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부자에게 세금 더 물린다고 나라 경제가 좋아질까?

부자 증세

  •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2014-01-22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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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의 중요한 사용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국방과 치안 분야다. 둘째, 철도·도로·통신·항만 등의 사회간접자본 건설 분야다. 마지막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예 없거나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복지 분야다. 이런 용도에 세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론(異論)이 없다.

    앞으로도 국방과 치안은 국가의 고유한 분야로 남을 것이며, 그런 분야에서 세금의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반면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 기반이 취약했을 때 정부가 담당했던 사회간접자본의 건설 분야는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 부문에서 민간 부문으로 점차 이양될 것이며, 그에 따른 세금의 필요성도 줄어들 것이다. 최근 코레일을 비롯한 공기업의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방과 치안, 그리고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위해 쓰는 세금은 모두 개인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정부가 세금으로 유지하는 군대는 외침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내적으로는 경찰과 교도소 등을 바탕으로 한 공권력으로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자유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건설도 개인 상호 간의 물적·정신적 교통과 통신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확대한다. 물론 개인별로 지불하는 비용과 그에 따른 수혜의 정도는 다르지만 국민 모두의 자유 확대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따라서 사람들 대부분은 세금이 이런 용도에 사용되는 것을 수긍하며 별다른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최근 논란이 된 이른바 ‘부자 증세’는 주로 복지 정책과 관련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복지 공약을 실천하려면 5년간 추가적으로 135조 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에는 세출 예산 357조7000억 원 중 복지 예산은 30% 수준인 106조 원가량으로 편성됐다.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금액상으로는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어섰다.

    부자에게 세금 더 물린다고 나라 경제가 좋아질까?

    1월 1일 새벽 국회는 개인소득세 과표 구간을 조정하는 세법을 개정했다.

    복지 공약에 135조 원 필요



    당초 정부 지출 감소와 지하경제 양성화로 증세 없이 시행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는 처음부터 무리한 것이었다. 복지 지출보다 더 우선시되는 분야의 지출을 줄이기는 어렵다. 또한 지하경제는 양성화가 바람직하지만 양성화를 위한 세원 추적과 집행에 들어가는 비용이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하경제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복지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증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사회 전반적인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판단 아래 이른바 ‘부자 증세’가 단행됐다.

    구체적으로는 1월 1일 새벽 국회가 개인소득세 과표 구간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세법을 개정했다. 8800만~3억 원에 적용하던 세율 35%를 8800만~1억5000만 원에 적용하고, 1억5000만 원 초과 소득에는 38%를 확대 적용하는 내용이다. 아울러 보장성 보험, 의료비, 교육비 등에 대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함으로써 고소득층의 조세 부담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매출액이 10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이 내야 하는 최저한(最低限) 세율을 16%에서 17%로 올렸다. 이로 인한 세금 증가는 모두 연간 1조 원을 밑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추가적으로 필요한 복지 재원 135조 원과 비교하면 아주 미미한 액수다.

    과표 구간과 세율은 1996년 1000만 원 이하(10%), 4000만 원 이하(20%), 8000만 원 이하(30%), 8000만 원 초과(40%)이던 것을 2002년 낮은 구간으로부터 높은 구간 순서로 세율을 각각 1%, 2%, 3%, 4%p씩 내렸다. 2005년에는 구간별로 각각 1%p씩 내렸으며, 2008년에는 구간을 1200만, 4600만, 8800만, 8800만 원 초과로 변경하고 구간별 세율은 그대로 유지했다.

    또 2009년에는 구간 조정 없이 구간별 세율을 6, 16, 25, 35%로 변경했고, 2010년 6, 15, 24, 35%로 변경한 다음 2012년 3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38%로 정했으며, 올해 1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다시 변경한 것이다. 구간별 세율은 최근의 고소득 구간에 대한 상승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점점 낮아졌지만 1인당 소득이 1995년의 1만 달러에서 2013년 2만4000여 달러로 오른 것과 그동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68%를 고려하면, 정부 영역의 확대를 감안하더라도 과표는 조정되지 않은 셈이다.

    증세 용어에 담긴 약탈성

    일각에서는 이번 부자 증세로 전반적인 증세 계기가 마련됐다는 긍정적 평가를 한다. 부자한테 많은 세금을 거두어 다양한 복지에 지출하고 이로 인해 모든 구성원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당연히 긍정적일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은 각각 다를 뿐 아니라 그런 복지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부자한테 세금을 좀 더 많이 걷더라도 이들의 행복 수준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므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분배 방식이 생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크게 간과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번 소득은 당연히 자신에게 귀속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생산 활동에 참여한다. 그런 기대가 무너지면 생산 활동에 부(負)의 영향을 미치리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또한 부자 증세를 계기로 전반적인 증세 추세가 보편화한다면 국가 전체의 저축이 감소하고, 이는 다시 나라 전체의 자본 축적 감소로 이어져 경제성장의 추동력이 떨어진다. 기업에 대한 증세 역시 투자 감소로 이어져 1인당 투하되는 자본량을 감소시켜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임금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근로자들의 삶을 어렵게 한다.

    부자 증세가 사회 구성 원리적으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더 내야 하는 세금보다 그 용어가 함축하는 약탈성이다. 이른바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는 부자와 대기업이 더 많이 가져가서 생긴 일이 아니라 저성장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인간의 본능적 질투심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마음을 고양해 사회를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타인의 재산을 빼앗아 고르게 나누려는 형국에 이르면 사회를 지탱하는 덕목인 도덕과 윤리, 이타심 등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고 각 개인은 정신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나라 살림에서도 가정 살림에서와 마찬가지로 벌어들이는 소득을 초과한 소비를 지속하면 결국 정부 재정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이는 과다한 복지 지출로 야기된 정부 재정의 건전성 악화로 고통을 겪는 남유럽 국가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일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재정 건전성 유지 중요

    정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려면 세입과 세출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수밖에 없다. 비록 국가 부채에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지만 파산 시에 정부가 갚을 수밖에 없는 공기업 부채, 앞으로 당면할 각종 연금과 건강보험 적자 등을 감안하면 정부 예산 규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수익 사업으로 돈을 버는 조직이 아니므로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증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게다가 새롭게 늘어나는 복지 예산을 감당하려면 세금의 증가 속도 역시 높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복지 정책은 일단 도입되고 나면 민주 국가에서 그 수혜자들도 대부분 투표권을 가지기 때문에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복지 지출을 삭감하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오는 정당이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결국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고 부자 증세를 둘러싼 갈등을 줄이기 위한 첫걸음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했던 복지 정책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기하고 편중 과세를 바로잡는 것이다. 굳이 부자 증세를 하더라도 135조 원이라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일 이를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소득 계층 간 갈등 증폭과 정부 재정 악화는 물론 한국 경제 전체를 크게 위협할 것이다.

    그렇다고 복지 정책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나 소득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소한의 생활 유지도 어려운 가난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 복지 정책은 성별, 나이, 특정 집단 등과는 무관하게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 경제는 그 정도의 자원을 충분히 할애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회 각 분야에 온갖 복지 정책을 펼쳐놓는다면 어떤 나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없다.

    국회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아 세금이 더 필요하다면 부자 증세보다는 경제 성장을 통해 세원을 두껍게 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고르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차별적 처우를 받는다는 박탈감에 따른 소득계층 간 갈등을 유발하지도 않으며 건전한 재정 유지는 물론 복지 재원(財源)을 염출할 수 있는 기반도 더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국회는 민간의 활동에 시시콜콜 개입하거나 소득재분배적 정책을 시행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호함으로써 개인 간의 사회적 협동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장기적 안목으로 제도 개혁에 힘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논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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