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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봉준호 리더십 탐구

스스로 날게 하는 경청과 설득의 힘

  • 이형석 |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설국열차’ 봉준호 리더십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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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的 카리스마

연세대 사회학과를 나온 봉준호 감독은 박학다식하고 용의주도하다는 평을 듣는다. 신문과 뉴스를 장식하는 사회·정치 이슈를 꿰고 있고, 그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 제작자인 차승재 씨는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을 모차르트, 봉준호 감독을 살리에르에 비유한 적이 있다. 봉 감독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강조한 말이다.

‘살인의 추억’과 ‘설국열차’의 소재도 지적인 모험을 통해 얻었다. 대학로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살인의 추억’ 원작인 연극 ‘날 보러 와요’를 만났고, 홍익대 앞 만화방을 들락거리다 ‘설국열차’ 원작인 동명의 프랑스 만화를 접했다.

그는 영화 소재에 관한 취재도 모든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치밀하게 하지만, 카메라의 기종부터 촬영기법까지 영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해당 분야 전문가를 능가하는 지식을 갖췄다. 만화를 읽고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그리기도 한다. 이러한 재주를 활용해 영화의 모든 장면과 세트 디자인을 한 컷 한 컷 그려 촬영하는데, 그것이 완성본과 큰 차이가 없다.

촬영 역시 일정을 치밀하게 계산해 미리 짠 계획표대로 오차 없이 진행한다. 한국에서든 할리우드에서든 이 정도의 용의주도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식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용의주도함은 동료 배우와 스태프들이 그에게 보내는 신뢰와 자발적 동의의 원천이자 그가 촬영장을 지배하는 카리스마의 동력이다. 크리스 에반스는 이렇게 말했다.



“‘설국열차’는 매우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놀라운 배우들, 놀라운 감독과 함께했다. 촬영 방식도 독보적이었다. 보통은 마스터숏(전체를 보여주는 장면)을 먼저 찍고 자기와 상대 방향에서 각기 다시 촬영한 후 편집실에서 자르고 이어 붙인다. 그런데 봉 감독은 이미 머릿속에서 편집이 끝나 있다. 스토리보드(콘티)가 곧 편집본이다. 예를 들면 집을 짓는데 목수가 ‘못이 한 봉지 필요하다’고 하지 않고 ‘못 53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그의 비전에 완전히 복종했다.”

‘설국열차’의 최초 설계 도안 역시 봉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기차가 구동하는 시뮬레이션 도면을 직접 설계했으며 이것을 해외 특수효과 전문팀이 실물로 구현했다. 한 칸의 길이가 최소 20~25m에 달하는 기차 4량이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너비가 100m를 넘는 체코의 촬영 스튜디오를 섭외한 것도 봉 감독의 계획이었다.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찍기 위해 세상 모든 연쇄살인의 역사를 탐독했던 것처럼, 이번 영화에선 혁명과 계급의 사회사적 의미를 훑었다. 그에게 영화에 대해 물어본다면 꼬리칸 사람들의 유일한 식량인 양갱 모양의 단백질 블록 같은 소품의 의미는 물론, 영화에 나오지 않는 인물의 과거사까지 들을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그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자기 발상에 대한 논리적이고 서사적인 맥락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아마도 타고났을 법한 이런 달변은 그의 지적인 카리스마를 배가하는 힘이 됐으리라.

‘큰 귀’를 열어놓다

‘큰 귀’를 갖지 못한 ‘큰 머리’가 어떻게 실패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영화를 찍다 제작자, 배우와의 소통에 실패해 도중하차한 어느 ‘명감독’의 경우다. 그와 일한 배우의 전언에 따르면, 감독과 제작자가 영화 기획과 촬영 때부터 줄곧 갈등을 빚었다. 여기까지는 영화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제작 과정의 산고(産苦)쯤으로 이해할 만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등을 돌렸고 감독은 영화에서 손을 뗐다. 문제는 감독이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 배우들에게까지 귀와 입을 굳게 닫았다는 것.

“우리야 감독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고 그의 입장을 지지할 준비가 돼 있지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을 해줘야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어떻게 연출할 건지, 어떤 내용으로 싸우고 있는지 우리에게도 전혀 말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봉준호는 귀를 늘 열어놓는다. 꼬리칸, 검역칸, 주방칸, 정원칸, 수족관칸을 거쳐 머리칸까지 설국열차를 구성하는 각 칸을 설계하던 중 고아성에게 불현듯 물었다.

“또 어떤 칸이 있으면 좋을까?”

고아성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몸에 줄자를 대고 의상을 재단하는 칸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영화에 머리칸에서 내려온 관료가 꼬리칸의 아이들을 불러 세워 줄자로 키를 잰 뒤 앞칸으로 색출해가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복선이 되는 중요한 설정이다. 고아성은 ‘사람 몸을 줄자로 잰다’는 콘셉트에 맞춰 모티프를 중간에 다시 한번 시각화하되, 이번에는 “가로로 재면 좋겠다”고 했다. 이 제안은 영화에 그대로 구현됐다.

또 있다. 열차 안에서 태어난 ‘요나’(고아성 분)는 원래 한국인인 아버지(송강호)와 달리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캐릭터였지만, 감독은 이를 고집하지 않고 “뭘 해도 어설픈 아이일 것 같다”는 고아성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극 중 고아성의 한국어가 붕 떠 있는 느낌을 주는 이유다. 요나의 머리도 단발로 설정돼 있었지만 고아성이 “‘괴물’과 똑같은 헤어스타일이다. 짧은 머리에 내내 후드를 쓰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한 뒤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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