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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에서 투사로! 재향군인회의 전쟁

이명박, 김장수, 김관진을 돌려놓은 ‘힘’

  •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어용에서 투사로! 재향군인회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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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에서 투사로! 재향군인회의 전쟁

향군을 어용 단체에서 투사로 바꿔놓은 박세환 회장. 그는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향군은 한 달 뒤 노 대통령에게 ‘작통권(전작권) 단독 행사의 문제점과 유보 필요성’에 대한 편지를 보냈다. 길들인 경주마에서 제 길 가는 야생마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바른말’을 할 것이냐, 계속 어용으로 남을 것이냐. 향군은 많은 고민을 하다, 야전 출신답게 ‘야전성’을 회복해갔다.

자유총연맹, 성우회, 한국기독교총연합 등 보수 성향 단체들과 전작권 환수를 막기 위한 500만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한 것. 이들은 2006년 9월 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전작권 환수 반대 9·2 국민대회’라는 정치성 짙은 행사를 열었다. 정권의 눈은 날카로워져갔다. 9월 12일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500만 명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을 치렀는데, 이 행사엔 갑자기 건강이 나빠진 박세직 회장을 대신해 박세환 부회장이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말았다.

“국민의 뜻과 달리 (전작권) 단독 행사(환수를 뜻함) 추진이 이뤄지더라도 내년에 재협상을 공약하는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해, 기필코 차기 정권이 재협상을 하도록 할 것이다. (…) 서명운동은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 우리 국민이 전시작전통제권과 한미연합사에 대한 실상을 잘 알 수 있도록 소책자 발간, 만화 제작 배포 등 홍보활동을 적극 전개하겠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 우리 국민이 운동본부에 성금을 보내줄 것을 호소하고자 한다. 성금을 보낼 계좌는 우리은행 ∼이다.”

당연히 바로 태클이 들어왔다. 9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박유철 보훈처 장관을 불러 “박 부회장의 언동이 향군법에서 금한 정치활동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퍼부었다. 박 장관은 “그렇다”며 “어떻게 제재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얼마 후 정무위에는 향군법 폐지 법안, 여러 개의 재향군인회 설립을 인정하는 법안, 향군회장 선출 방식을 변경하는 법안 등 3건의 법안이 상정됐다.



그리고 그 전해에 만들어진 평화재향군인회와 여당의 협조가 강화됐다. 평화향군은 창설할 때부터 열린우리당과 관계가 있었다.

좌파 언론과 여당의 비난이 계속되자 향군은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거명하지 않고 대선 후보 지지를 표명한 것은 정치활동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국가안보의 기본을 흔드는 행위는 좌시하지 않을 것” “범국민 서명운동은 적극 시행할 것”이라고 저항했다.

권력은 감사권을 행사했다. ‘돈 조사’ 앞에는 당해낼 장사가 없기에 박세환 부회장은 9월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것으로 ‘향군 죽이기’는 일단락됐지만 정권의 옭죄기는 멈추지 않았다. 12월 12일 국가보훈처는 보훈처장관 명의로‘재향군인회의 정치성 활동에 대한 엄중 경고 및 재발방지 촉구’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왔다.

향군은 이를 법무법인 KCL로 보내 ‘국가보훈처의 지침은 향군의 자율적인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받아냈다. 이러한 의견이 ‘방패막’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향군은 물러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1000만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기로 했다. 정권과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셈이었다. 2007년 2월 21일 이들은 250여만 명의 서명을 받은 것을 자축하는 경과보고를 하면서 “16대 대통령에 취임한 노무현 씨는 2003년 5월 1일 취임 기념 TV 토론에 출연해 ‘군사작전통제권이야말로 자주국방의 핵심요소’라고 한미연합사 전시작통권에 대해 최초로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을 ‘씨’로 부르며 강한 거부감을 표출한 것이다.

권력도 ‘마이웨이’를 걸었다. 미국을 방문한 김장수 국방부장관이 2월 23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을 만나 ‘2012년 4월 17일 전작권을 환수한다’고 합의한 것.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인데, 칼자루를 쥔 것은 권력이었다.

권력은 박세직 회장이 박세환 부회장의 사표를 처리하지 않은 것을 알고 “왜 수리하지 않느냐”며 압박을 가했다. 박 회장은 어렵게 버텨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치른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박 회장은 사표를 반려해 그를 부회장으로 ‘컴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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