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경을 넘어선 법률 문제가 넘쳐난다. 판결 하나에 국가와 기업의 운명이 바뀌는 세상이 됐다. 한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로 일한 김승열 변호사는 ‘법률세상’을 통해 복잡하고 중요한 ‘법의 세계’를 쉽고 흥미롭게 소개할 것이다. ‘신동아’ 독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는 세계적인 법률 문제를 알기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에릭 슈밋 구글 회장
8년 만에 나온 판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구글은 하버드 등 미국의 유명 대학 도서관과 책 1권 당 10달러 정도의 복제료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도서의 저작권자인 작가와 출판사와는 별도의 합의나 승인 없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스캔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가 및 출판업자에게 e메일 등을 보내 도서 스캔 동의 여부를 묻고, 이의 제기가 없으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해 처리하는 방식, 일명 ‘opt-out’방식을 채택한 것이 문제였다. 이 방식은 작가들의 동의를 먼저 구한 뒤 책을 스캔·전자문서화하는 방식(opt-in)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2005년 작가조합과 출판사협회는 구글의 행위가 무단복제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오랜 진통 끝에 2012년 출판사협회는 구글과 합의를 이뤄냈다. 양측은 “출판물에 대한 디지털화 권한을 출판사가 갖고, 구글이 만든 디지털 복제본을 해당 출판사가 제공받으며, 온라인 이용자는 도서의 20%만 온라인으로 볼 수 있고, 구글의 온라인으로 도서 구입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이에 따른 수익분배권을 출판사도 갖는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작가조합과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작가조합은 “공공·대학 도서관이 보유한 수천만 권의 책을 전자 복사해 온라인에서 전문이나 일부를 배포하려는 구글의 계획은 저작권을 침해한다. 구글은 권당 750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구글에 맞섰다. 작가조합은 지난해 1심 패소 직후 항소의사를 밝혔다.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구글북스를 저작권의 공정 이용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리고 법원은 진통 끝에 구글북스가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저작물의 ‘공정 이용’이란 개념은 1976년 미국의 개정 저작권법에 처음 규정(제107조)됐다.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의 목적으로 저작물을 공정하게 이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공정 이용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사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격, 저작물이 사용된 정도, 잠재적인 시장이나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저작권법은 창작물을 육성해 문화 발전을 도모하고자 창작물에 대해 사후 70년까지 독점적 권리를 부여한다. 그러나 창작물은 개인의 소유물이란 측면 외에도 공중의 공정한 이용이란 가치도 중요하게 고려돼왔다. 창작물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창조를 역사적인 산물로 본다는 법률적 판단이었다.
이번 구글북스 판결 이전에도 저작물의 공정 이용에 관한 판례는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3년 미국의 사진작가인 켈리가 이미지 검색 엔진인 아리바 소프트를 제소한 사건이다. 아리바 소프트가 자신의 디지털 사진을 축소해 저장한 뒤 검색엔진을 통해 접속할 수 있도록 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미국 법원은 검색이라는 목적을 위해 인터넷에 공포된 사진을 축소하고 화상도를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오로지 검색이나 연결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저작권자에게 이익을 제공하고 달리 손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 이용으로 봐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 구글북스 판결과 비슷한 사례다.
2006년 프랑스에서는 정반대의 판결도 내려진 바 있다. 프랑스의 출판사인 라마르티에르사가 “구글이 자사의 출판물을 동의 없이 무단 복제했다”며 저작권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이었다. 당시 프랑스 법원은 “구글의 무단 스캔 행위는 무단복제 내지 전송 행위로서 저작권을 침해한다”며 프랑스 출판사의 손을 들어줬다. 프랑스법원은 구글로 하여금 저작물 전체를 복제하는 행위와 일부 내용을 검색에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에 따른 손해배상금으로 30만 프랑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구글북스는 공정한가?
그렇다면 미국 법원의 판단은 옳았을까. 이번 재판 과정에서 구글은 자신들의 도서 검색 서비스가 영리 목적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고, 미국 법원은 구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미국 법원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다. 도서 검색 서비스가 당장 별도의 비용을 발생시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 행위를 비영리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도서 검색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가 증가하면 이는 고스란히 구글의 전체 광고비용을 증가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도서 검색 서비스 자체는 무료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구글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쪽으로 기능한다면 이는 영리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구글이 도서 검색 서비스를 영원히 무료로 제공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점도 재판 과정에서 감안되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아 저작물’의 처리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아 저작물’은 저작권은 존재하나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거나, 소재 불명인 저작물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저작권자와의 연락이 어려운 사정이 있을 저작물을 구글이 opt-out 방식으로 처리해 사용한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초로 무단 스캔을 한 구글이 향후 고아 저작물에 대해 독점적인 지위 등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일이 벌어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구글의 독점적인 지위 형성 및 이의 남용 가능성이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독점규제법 차원에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도서관과의 계약에 의해 도서의 스캔 작업이 이뤄지는 경우 후발 경쟁업체에 대한 참여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이 시장은 구글이 독점하게 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이로 인한 남용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
이번 판결은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먼저 국내 저작물인 도서가 미국 도서관에 소장되어 구글이 국내 저작자인 작가나 출판사로부터 동의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스캔한 경우 우리나라의 저작권자가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을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국내 저작권자가 구글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등의 청구를 국내 법원에 제기할 경우 패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지만 미국 법원과 같은 판결이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번 판결이 최종 판결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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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법원의 판결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또 좋든 싫든 배울 점이 많은 판결임에는 틀림이 없다. 먼저 미국 법원이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공정 이용에 관해 좀 더 유연한 법리 해석을 한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점이다. 도서 검색 산업이 발전할 것을 감안해 미래지향적인 법 해석을 시도한 부분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참에 우리도 이번 미국 판결을 참고해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좀 더 유연하고 서비스 지향적이며 시장친화적인 법제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논란은 있지만 이번 판결은 분명 새로운 법 해석의 장을 연 계기가 됐다. 그리고 조만간 이러한 법 해석은 전 세계적인 조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리 준비해야 권리를 보호받고 피해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