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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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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일본의 방사선량률

도호쿠(東北)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조금 올랐다(60~80). 얼마 전엔 일본에 도착하면 ‘후쿠시마는 한국인 여행 금지구역입니다’라는 외교부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오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후쿠시마를 더 이상 위험지역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일까.

도쿄에서 후쿠시마로 가려면 차로 3시간여를 달려야 한다. 2시간여를 달려 어둠이 깔릴 무렵 터널 하나를 지나게 됐는데 수치가 갑자기 높아졌다. 130이던 것이 211→275→259→255→243→227→295를 거쳐 526을 찍고 515→500이 됐다.

‘후쿠시마에 가까워지니 방사선량률이 도쿄보다 10~20배 높아지는구나. 나를 지키는 방호(防護)법도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500대 수치는 5분쯤 지나자 197로 떨어졌다. 8시쯤 후쿠시마 역 앞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자 서울과 비슷한 77→84→91→93→102가 나왔다.

후쿠시마에 사람이 ‘잘’ 산다

기내식 말고는 먹은 게 없어 바로 식당을 찾아나섰다. 불을 켜놓은 이자카야(居酒屋)로 들어가니 손님이 제법 있었다. 젊은이들이 모인 테이블에선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사능 오염 지역이라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잘들 지내고 있었다. 아사히 맥주와 함께 그곳 주방장이 그곳 식재료로 만들었을 밥과 안주를 시켜 먹었다. 생선으로 만든 안주도 있었지만 원산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후쿠시마 시에 사람이, 그것도 태연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을 나서자 도로 가운데 ‘핵병기(核兵器) 폐절(廢絶) 평화선언 도시’라고 쓰인 광고탑이 보였다. 후쿠시마에도 반핵운동이 벌어지고 있구나 싶었다. 도로 한가운데로 들어가 탑 앞에서 측정하자 295라는 높은 수치가 나왔다. 지도에서 후쿠시마 발전소로 가는 114번 국도를 확인하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한 후 출발했다. 목적지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릴 듯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수치가 높아졌다. 436→520→489. 길가에 ‘제염(除染)작업중’이란 현수막 여러 개가 펄럭이는 게 보였다. ‘제염’이란 단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차에서 내려 살펴보기로 했다. 작업자들이 불도저로 흙을 얇게(3~5cm 정도) 밀어 모은 다음 포클레인으로 떠서 플라스틱 통에 담고 있었다.

안전봉을 들고 교통 안내를 하던 작업자는 사진 촬영을 하는 ‘이방인’을 전혀 제재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옮겨 다니면서 측정기를 보니 482→430→831→430→482→695→891→915→789→831로 치솟았다. 915를 봤을 땐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작업자들은 일반 작업복에 일반 마스크만 쓰고 일하고 있었다. 그곳은 안전지대이지만 다른 데보다 방사선량률이 높았다. 이 때문에 오염된 토양이 바람이나 빗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걷어서 통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통에 담은 흙은 반감기가 지나면 다시 농사용 흙으로 사용한다.

용기를 내 차를 몰고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수치는 1511→1676→1812로 급격히 상승했다. 2252를 찍었을 때 도로 진입을 막는 통제소가 눈에 들어왔다. ‘가와마타초(川·#53701;町)’라는 표지판이 있는 곳이었다.

‘통행제한 중’이라고 쓴 노란 간판이 걸린 통제소에 가서 “취재하러 온 한국 기자다. 사진을 찍어도 좋은가?”라고 물었다. 근무자들은 “도죠(그렇게 하라)”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찍히는 것은 싫은지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들도 일반 작업복, 일반 마스크에 헬멧만 쓰고 있었다. 헬멨 아래로 흰 머리칼이 드러났다. 60~70대 노인들이었다.

측정기를 꺼내자 3067을 기록했다가 기자의 움직임에 따라 3033→3268→3358→3088로 바뀌어갔다. 수치가 너무 높아 뒷골이 땅기는 느낌이었다. 노인일수록 방사선에 취약한데 왜 노인을 고용해 통제 임무를 맡겼을까. 그들에게 “이곳의 방사선량률 수치다”라며 측정기를 보여줬지만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은 하루 6시간 반씩 교대로 근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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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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