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러 라이브’는 상당 부분이 배우 하정우의 클로즈업 샷과 미디엄 샷으로 구성된 실질적인 ‘일인극(一人劇)’이다. 매스컴의 특성과 내부 속성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SNC 방송국의 9시 뉴스를 진행하던 유명 앵커 윤영화(하정우). 같은 회사 기자인 아내 이지수(김소진)와 이혼하고 앵커 자리에서도 밀려나 ‘윤영화의 데일리 토픽’이라는 오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을 맡은 지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조세 개혁 문제를 놓고 청취자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창신동 거주 일용노동자인 박노규라는 청취자와 통화한다. 그런데 박노규는 조세 개혁과 상관없이 전기세 과다 청구에 대해 불평한다.
그의 의견이 토론 주제와 상관없다고 생각한 윤영화는 전화를 끊고 다른 청취자와 대화하려고 하는데, 박노규의 전화는 끊어지지 않고 박노규는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무시하는 윤영화와 설전을 벌이다가 “폭탄이 있다. 곧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고 말한다.
4각 관계 속 음모
이를 장난전화로 여긴 윤영화는 욕을 하며 “폭파해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다시 끊는다. 곧이어 윤영화와 라디오 스태프는 창가 너머 마포대교에서 폭발이 일어나서 다리가 끊기는 장면을 목격한다.
윤영화는 이를 경찰에 신고하려 하다가 이내 자기가 독점 취재할 수 있음을 깨닫고는 신고하는 대신 예전 상사인 차대은 부장(이경영)에게 연락한다. 어어 라디오 부스에 텔레비전 뉴스룸을 설치한 후, 마포대교 폭발을 테러로 규정하고 박노규와 텔레비전 독점 인터뷰를 진행하려 한다.
윤영화와 차대은은 박노규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마지막에는 설득해 자수하게끔 유도하는 감동의 휴먼 스토리를 연출해내려 한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박노규는 독점 인터뷰로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윤영화에게 21억 원 이상의 거액을 요구한다.
이때 차대은이 윤영화 대신 박노규에게 송금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박노규는 마포대교 확장공사 때부터 일해왔다면서 2010년 세계정상회의에 맞춰 마포대교 확장공사를 하다 사고로 죽은 동료들 얘기를 꺼내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다.
이 순간부터 차대은과 윤영화는 뉴스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윤영화는 박노규의 제안이 터무니없다고 하지만, 박노규는 국회에서 연설을 마친 대통령이 바로 방송국에 올 수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 사과할 것을 계속 요구한다.
곧이어 경찰 테러 대책반장 박정민(전혜진)이 나타나 뉴스가 진행되는 동안 통화를 계속해서 박노규의 위치를 추적하려 한다. 이 순간부터 시청률을 올리려는 방송국, 방송을 이용해서 박노규를 잡으려는 경찰, 테러리스트의 사과 요구에 응하지 않으려는 청와대가 4각 관계 속에서 각자의 음모를 진행한다. 그 중심에 있는 윤영화는 박노규가 그의 이어폰에 설치한 폭탄을 낀 상태여서 뉴스를 통제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최근 들어 그 수는 많지 않지만 매스컴이나 매스컴 종사자를 다룬 한국 영화가 간간이 제작되고 있다. 범죄 수사 과정을 생방송 토론과 실시간 중계한다고 설정한 ‘박수칠 때 떠나라’(장진, 2005),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여성 진행자와 그에게 집착하는 연쇄 살인마의 대결을 다룬 ‘심야의 FM’(김상만, 2010), 한때 스타였으나 퇴물이 되어 지방 라디오 프로그램 DJ가 된 남성의 이야기를 그린 ‘라디오 스타’(이준익, 2006), 그 여성판인 로맨스 영화 ‘원더풀 라디오’(권칠인, 2011), 조작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신문기자의 활약상을 그린 ‘모비딕’(박인제, 2011), 공소시효가 지난 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서전을 쓰고 텔레비전에 나와 스타가 되는 ‘내가 살인범이다’(정병길, 2012) 같은 영화들이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매스컴을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왔다. 특종기사를 써내려는 편집장과 일선 기자의 갈등을 다룬 ‘프런트 페이지(Front page)’(루이스 마일스톤, 1931), 탐사보도의 전형적 사례인 워터게이트 사건 취재 과정을 소개하는‘대통령의 음모’(앨런 J. 파큘라, 1976), 시청률 지상주의와 선정주의를 다룬 ‘네트워크’ (시드니 루멧, 1976) 같은 작품도 있다.
‘더 테러라이브’의 한 장면.
매스컴의 미덕 혹은 부패
미국 일리노이대 매튜 어얼리치 교수는 이런 영화들을 ‘저널리즘 무비’라고 지칭하면서 하나의 장르로 파악한다. 저널리즘 무비는 주로 언론인의 활동을 중심에 놓고 저널리즘이 지켜야 하는 미덕(객관주의, 진실 보도, 불편부당성, 권력에 대한 감시, 프로페셔널리즘)을 소재로 그 미덕이 발휘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도덕적 딜레마가 발생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대통령의 음모’는 미덕인 진실 보도를 통해 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영웅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네트워크’는 미디어 조직의 부패상을 보도하려는 뉴스 앵커가 제거되어 이상이 좌절되는 실패담을 그린다. 이 경우 매스컴은 부패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부패 권력이 되고, 그 종사자는 저널리즘의 미덕 대신 시청률이나 경력 관리에 관심을 두는 기회주의자가 된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도 차대은은 박노규와의 독점 인터뷰를 계기로 시청률을 높이려 하고, 윤영화는 9시뉴스 앵커에 복귀하려는 사욕을 갖고 있기에 진실 보도보다는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는 윤영화의 영웅담으로 만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박노규는 마포대교 폭파 테러를 통해 미디어의 주목을 끌어 확장공사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과 사과를 받아내려 한다. 윤영화는 박노규에게 평화적인 호소를 권하지만, 박노규는 폭력을 쓰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며 반박한다. 박노규는 충격적인 사건일수록 뉴스 가치가 상승하는 언론의 속성을 잘 아는 셈이다.
오히려 박노규의 입을 통해 ‘언론이 국가와 힘 있는 이들의 입장을 주로 대변하는가, 아니면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순간엔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미디어의 위선을 비판한다.
윤영화가 마포대교 폭발을 테러라고 처음 지칭한 후부터 모든 방송국의 뉴스 앵커들은 박노규를 테러범이라고 부른다. 언론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자 정부가 박노규의 대통령 사과에 응하는 것은 테러범의 요구에 응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상황이 전개될수록 윤영화는 대통령의 사과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보도한다. 차대은은 윤영화가 금품을 수수한 적이 있다는 정보를 경쟁 방송국에 흘림으로써 언론인으로서 윤영화의 공신력을 잃게 만든다. 그로 인해 윤영화는 박노규의 신뢰도 잃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린다. 결국 윤영화는 방송국과 정부로부터 모두 버림받는다. 복직 기회를 잃은 후에야 윤영화는 박노규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의 행동을 대신하게 된다.
한편 약자에 대한 책임의식을 보여주는 것은 윤영화와 이혼한 기자 이지수다. 첫 폭발 후 이지수는 마포대교로 급파되는데, 다른 쪽에서 2차 폭발이 발생하자 상판 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립된다. 상판이 붕괴될 위험에 처하자 이지수는 현장중계 상황에서 박노규에게 여자와 어린이만이라도 구조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다.
미디어, 그리고 소외된 시민
영화 속에서 이지수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가 보여준 저널리즘의 ‘친(親)시민주의’는 차대은과 윤영화가 보여준 저널리즘의 기회주의, 객관 보도를 내세운 저널리즘의 냉정함과 대비된다. 또한 시민에 대한 경찰과 정부의 고압적인 태도와도 차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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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는 정치 스릴러 형태를 띤 저널리즘 무비로 보는 내내 관객에게 복잡한 감정의 기복을 겪게 한다. 라디오 토크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약자에 대한 동정 및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공감과 동일시, 테러 사건으로 야기된 공포감, 무능하면서 거만한 정부와 미디어 조직에 대한 분노, 이들에 대한 박노규의 공격으로 느끼는 대리만족이 기묘하게 결합되어 흔치 않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억지로 짜낸 것이 아니라 답답한 현실을 바탕으로 둔다는 점에서 통렬하기까지 하다.
‘미디어’와 ‘국가’의 관계, ‘미디어’와 ‘소외된 시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