 전 세계 43만8000km의 철로를 따라 매년 지구를 한 바퀴씩 도는 100칸 규모의 열차를 만들었다. 이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만이 생존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열차 꼬리칸의 자유석에 탄 가난한 승객들은 바퀴벌레를 갈아 만든 식량인 프로틴 블록을 배급받으러 점호를 받는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점호 중에 앞 칸인 감옥칸으로 갈 수 있는 시간을 잰다. 감옥칸엔 열차의 보안설계자인 남궁민수(송강호)가 투옥돼 있다. 죄명은 약물(크로놀) 중독. 커티스는 남궁민수를 설득해 계속 객차의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갈 계획이었다. 기차를 만든 윌포드를 만나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전진과 후진뿐인 動線

    해리포터가 계급투쟁하는 ‘사회참여 판타지’

    ‘설국열차’의 한 장면.

    커티스와 자유석 승객들은 실제로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고아성)를 만난다. 남궁민수와 요나는 객차의 문을 열 때마다 크로놀을 받는 조건으로 커티스의 요구를 수락한다. 그러나 물탱크칸 앞에서 커티스 일행은 열차의 2인자인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가 이끄는 진압부대와 대대적인 육박전을 벌이게 된다.

    설국열차는 구약성서 창세기 편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설국열차와 노아의 방주는 멸망의 위기에 나타난 유일한 구원수단이자 지극히 밀폐된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설국열차와 노아의 방주 사이엔 대비되는 점들도 있다.

    노아의 방주는 물 위에서 무계획적으로 표류한다. 반면 설국열차는 이미 정해진 전 지구적 순환노선을 달린다. 특정 시간에 특정 지점을 지난다. 승객들은 통과지점을 보면서 절기를 알 수 있다.

    노아의 방주와 설국열차 모두 밀폐된 공간이지만 노아의 방주가 상대적으로 훨씬 넓은 편이다. 사람과 동물을 최대한 많이 싣기 위해 3층 높이로 넉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윌포드의 열차는 좁은 철로 궤도에 맞춰 제작됐기에 높이와 폭에 큰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동선(動線)은 전진과 후진이라는 일차원적 움직임으로만 나타난다.

    이러한 일차원적 동선은 일등석, 일반석, 자유석으로 구분된 열차 내 계급의 위계에서 기존 신분 질서를 전복하려는 사회적 이동 양상을 그대로 담아낸다. 나아가 주요 등장인물 의식의 일차원성도 결정된다. 여기서 의식의 일차원성이란 전진과 머무름, 도전과 진압, 체제 개편과 유지 이외의 어떠한 대안도 생각하지 못하는 의식 상태를 의미한다.

    메이슨 총리는 자유석의 승객들에게 “각자 정해진 위치를 지키며 사는 것이 질서”라고 훈계한다. 메이슨의 부하들은 아들을 빼앗긴 것에 항의해 구두를 던진 앤드루(이안 브렘너)의 팔을 얼린 후 망치로 부숴버림으로써 체제 도전에 경고한다. 이에 대항해 커티스의 저항세력은 열차의 앞 칸으로 나아가 윌포드에게 삶의 개선을 요구하려 한다. 그러나 커티스 측은 이러한 요구 이상의 어떤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커티스 일행은 각 칸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간다. 각 칸은 각기 다른 기능을 지녔다. 커티스 일행이 남궁민수-요나 부녀와 함께 맨먼저 도착한 칸은 식량인 프로틴 블록을 만드는 공장이다. 그다음 은 물탱크칸이다. 여기서 커티스 일행은 메이슨 총리를 인질로 잡아 정원, 과수원, 수족관, 일본식당으로 진입한다. 이어 일등석 승객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교실로 들어간다.

    앞선 장면들이 전투와 액션을 위해 설정한 것이라면 교실 장면은 영화 클라이맥스 이전에 이 열차의 체제가 얼마나 괴이한지 보여주기 위해 제시한 것이다. 교실은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언급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축소판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국가는 군대나 경찰 등 물리력을 동원해 도전세력을 강제로 억누르는 ‘억압적 국가기구’, 그리고 사회구성원에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해 자발적으로 동의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통해 작동한다.

    교실은 백인 학생들에게 ‘자유칸 탑승자는 게으르고 더럽다’라는 인종·계급차별 의식을 주입한다. 또한 ‘윌포드는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빙하기를 대비해 기차를 만들었다’라는 지배층의 영웅신화를 들려준다.

    민중혁명의 모순

    학생들은 윌포드가 하사한 달걀을 받는다. 그런데 달걀을 나르는 수레 안에 숨겨놓은 기관총으로 교사는 커티스 일행을 공격한다. 달걀 수레를 끄는 하인 역시 자유석의 봉기세력을 진압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억압적 국가기구로 돌변하는 상황이다.

    커티스 일행은 교실칸에서 상당한 피해를 당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는 일등석 승객들을 지켜보면서 결국 윌포드가 탄 엔진칸 앞에 다다른다. 여기서 남궁민수는 빙하기가 곧 끝날 것임을 커티스에게 알려준다. 사제 폭탄으로 열차 문을 폭파해 열차 밖으로 나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커티스는 주저한다.

    커티스는 윌포드의 초대를 받아 그와 독대한다. 월포드는 커티스에게 ‘자유석 빈민들의 봉기가 사실은 빈민들의 대량 학살을 통한 열차 내 인구 조절의 명분으로 사전에 계획된 일’이라는 사실을 들려준다.

    윌포드는 커티스에게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을 제안한다. 커티스는 ‘기차 밖으로 탈출할 것이냐, 기차의 주인이 될 것이냐’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는 민중혁명이 민중 전체를 구원하지 못하며 오직 소수의 혁명 지도자를 새로운 기득권층으로 만들 뿐이라는 역사적 모순을 연상시킨다.

    커티스, 윌포드 그리고 메이슨 총리에 대비되는 인물은 남궁민수와 요나다. 커티스, 윌포드, 메이슨 총리는 열차의 일차원성에 얽매여 있는 데 비해 남궁민수와 요나는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열차 안에서 태어난 요나는 열차 밖의 세계를 알지 못하지만, 다음 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예지 능력을 갖고 있다. 열차의 보안설계를 맡은 남궁민수는 열차 밖의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통찰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는 눈이 녹는 것을 보면서 빙하기가 곧 끝날 것임을 감지한다. 열차라는 체제 자체가 필요 없게 됨을 알아차린다.

    해리포터가 계급투쟁하는 ‘사회참여 판타지’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 :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설국열차는 종말로부터 인류를 구한 구원의 공간이다. 동시에 계급갈등과 투쟁을 낳는 공간이다. 나아가 민중혁명의 모순이 잉태되는 공간이다.

    설국열차는 언젠가 효용가치를 다하는 한계적 체제이기도 하다. 열차에서 내린 이후 인류는 어떻게 될까. 여전히 계급투쟁과 혁명의 모순이 무한궤도처럼 반복되는 운명에 처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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