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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해군 함정 이름에 ‘서산(西山)’도 넣어야”

서산대사 재조명운동 벌이는 범각 스님(대흥사 주지)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해군 함정 이름에 ‘서산(西山)’도 넣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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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僧軍 지휘 명령

“해군 함정 이름에 ‘서산(西山)’도 넣어야”

지난해 4월 16일 대흥사에서 열린 ‘호국 대성사 서산대제’.

▼ 서산대사 국가제향 복원의 의의라면.

“승군은 고려 때의 조직 및 훈련체계를 조선조에도 계속 이어왔고, 조선 전기 무기력한 관군을 대신해 남한산성, 수원산성, 동래산성 등 전국 각지에 산성을 축조했어요. 진주성 내 내성사(內城寺, 현 호국사) 같은 사찰에서처럼 군사훈련도 꾸준히 했습니다. 이 때문에 임란을 맞아 서산대사를 의승대장으로 삼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승군은 조선의 실질적 주력군으로 왜군을 물리치는 데 혁혁한 전과를 올렸어요. 그래서 승려를 ‘8대 천민’으로 전락시키고 도성 출입마저 금지했던 극단적 숭유억불(崇儒抑佛) 시대였음에도 나라와 백성을 구한 서산대사에 대한 제향을 국가적으로 모시면서 구국의 공덕을 기린 겁니다.

하지만 오늘날 서산대사와 무명 의승군들의 호국 공적이 국가적으로 재조명되지 않고 국민에게도 관심 밖인 세태는 정말 납득하기 어렵지요. 서산대사 국가제향은 없던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자는 게 아닙니다. 명백히 실재한 역사적 사실을 복원함으로써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켜낸 호국의 얼을 계승 발전시켜 국가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조선 전기엔 ‘태평성대’라고 칭하며 누구도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관군도 외적 침입에 무방비 상태였다. 양반, 평민 가릴 것 없이 군역을 면제받기 일쑤였다. ‘선조실록’을 수정한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26권 7월 1일에 따르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5일 만에 한양이 함락될 만큼 관군의 수준은 형편없어 도망가기 바빴다. 신의주로 피난 간 선조는 서산대사를 불러 의승군 총사령관인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 직책에 임명하고 승군을 이끌어 왜군을 물리쳐줄 것을 간곡히 명한다.



이후 서산대사는 사명, 처영, 영규 대사 등 제자들과 함께 전국에서 의승군을 규합하고 왜군을 무찌른 공로를 인정받아 선조로부터 정2품 당상관 직위와 시호를 하사받는다. 서산대사가 열반에 든 몇 년 뒤 선조는 그에게 영의정을 추서한다.

▼ 지난해 대흥사 차원에서 봉행한 서산대제는 어떤 반응을 얻었습니까.

“처음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종묘제례) 보유자인 대동종약원에 의뢰해 조선시대 서산대제 제향의례집인 표충사향례홀기(表忠祠享禮笏記), 조선 후기 서산대사 국가제향의 제사 차림도인 대흥사 진설도(陳設圖)를 철저히 고증해 서산대사 국가제향 의례를 원형에 가깝게 재현했습니다. 예조정랑과 전라도 경양찰방, 인근 5개 고을 수령들의 예제관 행렬도 당시 의궤에 치밀하게 맞춰 재현했어요. 전남도민과 해남군민 1500여 명, 서산대사의 호국정신을 알리고자 연 제18회 나라사랑 글쓰기 대회에 참가한 초·중·고 학생 1500여 명이 대흥사 경내를 가득 메웠습니다. 조선 예제관 군사 및 가마 행렬 참가, 조총 의전, 군악대 동원 등 목포 해군 3함대의 적극적 지원도 끌어낼 수 있었고요. 국가제향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보람으로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조선시대 서산대사에 대한 제향은 국가 주도로 치러졌다. 하지만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전국 서원 중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면서 사당인 표충사도 운명을 다했다. 이로 인해 서산대사 국가제향도 함께 폐지됐고,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맥이 끊겼다.

‘호(護)정권 불교’는 침소봉대

▼ 2011년 4월 서산대사 성역화 사업의 하나로 대하장편소설 ‘서산’(신지견 지음, 연인 M·B)의 출간도 지원했는데요.

“‘서산’은 한마디로 ‘사실적 소설’입니다. 소설은 원래 픽션이지만 ‘서산’은 역사적 사실과 문헌의 근거를 각주로 제시하며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구성한 거예요. 소설적 재미와 의승군의 호국 역사 복원을 동시에 추구한 거지요. 1부 5권이 완간됐고 2부는 8권까지 출간됐는데, 9, 10권은 내년 말에 나올 예정입니다. 서산대사와 의승군의 공적, 나라사랑 정신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 국가제향을 복원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일 텐데, 갈등의 한국 사회에서 과연 쉬운 일일까요.

“서산대사 국가제향은 특정 종교지도자에 대한 제사가 아닙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군권을 부여받아 왜군을 격퇴한 구국 충신열사에 대한 제향입니다. 유교가 국교(國敎)였던 조선시대에도 국가제향으로 예우를 다했는데…. 더욱이 제향 의례도 불교 형식이 아니라 조선 성종 때 완성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기준에 따른 유교식 제향입니다. 국가제향은 호국과 애민의 정신을 계승해 민족 자존심을 드높이는 장(場)이 돼야 합니다. 일본의 끊임없는 역사왜곡에 맞서, 왜군을 물리친 서산대사를 국가적 차원에서 추모한다면 국민적 단결을 도모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봅니다.”

‘국조오례의’의 분류법으로 볼 때 제기와 제찬의 숫자인 변두(?豆)는 조선시대 국가가 행한 제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사(大祀)인 12변12두는 종묘·사직 제사로 임금이 친향한 것이다. 중사(中祀)인 10변10두는 공자의 제향인 석전(釋奠)이 대표적이다. 소사(小祀)인 4변4두는 충신열사에 대한 제향으로 율곡, 퇴계 등 유교 대학자의 제사가 이에 해당한다. 서산대사의 제자 사명대사 제향도 4변4두 제사였다. 그런데 대흥사 진설도엔 서산대사 국가제향의 변두가 12변10두로 기록돼 있다. 서산대사 제향이 종묘제사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위상임을 보여준다.

▼ 서산대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종단 내 대다수 스님은 적극 지지하고 있어요. 다만 사회 일각에 의승군 활동이 결과적으로 부패한 이씨 왕조만 되살려준 꼴이 됐다는 시각이 있고, 군사정부 시절의 ‘호국불교=호(護)정권 불교’라는 프레임을 통한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산대사가 임란 때 백성의 처참한 상황을 통탄하며 오로지 그들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에서 승군의 총궐기를 호소해 호국불교가 형성된 겁니다. 이씨 왕조는 왜군을 물리치고 영토를 회복한 ‘덤’으로 유지된 거예요. 서산대사가 임란 후 부귀영화를 누린 게 있습니까. 벼슬도 버리고 묘향산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을 따름입니다. 국가제향도 입적 후 170여 년이 지나서야 이뤄졌어요.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국가 주도의 국가제향 복원과 무명(無名) 의승군에 대한 연구, 명예회복 및 위령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않아 안타까워요. 처음엔 전남과 해남지역에서조차 그 관심이 미미했어요. 그러나 공청회 개최, 지역사회 홍보, 대민 설득, 소설 ‘서산’ 배포, 지역 해군의 참여 등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해가고 있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 서산대사의 사은사상(四恩思想, 국가·부모·스승·백성의 은혜)의 진정성이 우리 사회를 하나로 통합해주리라 생각합니다.”

▼ 임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과 서산대사의 경우를 비교한다면.

“이순신 장군은 분명 영웅이지만 나라의 녹을 먹는 관군의 수장이었으니 당연히 국가를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순신 장군의 제향은 현재 충남 아산 현충사의 국가(문화재청) 주관 제향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등 전국 46개소에서 대대적으로 행해집니다.

반면 서산대사 휘하 의승군들은 세속을 버리고 출가한 승려로서 나라로부터 어떠한 녹도 받지 않았습니다. 공식적 책무가 없는데도 월계(越戒)의 비난을 감수하며 전쟁 보급물자까지 자체 조달하면서 일찌감치 꽁무니를 뺀 관군을 대신해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5000여 순국 무명 의승군에 대한 명예회복과 위령탑비 건립 등 제반 추모사업과 서산대사 국가제향 복원이 정부 주도로 이순신 장군의 예우에 준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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