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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가 만난 작가 Ⅱ

“나를 벼랑 끝에 내몰고 쓴다”

‘28’로 독서계 소설 돌풍 정유정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나를 벼랑 끝에 내몰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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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지옥

▼ 마음속에 어떤 지옥이 있기에….

“어두운 기억이다. 2남2녀 중 장녀인데, 20대 때 가장 노릇을 하느라 내 인생을 살 수 없었다. 동생 셋이 대학을 다니고 엄마가 아파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는데 엄마에게 기대 사는 분이었다. 양말 한 짝도 여자가 챙겨줘야 했다. 친구들과 커피 한잔을 편히 마실 수 없었다. 엄마 아팠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돌아가신 후부터 결혼 전까지도 친구들과 영화 한 편을 못 봤다. 남들 놀러 다닐 때 아버지 밥 걱정을 해야 하는 그런 세월을 보냈다. 또 엄마가 3년간이나 병원생활을 하다 돌아가신 후 빚 갚느라 정신이 없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 시절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다. 한편으론 그 시절이 있었기에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강해졌고, 소설을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두운 시절을 어떤 생각으로 견뎠는지 아니까. 모욕적인 순간도 많았는데 잘 참아냈다.”

▼ 엇나갔을 법도 한데.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덕에 엇나가진 않았다. 보통 엄마들이 아들을 예뻐하는데 우리 엄마는 4남매 중에서 내게 60을 주고 나머지 40을 나머지 세 아이에게 나눠줬다. 그런 엄마를 잃은 충격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엄마의 죽음이 내 일생 최대의 상처다. 누르면 바로 터지는 부분이다. 지금도 엄마 산소에 가면 목이 터져라 쉴 때까지 울고 그런다. 그런 부분들이 문학을 하는 힘이 된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 책에선 모녀의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없다. 엄마 이야기를 하면 신파가 될 것 같아서, 완전히 무너질 수 있어서 책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글 쓸 때 견지하는 것도 냉정한 태도, 덤덤한 시각이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28’도 일부러 3인칭 다중 시점으로 썼다. 각각이 주인공인 시점이다. 관찰자 시점은 잘 안 쓴다. 전지적 작가 시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주인공 시점을 좋아한다. ‘내 심장을 쏴라’(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 같은 경우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이야기라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어울린다. 근데 ‘7년의 밤’이나 ‘28’은 여러 명의 이야기라 1인칭 시점을 쓸 수 없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쓰면 독자와 인물이 교감하는 통로를 작가가 막는다. 근데 3인칭 다중 시점은 각자가 다 주인공인 시점이라서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초고 90% 버려야”

▼ 왜 그렇게 주인공을 여럿 뒀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7년의 밤’까지는 소설을 단일 플롯으로 갔다. 하나의 커다란 줄기에 여러 사람을 투입해 한 덩어리의 큰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28’에는 보조 플롯 6개를 만들었다. 이 보조 플롯들을 천을 짜듯이 엮어서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었다. 구조를 하나하나 보여주고 싶어 그런 방식을 택했다. 동물이 화를 당하면 인간도 화를 당하고 결국 우리는 공멸한다.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작가 시점에서 전체를 쓰면 일방적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을 열어줬다. 그 사람의 플롯에 각자의 인생을 부여해 엮는 방식으로 간 거다. 흔치 않은 시점이고 작업하기가 까다롭지만 독자는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각자의 처지에서 감정을 이입해보면 이해하기도 쉽고 한결 입체적인 상상이 가능하다.”

▼ 캐릭터를 미리 정하고 글을 쓰나.

“가장 먼저 세팅하는 건 인물이 아닌 공간이다. 맨 처음 짜놓은 대략의 얼개가 커갈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7년의 밤’도 세령호라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뭐가 있는지 숙지한 후에 인물을 배치해 놀렸다. 이번엔 화양을 만들었다. 스케치북에 지도를 그려서 완전히 머리에 익힌 다음 시놉시스의 이야기를 끌어갈 인물을 세팅한다. 어떤 직업을 가진 어떤 연령대의 사람이 필요하겠다는 정도로. 그때까지도 캐릭터 설정은 안 돼 있다. 인물의 카탈로그만 있다. 한기준 하면 키가 큰 30대 후반 남자 하는 식으로. 인물 세팅 후엔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해 초고를 쓴다. 처음엔 내가 좀 굴려주지만 한두 장 지나면 자기들끼리 각자 성격대로 선택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초고 땐 전력질주를 하는 편이다. 초고를 보통 2000매씩 쓰는데 ‘28’의 경우 초고 2500매를 한 달 반 만에 썼다. 그게 맘에 안 들어서 지리산에 들어가 다시 쓴 초고가 1900매쯤 된다. 초고를 쓴 다음에 이야기가 감이 잡히면 전문가를 취재해서 수정에 들어간다. 수정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린다.”

▼ 그렇게 오래 수정하는 까닭은.

“난 초고의 10% 이상이 남아 있으면 실패라고 본다. 10% 이하만 남기고 다 날린다. 초고는 천재가 아닌 이상 대개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 속 잔상인 경우가 많다. 그런 기억들을 걷어내야만 내 글이 되는 거다. 소설 하나를 쓰는 데 2년 이상 걸리는 이유다.”

‘28’ 역시 완성하기까지 꼬박 2년 3개월이 걸렸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군더더기를 빼고 디테일을 살린 덕에 독자는 ‘술술 읽히는’ 기쁨을 맛본다.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정도의 흡인력과 생동감 넘치는 탄탄한 구성을 칭찬하는 서평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문단 일각에서는 “대중성이 강한 반면 문학성은 약하다”고 흠을 잡는다. 정 작가도 이런 비판이 달갑지만은 않을 터. 그는 “욕먹어도 초연한 사람은 못 된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나를 벼랑 끝에 내몰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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