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 실험 고고학자인 존 콜즈의 주장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는 기원전 2600년경 고대 이집트가 이미 대양 항해기술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기자의 대피라미드 옆 지하에서 발견된 체옵스왕의 배가 그 증거라고 했다. 길이가 43m에 달하는 이 배는 콜럼버스가 탔던 산타마리아 호보다 2배나 크다. 콜즈는 이집트인들이 이 배를 타고 대양 항해에 성공했다고 믿었다.
대체 역사학자 앤드루 콜린스는 ‘기원전 600년경 파라오 네코의 명령에 의해 홍해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대륙을 한 바퀴 돌아 지중해로 오는 장장 2만5000km의 항해가 이루어졌다’고 적혀 있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주목한다. 기록에는 “당시 이런 항해를 이집트인들 스스로는 할 수 없었고 대신 ‘페니키아 사람들’이 수행했다”고 돼 있다. 이를 근거로 콜린스는 페니키아인들이 대서양을 횡단해 남미 대륙으로 갈 수 있었고 거기서 코카인을 들여왔다는 가설을 내놨다.

터키 네발리 코리 신전과 돌기둥 석상(위), 볼리비아 티와나쿠 석상
신대륙과 구대륙 간 문물 교류의 흔적은 이밖에도 많다. 1532년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처음 페루에 도착했을 때, 잉카 문명의 일상과 종교 의식에서 닭은 이미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닭이 남미의 태평양 연안 지역을 제외한 북아메리카나 남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는 점이다. 그렇다면 페루의 닭은 어디서 온 것일까.
뉴질랜드 오클랜드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엘리자베스 스토리는 칠레에서 발견된 닭뼈의 유전자 형질 조사를 통해 칠레의 닭이 폴리네시아에서 옮겨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중요한 건 그 시기가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보다 100년 이상 빨랐다는 사실이다.
고구마도 마찬가지다. 폴리네시아에서 고구마는 매우 중요한 작물이다.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이 폴리네시아에 고구마를 전파했다는 게 그동안의 정설이었다. 알려진 것처럼 고구마의 원산지는 아메리카다. 그런데 중앙 폴리네시아 쿡 군도의 한 섬에서 탄화(炭化)한 고구마가 발견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발견된 고구마는 분석 결과 기원전 1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됐다. 대체 이 고구마는 어디서 온 것일까.
불머라는 학자는 검은가슴물떼새를 의심했다. 이 새가 아메리카의 고구마 씨앗을 폴리네시아에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퍼스글로브라는 학자는 캡슐에 담긴 고구마 씨앗이 남미에서 폴리네시아까지 태평양을 횡단해 운반되었다는 가설을 내놨다. 그러나 둘 다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주장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고구마가 사람에 의해 운반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가 나타났다. 언어학적 추정이었다. 폴리네시아에서 고구마는 ‘쿠말’ 또는 ‘쿠마르’로 발음되는데, 이는 페루(퀘추아어 방언)나 에콰도르 원주민이 고구마를 부르는 말과 똑같다.
만약 사람이 고구마를 옮겼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남미 사람이었을까. 아마도 헤위에르달은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대양 항해에 능했던 민족은 폴리네시아인들이었다. 그들은 1000km 거리의 대양을 10일 안에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멜라네시아(오스트레일리아 북동쪽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기원전 2500년경에 남태평양의 피지, 사모아 섬까지 진출했고, 기원전 500년 전후로 이스터 섬에 정착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사실이라면, 온갖 작물의 씨앗과 가축까지 실어 나른 문명의 대이동이었다. 이들은 매우 계획적으로 이동했으며 몇 단계를 철저하게 준비해 매우 안전한 이동 경로를 택했다. 계획 이주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