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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식 민정수석, 1987년 대선 개입한 안기부 특보팀 근무

박근혜 정권 민정라인 大해부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홍경식 민정수석, 1987년 대선 개입한 안기부 특보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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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식 민정수석, 1987년 대선 개입한 안기부 특보팀 근무

박철언 전 장관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공안검사 출신인 홍 수석은 검찰 내에서 까칠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그에게는 특이한 이력이 하나 있다. 전두환 대통령의 5공과 노태우 대통령의 6공을 잇는 시기(1987~88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는 이른바 ‘특보팀’이 있었다. 장세동·안무혁 안기부장을 보좌했던 팀이다. 이 팀은 당대 실세인 박철언 안기부 특보가 이끌었다고 해서 ‘박철언 팀’으로도 불렸다. 박철언 팀은 안기부 내 북한 파트, 국제 파트, 공산권 파트의 최고 엘리트는 물론이고 외무부·통일원·법무부·법제처·내무부·법원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를 차출했다. 그러다보니 나중엔 총 인원이 63명이나 됐다. 홍경식 수석의 언론 프로필에는 1987년 서울지검에 근무한 것으로 돼 있는데, 실제로는 강재섭 검사(전 한나라당 대표)가 참모장 노릇을 하던 안기부 특보팀에 차출됐다고 한다.

당시 홍 검사는 검찰 경력이 1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팀 내 쟁쟁한 멤버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고 한다. 이 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직 국정원 간부 B씨는 “홍경식 검사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말이 적고 무게감이 있었다. 한번 뱉은 말은 절대 주워 담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그는 또 “팀을 이끌던 박철언 전 의원도 깐깐하기로 유명한데, 서울대 법대 후배이기도 한 홍경식 검사가 한번 고집을 부리면 절대 못 꺾더라”고 귀띔했다. 홍 수석은 검찰 내부에서도 ‘홍 주사’ ‘홍 반장’으로 통했다. ‘홍 주사’는 융통성이 없을 정도로 깐깐하다고 해서, ‘홍 반장’은 조직의 군기를 잘 잡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박철언 전 의원은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서 “(박철언 팀은) 제5공화국에서는 남북 비밀회담을 실무적으로 보좌했고, 6·29선언을 기초했으며, 1987년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데에도 적극 기여했다”고 술회했다. 이 책은 안기부 박철언 팀 멤버 63명의 실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 홍경식 수석의 이름도 들어 있다. 확인 결과, 동명이인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홍 수석은 초년 검사 시절에 남북 간의 물밑 접촉을 체험했고, 정치의 이면을 들여다봤으며, 대선까지 간접 경험한 셈이다. 그런데 안기부 특보팀이 대선 승리에 적극 기여했다는 점은, 요즘의 정치 윤리 기준으로는 ‘대선 개입’ 내지 ‘대선 공작’으로 비칠 수 있다. 현재 정국 최대 이슈인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근혜는 국정원 사태 피해자”



역대 정권에서 국정원 요직을 두루 거친 C씨는 “대선 때마다 국정원이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지난해 대선에선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안다. 원세훈 전 원장은 워낙 간이 작아 주도적으로 선거공작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못 된다”고 말했다.

전직 국정원 간부 B씨도 “이번 국정원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수백만 표 차이로 넉넉하게 이길 것으로 파악했지만,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중도층이 이탈해 109만 표 차이로 신승(辛勝)했다는 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국정원, 검찰 등 주요 사정기관과 현안을 조율한다. 역학관계로 보면 사실상 감독하고 조정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참여연대는 지난 6월 발간한 ‘이명박 정부 5년 검찰보고서’에서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을 통해 한동안 검찰을 정치적으로 통제해왔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4명 중 3명은 고검장 이상의 고위직 출신으로 같은 시기에 재임한 검찰총장들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았다.

참여연대는 “실제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나 내곡동 사저 불법매입 수사 등 정권 후반기에 터진 주요 사건 수사에서 검찰의 성과는 미미했는데, 검찰에 대한 청와대의 영향력이 계속 유지됐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민정수석실은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청와대 직원을 포함한 공직사회의 기강을 감찰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D씨는 “한번은 청와대 경호실장과 민정수석실 팀장급 직원이 말다툼을 벌였다. 직급이 한참 낮은 민정 팀장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을 보고 민정수석실 파워를 실감했다”고 전했다.

민정수석실은 정부 요직 인사 때 인사검증을 맡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도 큰 편이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에는 민정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실, 법무비서관실, 민원비서관실이 있다. 직원 수는 70여 명으로 9개 수석실 중 가장 많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에 비하면 규모가 줄었다. 당시엔 5개 비서관실(민정1·민정2·법무·치안·민원제도개선)과 감사팀이 있었고 인원도 100명이 넘었다.

40명 안팎으로 구성된 박근혜 정부 민정비서관실은 여론수렴과 사정(司正) 업무를 맡고 있다. 사정 업무는 검찰과의 연결고리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민정1비서관실이 여론수렴과 친인척 관리를, 민정2비서관실이 사정 업무를 담당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통합됐다. 박근혜 정부 민정비서관실에는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10명이 별도로 활동하고 있다.

공직기강비서관실 파워

막강한 권한을 갖는 민정수석실 안에서도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국정 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서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 요직에 대한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곳인 까닭이다. 인사가 실패하면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 간다. 이 경우 후보자를 물색하거나 추천한 쪽이 문책을 당하기보다는 민정수석실이 책임을 떠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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