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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오로지 경찰만 만든다 내 이름을 걸고…”

‘1만 경찰’의 스승 김재규 김재규경찰학원장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오로지 경찰만 만든다 내 이름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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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는 광주에서 다녔다. 3년 내내 학교와 집만 오갔다. 첫 버스를 타고 갔다 마지막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명문인 조선대부속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에는 못 들어갔다. 시험만 다가오면 찾아오는 이상한 증상이 고3 때부터 시작됐다. 시험 때만 되면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하얀 점들이 찍히는 듯한 증상 때문에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고시 1차에서 떨어질 때마다 그는 한강으로 갔다. 세상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 그를 절망케 했다. 죽으려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학원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 사법시험 1차에서 떨어져 낙담해 있던 어느 날, 공무원시험 교재를 만들던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을 한 것이다. 현직 경찰들의 승진시험 대비를 위한 문제집이었다. 그는 머리나 식히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한 문제당 5000원을 받기로 했다. 사법시험 과목이던 형법, 형사소송법, 경제학 문제 출제를 맡았다.

▼ 출판사에서는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한 겁니까.

“제가 그때 신림동에서 아주 유명했거든요, 시험에 떨어지는 고수로. 누군가가 출판사 사장한테 ‘어디어디에 진정한 고수가 한 명 있다’고 귀띔해줬대요(웃음). 그런데 그게 제 운명을 바꾼 거죠.”



▼ 그 일을 계기로 고시를 포기하고 학원계에 투신한 건가요.

“아니에요. 그저 잠시 쉰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내가 출제하는 문제가 계속 적중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죠.”

“내 책밖에 없었다”

김 원장의 사무실에는 지금도 당시 그가 만든 개당 5000원짜리 문제들이 보관돼 있다. 20년 전 손으로 직접 쓴 문제들. 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다. 파일 속 문제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읽어주는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 난리가 났겠네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게 행복했어요. 솔직히 고등학교 이후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원하는 대학에도 못 들어갔고, 8년 동안이나 고시에 떨어졌고. 쓰레기 같던 인생에 빛이 들어온 거죠. 그래도 그 일을 오래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곧바로 그만두겠다고 했죠.”

▼ 왜요.

“고시 공부 계속하려고요. 그런데 내가 그만둔다고 하니까 출판사 사장이 오해를 한 거예요. ‘김재규가 돈을 더 받으려고 튕긴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그랬는지 문제당 가격을 점점 올리더라고요. 7000원, 1만 원, 2만 원…이런 식으로. 결국 책을 한 권 더 내기로 했죠. 그다음엔 내가 직접 교재를 쓰기도 하고.”

▼ 직접 쓴 책은 성공했나요.

“처음 책을 낸 게 1997년입니다. 형사실무 교재였는데, 그야말로 대박. 아니, 대박보다 더 대단한 표현이 있으면 좋겠는데…. 몇몇 서점과 방문판매를 통해 팔았는데, 얼마나 많이 팔렸냐면, 2.5t 트럭 3~4대분을 파는 데 일주일이 안 걸렸어요. 갖다놓으면 바로 나가는 겁니다. 그 책을 내면서 ‘경찰승진연구회’라는 출판사도 만들었는데, 현재 저희 학원에서 쓰는 교재가 모두 그 출판사를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 그 책이 본인의 이름으로 낸 첫 교재였습니까.

“내 이름으로 낸 건 아니었어요. 내 이름을 걸고 쓴 책은 그다음에 나왔죠.”

김 원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첫 저서를 낸 건 2000년 5월이다. ‘경찰학개론’ ‘수사 Ⅰ·Ⅱ’였다. 이 책들이 김 원장의 인생을 바꿨다. 경찰학원계의 ‘스타 탄생’이었다.

“2000년에 경찰시험 과목이 바뀌면서 경찰학, 수사학이 새롭게 지정됐어요. 아주 생소한 과목이었죠. 당연히 교재도 없었고. 공부할 책이 없으니 수험생들 사이에 큰 혼란이 벌어졌죠. 그때 제가 경찰학, 수사학 교과서를 낸 겁니다. 대한민국에 경찰시험 교재가 내 책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러니 얼마나 많이 팔렸겠어요. 대박 정도가 아니었죠.”

▼ 시험과목이 바뀐다는 걸 알고 준비한 겁니까.

“경찰학과 수사학은 현직 경찰의 승진시험 과목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오랫동안 경찰 승진시험 문제만 냈잖아요. 그러니 금방 책을 낼 수 있었죠. 그런데 문제는 책이 나온 다음이었어요. 책은 불티나게 팔리는데, 강의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학원들이 모두 저를 찾아와 강의를 부탁했어요. ‘대한민국에 수사 관련 교재는 당신 책밖에 없다. 그러니 당신이 직접 강의를 해줘야겠다’고. 잠시 머리 식히려고 시작한 일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진 거죠.”

▼ 사법시험에 미련은 없었나요.

“포기한 건 절대 아니었는데, 솔직히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 강의는 잘됐나요.

“해보니까 소질이 있더라고요(웃음). 학생들도 좋아하고, 슬슬 재미가 붙고. 강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웃돈 받고 노량진으로 스카우트 됐을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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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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