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줏대 없는 태도는 국방부가 권력에 쉽게 예속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군이 지켜야 할 원칙에는 대통령의 통제를 수용해야 한다는 ‘문민 통제’만 있는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방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방을 그르치는 길로 간다면 이를 가로막는 군인이 나와야 하는데, 지난 15년 동안 그런 모습을 보여준 ‘별’은 없었다.
전작권을 가져와야 하는지, 가져오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소신’이다. 절대 다수의 장성들은 “갖고 오지 않는 게 낫다”고 하면서도 진급과 출세를 위해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한 때 ‘늙은 군인’들이 소신을 밝혔다. 현역 시절, 그들도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겠지만 현역을 대신해 바른 소리를 내려고 했다. 총 대신 태극기를 들고 태양이 작열하는 광장과 매서운 추위 속으로 뛰어나왔다. ‘편승 안보’ ‘위탁 안보’로 보일 수도 있다는 부담을 무릅쓰고 성조기를 흔들었다. 그 ‘노병군’의 중심에 ‘향군(鄕軍)’으로 약칭되는 재향군인회가 있다.
오랫동안 향군은 만만한 ‘어용(御用)기관’으로 분류됐다. 청와대가 동쪽을 가리키면 동쪽으로 뛰었고, 구름을 가리키면 하늘로 점프했다. 그래야 정부 보조금을 받고 향군에서 운영하는 기업들이 특혜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역 때부터 몸에 밴 ‘정권(국가가 아닌)에 대한 충성심’이 표출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김영삼 정부 때까지는 이러한 기조가 유지됐다.
권력과 향군의 결별은 김대중(DJ) 정부 때시작됐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온 DJ가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하면서부터 향군은 정권과 멀어졌다. 그러나 권력은 ‘자기 사람’을 앉히는 형태로 향군을 계속 부리려 했다. 오랫동안 권력의 손을 탄 ‘경주마’도 권력이 제공하는 ‘당근’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경주마에서 야생마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앞세워 전작권 환수를 추진했는데, 전작권을 환수하면 한국 방어의 근간인 연합사가 해체된다. 군은 어느 집단보다도 동맹과 연합군의 가치를 잘 알기에 반대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국민은 노무현 정부가 내건 ‘자주’라는 구호에 매혹됐다. 권력은 ‘어용단체’인 향군도 따라올 것을 요구했다.
2006년 5월 29일 노 대통령은 경주마를 어루만져주기 위해선지 박세직 회장 등 재향군인회 신임 회장단을 청와대로 불렀다. 고려대 정외과(59학번)를 졸업하고 학군(1기)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장(육군 2군사령관)에 올랐고 국회의원을 두 번 지낸 박세환 부회장도 참석했다. 노 대통령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박 부회장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국방담당 비서관을 한 적이 있어 습관적으로 ‘그 말씀’을 메모했다. 자리가 끝난 뒤 기자들이 “어떤 이야기가 있었느냐”고 묻자 개략적인 설명을 해줬다. 다음 날 언론은 “노 대통령이 또 ‘북핵은 방어용’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청와대는 경주마의 반발에 짜증을 냈다. 사실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대통령과 향군 회장단 간의 대화는 비공개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 부분적으로 내용이 잘못 전해졌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메모를 한 박 부회장을 발설자로 지목했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향군도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향군 측 관계자가 전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내용 자체도 전혀 아는 바 없다”고 발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