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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쇠 경영으로 70년간 가구 공룡 통치

이케아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구두쇠 경영으로 70년간 가구 공룡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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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프라드는 1926년 3월 스웨덴 알름훌트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지역은 1년의 절반이 눈보라에 휩싸이는 척박한 시골마을이었기에 주민들은 생활력과 자립심이 유달리 강했다. 소년 캄프라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돈벌이에 남다른 소질을 발휘했다. 다섯 살 때부터 성냥, 엽서, 연필 등을 팔아 돈을 벌었다. 17세인 1943년에는 고향 집 앞 창고에서 시계와 크리스마스카드를 팔면서 일종의 잡화상인 이케아를 창업했다. IKEA라는 기업명은 그의 이름인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 그가 유소년기를 보낸 농장의 이름 엘름타리드(Elmtaryd), 엘름타리드가 존재한 마을 아군나리드(Agunnaryd)의 머리글자인 I, K, E, A를 각각 따서 만들었다.

1948년 가구업에 본격적으로 손을 댄 그는 1951년부터 카탈로그 인쇄를 시작했다. 1950년대 스웨덴 정부는 주택 100만 채 건설이라는 정책을 내놔 이케아의 성장을 간접 지원했다. 캄프라드는 1958년엔 오늘날 이케아 매장의 토대가 된 가구 전용매장을 설립했다. 당시만 해도 오로지 가구만 파는 매장은 찾아보기 힘들 때였지만 고객들은 가구를 만들 재료를 납작하게 포장해 이를 승용차에 싣고 집에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 열광했다. 캄프라드는 스웨덴 굴지의 사업가로 부상한다.

해외 진출과 스위스 이주

저렴하고 실용적인 이케아 가구가 큰 인기를 끌자 스웨덴의 다른 가구업체들은 이케아를 노골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경쟁자들은 이케아에 납품하는 하도급업체나 가구 장인을 협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가구업계 박람회를 열 때도 이케아에 공간을 주지 않았다.

국내 확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 캄프라드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1970년대부터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위스 등 이웃 스칸디나비아 국가에 진출해 이케아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킬 발판을 만들었다. 특히 이때 생산 전진기지로 폴란드를 택한 점이 주효했다. 스웨덴보다 인건비와 부동산 가격이 훨씬 싼 폴란드에서 가구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자 그렇지 않아도 싼 이케아 제품의 가격이 더 낮아졌다. 이케아는 창고와 매장 면적, 운송비용을 줄여 제품 가격을 더 내렸고 그럴수록 고객은 더 몰려들었다.



폴란드의 인접국으로 유럽 최강 경제대국이자 이케아 매장 수가 가장 많은 독일에서 사업이 번창하면서 이케아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이때부터 이케아는 매년 전 세계 각국에 10개 내외의 매장을 꾸준히 냈다. 세계 최대 소매시장인 북미에 진출한 뒤에는 홈디포, 로우스 등 미국의 쟁쟁한 대형 유통업체를 누르고 ‘가구 쇼핑은 이케아에서’라는 공식을 확립시켰다.

캄프라드는 해외 점포 확장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케아 본사도 다른 나라로 옮겼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북유럽 국가는 사회복지가 우수하지만 그만큼 세금도 많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웨덴은 한때 기업가의 소득에 무려 85%의 세금을 물렸다. 1000원을 벌었는데 850원을 세금으로 내고 내 손에 쥐는 게 150원밖에 없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결국 그는 엄청난 세금을 줄이기 위해 고향 아군나리드에 있던 이케아 본사를 네덜란드 델프트로 옮겼다. ‘델프트 도자기’로 유명한 이곳은 16~17세기부터 유명한 무역도시다. 캄프라드 본인 역시 재산세를 줄이기 위해 1976년 스위스 로잔 교외의 에팔링주로 집을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약 40년간 거주했다.

캄프라드는 1980년대부터 이케아의 기업 지배구조에도 대대적인 변화를 꾀했다.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 등에 각종 재단과 신탁을 설립해 이케아의 소유구조를 극도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놀랍게도 이케아는 아직까지도 비상장 회사다. 워낙 돈을 잘 벌고 유보금도 많다보니 굳이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상장을 하면 투자자, 금융당국, 시민단체, 회계회사 등에 기업의 수익 상황을 낱낱이 보고해야 하고 감시와 견제도 엄청나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다.

캄프라드가 소유구조를 복잡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절세다. 현재 이케아의 공식 소유주는 네덜란드에 등록된 공익재단 스티흐팅 잉카재단이다. 캄프라드는 1986년 최고경영자(CEO) 직을 사퇴한 후 회장의 직함만 갖고 있다. 이 잉카재단이 이케아 그룹의 지주회사인 잉카홀딩을 지배하며 이케아의 상표권, 제품 디자인 등의 소유권은 인터이케아시스템스라는 별도 회사가 갖고 있다. 각각의 회사는 서로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해 꼬리에 꼬리를 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복잡한 지배구조 덕에 그는 많은 세금을 내지 않고 별다른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 70년간 이케아라는 회사를 완벽하게 틀어쥘 수 있었다.

지독한 구두쇠 경영자

재단 설립 당시 캄프라드는 이케아를 발전시키고 브랜드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절세와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지의 목적이 워낙 강한 탓에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웨덴 경제 잡지 ‘베칸스 아파러’는 재단 관련 재산 등 캄프라드의 실질 재산을 다 합치면 무려 900억 달러에 달해 그가 부동의 세계 1위 부자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캄프라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케아의 놀라운 성공과 막대한 재산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방식 또한 유달리 독특하다. 우선 그는 말도 못할 정도로 지독한 구두쇠다. 재산이 막대한 데다 고령의 노인이지만 그는 아직도 전차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한다. 심지어 한국의 경로우대증에 해당하는 시니어 시티즌 증명서를 보여주면서 할인도 악착같이 받는다. 대중교통의 운행이 뜸한 주말에는 낡은 볼보를 몰고 다니고 비행기를 탈 때는 예외 없이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호텔도 싼 곳을 찾아 작은 객실에 묵는다. 미니바는 일절 이용하지 않고 주변 가게에서 물과 음식을 사다 먹는다. 차를 마실 때도 티백을 절대로 1번만 쓰지 않고 2번 이상 우려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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