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외국인 의료관광객 4만 명 유치 기대
- 불법 퇴폐업소 철퇴 내린 여성 구청장 ‘뚝심’
- 서울시 2000억 원 지방채 발행하면 결국 시민 부담
- 換地 방식 구룡마을 개발, 투기세력에 이익 몰아줘
올해 초 (사)산업정책연구원이 평가한 강남구 브랜드의 자산가치는 149조 7000억 원. 전체 서울 면적의 6% 남짓을 차지하는 강남이 서울 브랜드 가치(384조 5000억 원)의 40%에 육박하는 것이다.
‘강남 기업’ 프리미엄 15.7%
‘글로벌 강남’을 이끌고 있는 신연희(65) 강남구청장을 9월 9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2010년 취임 당시 강남구 최초의 여성 구청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지난 3년간 많은 일을 해냈다. 기초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의료관광 활성화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외국인 환자 유치에 적극 나섰고, 국내외 280여 개 기업을 강남에 유치하는 한편, 강남구 통상촉진단 운영과 박람회 등으로 164개 관내 중소기업에서 1억 달러 이상의 수출 성과를 이뤄냈다.
지난해 착공한 세곡동 행복병원은 현재 삼성서울병원에만 있는 수치료기(물의 부력과 수압을 이용한 관절·근육 치료기)까지 갖춘 서울시 최초의 구립 노인전문병원으로, 보기 드문 BTL(Build-Transfer-Lease·민간이 공공시설을 짓고 정부가 임차해 쓰는 방식) 사업의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이밖에 수서역의 수도권 KTX 출발역 및 도착역 확정, 위례~신사 간 도시철도의 학여울역 경유 확정, 불법 퇴폐업소 퇴출 및 성매매 전단지 일소 등도 신 구청장 특유의 뚝심으로 이뤄낸 성과다.
요즘 같은 경기불황에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각 지방정부도 경제활성화가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강남구도 마찬가지로, 신 구청장은 공격적인 기업 유치 및 수출 독려 활동에 주력하며 ‘기업하기 좋은 글로벌 비즈니스 도시’로서의 강남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 신 구청장 취임 이후 강남구가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거나 통상촉진단을 파견한 횟수는 20차례. 이를 통해 1억 달러 이상의 제품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연매출 2000억 원의 중견기업 랄프로렌코리아, 직원 2000여 명 규모의 (주)이에프씨, LG전자 강남R·D센터 등 우수기업 유치 실적도 눈에 띈다. 신 구청장은 “특히 강남에 입주한 기업이 얻는 브랜드 프리미엄이 타 자치구 대비 15.7%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 고무적”이라며 “이런 평가 결과를 적극 활용해 앞으로도 기업 유치 등 경제활성화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가 경제활성화의 또 다른 큰 축으로 삼은 것은 의료관광 육성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강남은 의료시설의 메카다. 삼성서울병원 등 5개 종합병원을 비롯해 성형, 피부, 한방 등 서울시 의료기관의 6분의 1이 강남에 집중해 있다. 이런 특장점을 더욱 잘 살려내기 위해 지난 7월 강남구는 의료관광 패키지 상품 ‘리본(Re-Born)’을 출시했다. 최근 3년간 강남구의 외국인 의료관광객 수가 해마다 25% 이상 증가해 한국 전체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강남을 의료관광 대표도시로 육성하겠다는 포부에서다. 강남구는 올해 외국인 의료관광객 4만 명 유치 목표를 달성하고 5년 내 연간 10만 명 유치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리본은 구청에서 보증하는 상품이다 보니 외국인들이 ‘불법 시술이나 불법 브로커 등의 피해를 보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4개 언어로 지원되는 홈페이지와 일본 아메블로 같은 해외 유명 블로그 등을 통해 리본을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얼마 전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강남메디컬투어센터도 개관했는데, 봉은사나 코엑스 등과 연계한 투어 프로그램도 발굴할 겁니다.”
‘부자동네’의 그림자
강남 하면 곧 ‘부자동네’를 떠올리기 쉽지만, 강남구 세수는 서울시의 재산세 공동과세 도입과 재산세율 인하, 취득세 감면조치 등으로 2009년 7015억 원에서 올해 5437억 원으로 4년 사이 1600억 원가량 줄었다. 이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2007년 87.6%에서 지난해 80.5%로 하락 추세에 있다. 세수는 줄어드는데 무상보육 등 매년 급증하는 복지예산으로 세출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신 구청장은 취임하자마자 불필요한 세출예산을 대폭 줄이는 한편 다양한 세원 발굴 등의 노력으로 이런 위기에 대처해왔다. 문화센터 강좌 통폐합에 주민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관내 문화센터 앞에 직접 쓴 ‘서한문’을 붙여 주민들의 이해를 구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강남구청 소속 배드민턴팀을 폐지하면서 뒤로는 스포츠용품업체 요넥스에 팀 인수를 제안한 것도 신 구청장. 배드민턴 감독은 이 사실을 최근에야 알고 감사 인사를 왔다고 한다.
신 구청장은 예산 관련 불합리를 바로잡기 위해 할 소리,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요즘 서울시는 “서울시에 대한 무상보육 국비 분담률을 현행 20%에서 40%로 높이라”고 강하게 주문하고 있는데, 신 구청장은 서울시 25명의 구청장 중 유일하게 “서울시 역시 무상보육 추경 편성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 서울시가 무상보육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2000억 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하기로 한 것에 대해 그는 “결국 시민의 부채로 남는 것”이라며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데도 지방채를 발행하다니…. 서울시 예산이 얼마나 방만하게 운영되는지 이번 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업무추진비를 20% 깎겠다고 했는데, 우린 이미 작년에 30%를 깎았고 올해는 40%를 깎았습니다.”
강남구는 자동차세 및 재산세 과세특례분을 자치구세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신 구청장은 “특히 과세특례분은 지방정부 중 유일하게 서울시만 시세로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25개 자치구가 이 세수를 똑같이 나눌 것을 제안하는데, 그러면 구마다 매년 230억 원이 확보된다”고 말했다.
세수가 감소 추세에 있다 해도 신 구청장이 ‘축소행정’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취임 이후 공공보육시설 12개를 포함해 총 66개의 어린이집을 확충했고, 9월부터 손자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월 최대 24만 원까지 양육수당을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강남구 출산율이 0.88로 전국 최하위거든요. 조부모 양육수당 지급이 맞벌이 가정의 자녀 양육부담을 경감해주고, 중장년층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나아가 아동의 정서 안정과 인성 교육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필요한 예산은 어떻게든 마련해야지요. 더 절약할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절약할 거고요.”
“구청장이 市에 끌려다녀서야…”
강남 아파트는 1970, 80년대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으로 대량 공급됐다. 이 때문에 개포동과 압구정동 등에 재개발이 시급한 낡은 아파트단지가 많다. 1990년대 후반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강남 재건축은 최근에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11년 6월 최고 35층, 4만1000여 가구로 지구단위계획이 고시된 개포동의 32개 단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조합을 설립하며 재건축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신 구청장은 “재건축으로 주택 부족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나면 인가 시기를 조정해 전세난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재건축과 달리,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 개발은 답보 상태에 놓였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당초 100% 공영개발 계획에서 일부 환지(換地) 방식으로 변경된 탓이다. 환지 방식이란 토지주에게 수용되는 토지에 대한 보상금 일부를 돈 대신 개발구역 내 땅으로 지급함으로써 일부 민자개발을 허용하는 것. 신 구청장은 “서울시는 환지 결정권자인 구청장과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환지 방식을 결정했다”며 “이는 일부 투기세력에게 막대한 개발이익을 헌납하는 셈이라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 시장은 토지를 100% 수용하려면 몇 천 억이 필요해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SH공사의 계획안을 보면, 토지를 100% 수용한 뒤 택지를 조성해 분양하면 4000억 원대의 잉여자금이 생겨 임대아파트와 도로 등 공공시설을 건립하고도 SH공사의 부채 탕감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까지 도출됩니다.”
신 구청장은 “서울시가 환지 방식을 계속 고집하면 구룡마을 주민들은 세곡동 등에 새로 짓는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하고 구룡마을은 녹지 공간 그대로 보존할 각오”라고도 했다. 아무리 선출직이라지만, 상급기관의 눈치를 너무 안 보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시(市)에 끌려 다니는 구청장이라면 차라리 집에 있어야지…”라고 일갈했다.
‘선정성 전단지가 사라지면서 테헤란로 밤거리가 깨끗해졌다’ ‘역삼동, 논현동 유흥업소 주변 미용실, 세탁소 등이 영업에 타격을 입고 울상’…. 요즘 달라진 강남의 밤 문화가 화제다. 강남구청의 ‘성매매 업소 척결’ ‘불법 선정성 전단지 일소’ 성공 노하우가 각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오르내리면서 전국 사업으로 확대될 예정에도 있다. 그 시작은 지난해 7월 결성한 불법퇴폐행위전담 태스크포스(TF)팀. 신 구청장은 각종 민원에 모르쇠로 일관하기 위해 TF팀에 “어디로 단속 나가는지 보고하지 말고, 조치를 다 취한 후에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TF팀은 검찰로부터 특별사법경찰관 지명을 받았고, 단속 대상으로 간주된 영업장을 건축과, 세무과, 위생과에 통보해 행정처벌하게 하고, 필요하면 검찰 송치까지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2011년 769개에 달했던 유흥주점과 단란주점이 2012년 말 681개로 10% 이상 줄었다. 선정성 전단지에 적힌 휴대전화 번호 162개에 대해 강제 사용정지를 했고, 지난 7, 8월에는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음란 전단지를 배포한 퇴폐업소 10곳에 대해 영업시설물 철거까지 단행했다.
신 구청장의 불법 행위에 대한 단호한 대처 의지는 R호텔과 강남구청 간의 지난했던 ‘전쟁’에서도 읽힌다(신동아 2013년 3월호 ‘강남구청 vs R호텔 5년 전쟁’ 참조). 2009년 R호텔의 불법 퇴폐영업 적발에서 시작된 이 싸움은 강남구청의 승리로 마무리돼가는 듯 보인다.
“결국 호텔 측이 호텔 내 유흥주점과 단란주점을 다 내보내고 1만 명 규모의 K팝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말 이렇게 하는지 앞으로도 지켜봐야지요. 또 이번 일로 영업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재판이 대법원까지 3년 이상 걸린다는 점이 행정에서 큰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절감했어요. 6개월 내에 신속하게 결과가 나오도록 관련 법 개정에도 적극 나설 예정입니다.”
正明不滯, 不狂不及
싸이의 ‘강남스타일’ 히트 이후 신 구청장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달라진 강남구의 위상을 체감한다. 즉석에서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외국인들과 쉽게 친해지기도 하고, “강남스타일이 대체 뭐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고. 그는 “지난 5월 태국, 인도와의 교역 상담에서 화장품, 주얼리, 원단, 의약품 등 관내 기업들이 총 2600만 달러(약 280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강남스타일’ 덕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연희 스타일’은 뭘까. 그는 3개의 사자성어를 들었다. 정명불체(正明不滯·정직하고 투명하면 일에 막힘이 없다),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친 듯 일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 신상필벌(信賞必罰·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묻는다).
“완벽한 행정은 신뢰와 원칙을 바탕으로 구민 모두가 만족을 느낄 때 완성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늘 유념했기에 그간 많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민선 3기인 신 구청장의 임기는 이제 1년 남짓 남았다. 그는 “앞으로 경제활성화에 기여하는 사업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높아진 강남의 위상을 최대한 활용해 지역 상권을 살리고 우수기업을 유치하는 것과 압구정동 관광정보센터 및 메디컬투어센터 활성화를 통한 관광 활성화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삼성동 한국전력 이전 부지 일대와 학여울역 SETEC 부지 등을 국제 업무·문화복합도시로 만들고, 강남 문화 선진화를 위해 불법 광고물과 불법 주정차 등을 일소해야죠. 여전히 할 일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