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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미국 선교사 브루엔이 처음 전파

한국야구 ‘원조(元祖)’는 대구

  • 김중순 │계명대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 tsk@kmu.ac.kr

1899년 미국 선교사 브루엔이 처음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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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선교사인 동료 존슨 박사의 부인도 이런 모습을 보고 같은 해 3월 25일자 글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놀랍게도 여기엔 기미년 만세운동을 이끈 33인 중 최연소자인 대구 출신 이갑성(1889~1981)의 이름도 등장한다.

브루엔이 대구에 처음 왔던 것은 미국에서 막 도착했을 때였으니 아직 한국말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직 어린 소년들(김학철, 이갑성, 김주호 등)에게 야구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소년야구단을 시작했으니, 한국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야구 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소년들을 처음 만났을 때, 브루엔은 운동복이랍시고 반바지와 헐렁한 셔츠를 입고 모자를 썼습니다. 먼저 한국어 선생님 집으로 찾아갔더니, 선생님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가 말하길, “이게 무슨 꼴입니까? 맨다리에다 긴 두루마기도 입지 않고, 체통 없이 모자를 그렇게 눌러쓰다니!” 그는 브루엔에게 제발 집으로 돌아가서 예의를 갖추어 옷을 걸쳐 입으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브루엔은 그저 태연스레 미소만 지을 뿐, 그대로 야구를 하러 갔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인들의 이상한 옷차림은 으레 그런 것으로 차츰 사람들의 눈에 익숙해졌습니다. 한국인들은 예의범절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길게 흘러 내려오는 하얀 두루마기와 헐렁한 바지, 그리고 말총으로 빳빳하게 만든 갓을 써야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소년들은 방망이로 공을 치는데 버거워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기가 꺾이지 않도록, 아이들이 방망이를 쓰는 데 몇 가지 기술을 익힐 때까지 방망이 대신 테니스 라켓으로 대체하기도 했습니다.



3·1운동 주역 이갑성도 배워

브루엔이 1900년에 쓴 선교 보고서엔 실제로 야구팀이 구성돼 활동했음을 짐작게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두 가지 야외 활동 가운데 하나는 주일학교 야구팀이고, 또 하나는 주일학교 소풍입니다. 먼저 내가 이렇게 하기로 한 것은 내 개인적 즐거움 때문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더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저 야구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때 이미 정식 야구팀을 조직했다는 말이다. 그 후 10여 년 동안 대구에서 야구가 유행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1906년 그 선교사들이 설립한 대구의 계성학교에선 1911년 테니스, 축구, 야구 등을 활성화하고 그 3종목의 운동기구를 구입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학교 설립 5년 만의 일이고 대구에 야구가 소개된 지 10년 만의 일이니 그 사이 대구에선 어떤 형태로든 야구가 계속됐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후 1914년 7월 말 동경유학생 야구팀이 대구를 방문해 대구의 청년단과 경기를 벌였고, 1920년엔 대구청년회가 결성되면서 야구부가 만들어져 원정경기를 다니는 등 대구 야구는 꾸준히 활성화되고 있었다.

1960~70년대 경북고와 대구상고 등이 고교야구에서 전국을 제패했던 일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을 듯하다. 지난해 삼성라이온즈가 프로야구 최초로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둔 것도 그런 전통의 재확인이라고 하겠다.

최근 ‘빠스껫볼’이라는 TV 드라마가 시작됐다. 1948년 올림픽대표팀 이야기다. 시대 고증이 훌륭해 준비가 잘됐다는 평이다. 야구의 경우 10여 년 전 영화 ‘YMCA 야구단’이 제작된 적 있고, 최근엔 KBS ‘역사스페셜’에서 ‘또 하나의 전쟁, 황성 YMCA야구단’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한반도에 최초로 야구가 소개된 것은 1904년 선교사 질레트에 의해서라고 내세웠다.

‘모던 뽀이’의 야구 방망이

아닌 게 아니라 야구가 한반도에 처음 도입된 시기가 1904년이냐 1905년이냐 하는 갑론을박은 의외로 뜨거웠다(홍윤표, ‘야구 도입 1904년이 옳다’, ‘근대서지’ 2012, 21~228쪽). 지난해 12월 17일엔 대한야구협회마저 나서서 야구 도입 연도가 1904년으로 바로잡혔다며 ‘한국야구의 기원 정정 선포식’까지 열었다. 그러나 1899~1900년 브루엔에 의해 대구에 야구가 유입됐다는 위 사료들은 지금까지의 이런 논쟁을 단번에 뒤집고도 남을 만하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최초의 야구가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도입됐느냐는 것보다 야구를 아이콘으로 한 근대에 대한 담론이다. 1914년 10월 발행된 잡지 ‘청춘’ 창간호엔 필자를 알 수 없는 ‘뻬스뽈 설명’이라는 글이 재미있는 삽화와 함께 실려 있다. 마치 미국 보스턴의 어느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 하는 서양식 2층 건물 앞으로 어떤 학생이 걸어간다. 이 ‘근대적’ 도시를 걷는 학생은 교복과 교모로 짐작되는 검은 제복을 입은 채 한 손으론 책을 들고 읽고 있다. 다른 한 손엔 참으로 어울리지 않게도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다. 이 오묘한 조합은 영락없는 ‘모던 뽀이’의 모습이다. 그리고 본문에선 뻬스뽈이 1910년대 학생계에서 성행하는 유희라고 소개했다.

“다른 경기는 흔히 하나하나가 한 편이 되어 겨루지만, 뻬스볼은 한 편 각 9인씩 단체로 승부를 겨루므로 그 방법이 주밀하고 절차가 번다하여 재미도 다른 것보다 더 많다”고 했다. 또한 “동작을 민첩하게 하며 시력을 굳세게 하며 또 결단력을 기르니…경기의 장쾌하고 활발함이 청년의 유희”로 추천할 만하다고 했다. 이 학생이 한 손에 펼쳐 든 책은 정신의 계몽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한 손에 거머쥔 야구 방망이는 신체의 계몽을 상징할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적의 보루를 함락하는 데 이 편 공격이 불선하면 아니 되는 셈으로 뻬스뽈도 점수를 얻자 하면 공격을 잘못하여서는 시원치 아니 하니라”고 하면서 경기 규칙과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고 있다. 유희가 합리적 경기로 변모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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