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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북한

‘빨치산 DNA’ 계승 3代째 요직 싹쓸이

北 ‘김씨 왕조’ 전위대 만경대혁명학원

  • 김옥자 │북한학 박사, 서울 압구정초등학교 교사 give1111@daum.net

‘빨치산 DNA’ 계승 3代째 요직 싹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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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 이어 무한충성

만경대혁명학원은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군사기술 교육기관으로서의 비중이 커져 군 간부 양성과 군사 분야 기술전문가 양성 기능을 겸하게 됐다. 현재의 만경대혁명학원은 항일 빨치산 유자녀 양육기관으로서 가지는 항일 혁명전통 계승의 상징성을 유지하면서 학생들에게 당 정책교양과 충실성교양, 혁명전통교양으로 구성되는 정치사상교양과 전문적인 군사교육을 실시해 군사 분야 핵심 간부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도록 했고, 당과 수령에게 충성을 다하는 ‘수령 결사옹위’의 전위대 노릇을 하도록 했다.

김정일의 후계자 계승 과정에서 그의 측근이 돼 김정일 체제를 공고화하는 지지세력 역할을 한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 핵심 간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진 사회주의 국가에서 유학하고 온 기술전문직 인재였다는 이유도 있지만, 김일성 체제의 정통성과 김정일 체제의 정당성을 항일혁명전통을 계승함에 두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핵심 간부 등용의 기준으로 항일 빨치산 유자녀 신분보다 더 확실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의 대표적인 졸업생으로는 1960년대 북한의 정치·경제·군사 등의 분야에서 기술전문직 인재로 활동했고,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준비하던 1970년대에 김정일의 측근으로 활동한 후 1980년대 김정일 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중요 부서의 핵심 간부로 자리매김한 연형묵(정무원 총리), 강성산(정무원 부총리), 최영림(내각총리), 김국태(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장), 계응태(부총리 겸 경공업위원장), 전병호(당중앙위원회 부장, 내각 정치국장), 최태복, 한성룡 등이 있다.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당중앙위원회 위원 145명 중 김정일, 김환, 오극렬, 계응태를 비롯한 32명(약 22%)이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었다. 당시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 대거 등장한 배경으로는 항일 빨치산 세대의 자연수명이 한계에 다다른 시기였다는 점, 정치적으로는 김일성 권력이 공고해진 데 비해 경제발전이 지체되는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그동안 김일성 체제를 옹호해온 항일 빨치산 출신을 계승하는 인적 충원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불안한 대외적 외교 상황과 경제난 해결을 위해 북한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실무형 지도자를 더 많이 요구했던 것이다.



‘선군정치’ 때도 막강한 힘 발휘

이런 배경 아래 실행된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자들의 간부 등용은 항일 빨치산 혈통을 가진 이들에게 혁명전통을 계승할 기회를 제공했으며, 그럼으로써 김정일 권력세습의 견인차 구실을 하게 됐다.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출된 124명의 당중앙위원회 위원 중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은 약 14%로 확인됐다.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중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자 비율은 25~50%였고, 당중앙위원회 비서국 구성원 중에선 1980년 10월 40%, 1994년 12월 45%, 2000년 12월 67%, 2010년 8월 80%였다.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은 당 기구뿐만 아니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와 군 관련 각 기구에서도 핵심 간부로 포진해왔다. 김정일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를 보면서 당이 군대를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하면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후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체제 유지에 위기의식을 감지하고 선군(先軍)정치와 함께 군을 비롯한 주요 기관의 핵심 간부 자리에 그의 측근들을 전진 배치했다. 1954년부터 군사학원의 성향을 갖고 1962년부터 군사 분야 간부들을 양성해온 만경대혁명학원은 현재 40~60대 이상의 연령에 해당하는 인민군 간부들을 배출했고, 이들 핵심 군 간부가 김정일 선군정치의 인적 토대가 됐다.

북한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군 관련 정책결정기관인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중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은 1980년 제6차 당대회 때 19명의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중 6명인 약 32%, 1994년 12월엔 약 36%,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는 약 21%였다. 지난해 4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중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자는 약 26%였는데 총참모장 리영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당 비서 최용해, 당 행정부장 장성택이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다. 국방위원회 위원들 중 만경대혁명학원 출신 비율은 1990년에는 50%였으나, 1996년에는 약 57%, 2003년에는 89%, 2005년에는 7명 전원인 100%, 2010년에는 77%였다. 1990년 이후 국방위원회 위원 중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은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100%였다. 흥미로운 것은 2005년 국방위원회 위원은 전원이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고, 1990년과 1996년에는 국방위원회 위원 중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자를 제외한 나머지 위원이 모두 국가 수립에 기여한 자들을 포함한 항일 빨치산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항일혁명전통의 상징

만경대혁명학원은 유자녀 교육기관, 정치사상교양 시범기관, 핵심 간부 양성기관으로서 교육적 차원의 의미와 역할과 함께 항일혁명전통의 상징, 항일 빨치산 세력의 재생산과 확대, 김정일 후계자 계승 및 선군정치 기반 세력 형성 등의 정치군사적 차원의 의미를 지녔다.

국민이 체제에 순응하도록 정치적 지지를 유도하거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 상징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만경대혁명학원과 그 출신자들은 항일혁명전통의 상징으로 작용해 북한 주민을 조직·동원하고 선동하기 위한 최상의 선전도구이자 사회통합의 기제로 활용됐다. 항일 혁명가 유자녀를 모집해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양육함으로써 일제 식민통치에서의 수난과 이에 맞선 항일투쟁 등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과 김정은이 그들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강조해온 항일혁명전통의 상징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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