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한강 밑으로 파놓은 땅굴 통해 개전 3일 만에 한반도 장악

김정은의 땅굴전쟁

  • 한성주 │예비역 공군소장 hansj12002@yahoo.co.kr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14-01-22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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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밑으로 파놓은 땅굴 통해 개전 3일 만에 한반도 장악

    1975년 철원군에서 발견된 북한의 제2땅굴. 시간당 3만 명의 보병을 침투시킬 수 있다. 땅굴전쟁은 당장 실전에 쓸 수 있는 가공할 작전이다.

    북한이 한국 전역에 거미줄 같은 땅굴망을 굴착했다. 1970년대 김일성이 스위스와 스웨덴에서 300여 대의 TBM(Tunnel Boring Machine)을 도입해 지속적으로 파온 결과다. 1990년 이래 역대 한국 정부가 ‘임진강 이남에는 땅굴이 없다’고 판단하고 땅굴 찾기를 중단한 동안 북한은 진해·부산 및 거제도까지 땅굴을 팔 수 있게 됐다. 진해와 부산은 우리 해군의 중요 부대가 있는 곳이다.

    김정은의 땅굴전쟁 계획은 김정일 유훈에 따른 것이다. 김정일도 김일성의 유훈에 따라 시도했다. 김정은은 30세도 채 안 돼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랐다. 따라서 ‘전쟁에서 후속군수지원의 절대적 중요성’에 대한 식견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을 도발한 김일성이 뼈저리게 체험했고, 천안함 피격사건 후 전면전을 결심한 김정일이 후속군수를 확보하기 위해 후진타오와 메드베데프를 설득하려 했던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는 낙관론에 빠져 있다. 땅굴을 통한 기습침투로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 지도자들과 국방부 장관과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 군 지휘관들을 3~4분 내에 포획하기만 하면 전쟁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신감의 배경은 한국 전역에 깔아 놓은 땅굴망. 준비가 돼 있으니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지난해 2월 12일 3차 핵실험으로 핵 개발에 성공했음을 보여준 뒤 바로 땅굴전쟁을 추진했다. 3월 5일 한반도 정전협정 무효화를 공포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는 중국의 협조 없이 전쟁을 하겠다는 협박이었다. 3월 24일에는 유튜브에 3일 만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전쟁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그리고 괌과 오키나와를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 3000여 km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 위협을 가했다. 이는 미국 스텔스 전투기의 선제공격을 유도하려는 제스처였다. 미군이 선제공격을 하면 바로 ‘정의의 전쟁’을 선포하고 땅굴전쟁을 개시하려 한 것.



    동계 집중훈련 반복

    김정은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없이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생각이 모순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취임 후 수시로 “3년 이내 독자전쟁으로 무력통일을 이루겠다”고 공언해왔다. 김정일의 3년상(喪) 이내에 무력통일하겠다는 것이니 그 기한은 2014년 12월 말이다.

    이것을 못마땅해한 이가 장성택 일파였다. 장성택은 중국의 지원 없는 전면전에 반대했다. 그래서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12일 장성택을 처형했다. 당·정·군에서 44%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 장성택 일파도 일시에 제거했다. 총정치국장 최룡해와 의기투합하면 일사천리로 불장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한 사전 조치들을 다음의 표로 정리했다.

    올해 1월 5일 김정은은 북한군 전군간부회의를 통해 전쟁 도발 결심을 하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소요사태와 연계해 설 전후로 땅굴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작전의 속성은 ‘뒤통수치기’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기습하는 것이다. “Think the Un thinkable(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생각할 수도 없는 기발한 방법을 찾아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작전전략이다.

    북한 지상군은 작전기동군 전법을 구사한다. 기계화된 대규모 기동군을 파도가 치듯 계속 투입하는 것이다. 이 작전은 겨울에 더 큰 효과를 본다. 기동군이 진격하기 좋기 때문이다. 장마가 지는 여름철에는 습지가 많아져 기동작전이 쉽지 않다. 그래서 매년 겨울 북한군은 2~3개월간 동계집중훈련을 반복해왔다.

    북한이 올 설 전후를 기해 도발할 수 있다고 본 것은 이 때문이다. 김관진 국방부장관도 같은 이유로 올 1~3월 중에 북한군이 도발할 수 있다고 예측했을 것이다.

    한미연합군은 공지작전(Air Land Battle) 능력이 뛰어나다.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운 작전기동군은 공군력 앞에 쉽게 무너진다. 작전기동군이 아무리 빨라도 공군기를 당할 수는 없다. 화력도 당연히 공군기가 세다. 따라서 대규모로 출격한 한미연합공군기는 순식간에 진격하는 북한의 작전기동군을 궤멸할 수 있다.

    미·중 만류로 전면전 포기

    그런데도 김정은은 3일 전쟁에 자신감을 보인다. 땅굴을 이용한 은밀한 기습으로 사전에 한미연합공군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는 김정일 때도 검토했던 것이다. 시기는 연평도 포격전 직후인 2010년 말이었다.

    그전에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 통일원년의 해로 설정해놓았다. 김정일은 이 목표를 2012년 겨울전쟁으로 이루려 했다. 2012년 12월 19일 한국에서는 격심한 혼란이 일어나는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으니 그 어간을 통일전쟁 적기로 본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이 극구 말렸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동북아 긴장이 잔뜩 높아져 있는데 북한이 또 도발을 하면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고 본 탓이다. 2011년 1월 후진타오가 워싱턴에서 오바마를 만나 1·19 미중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은 김정일의 도발을 말리는 공개 이벤트였다. 김정일은 주저앉았다. 그해 12월 17일 김정일은 자신이 계획한 통일전쟁을 1년 앞둔 시점에 죽었다.

    한강 밑으로 파놓은 땅굴 통해 개전 3일 만에 한반도 장악
    한국 해군의 승리 ‘승자의 저주’

    6·25전쟁 직전 북한은 서북도서를 상대로 한 양동(陽動)작전을 계획했다. 이는 구소련이 해제한 한국전쟁 비밀문건에서 확인됐다. 백령도, 연평도 등 서북도서를 먼저 공격해 우리의 주의를 끈 후 전면 남침을 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막바지에 계확을 변경, 바로 38선 넘어 침공하는 방책을 선택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전면전에 돌입하면 미국이 핵우산을 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면 남침을 시도한 6·25 때도 미군은 바로 참전했다. 그냥 참전한 것이 아니라 유엔을 통해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해 놓고, 사상 최초의 유엔군을 편성해 한반도로 달려왔다.

    미국은 똑같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작전계획 5027에 따라 대규모 증원군을 한국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냥 오는 게 아니라 핵무기를 갖고 온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으니 미국도 핵우산을 펼쳐들고(핵무기를 갖고) 한반도로 달려온다. 유엔은 북한을 다시 침략자로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이 러시아와 중국의 북한 지원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은 먼저 국지전을 일으킨 뒤 작전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국지전의 규모를 조금씩 확대해 전면전으로 ‘늘려가는 것’이다. 이는 미군이 핵우산을 펼쳐들고 대규모로 달려오는 것을 막는 조치다. 그 시작이 서해 NLL(북방한계선) 충돌을 빌미로 하는 서북도서 점령작전이다.

    북한은 남북 간 분쟁이 확산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자연스럽게 미국을 견제하리라는 것을 잘 안다. 두 나라는 한반도 충돌을 이유로 미국이 한반도에 대규모 파병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지 도발인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도 두 나라는, 특히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을 강력히 견제했다.

    북한 함정이 반복해서 NLL을 넘어가면 한국 해군은 결사적으로 대응한다. 당연히 남북 해군 간 교전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평시의 사태이니,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은 예의주시만 하고 개입하지 않는다.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책임지고 대처한다.

    미국은 정전체제 유지에 더 신경을 쓰니, 오히려 한국군의 지나친 응징을 자제시키려 한다. 사실 NLL 침범 사태에 대해 미군이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해에 미 항모가 들어가면 중국이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있고 러시아도 동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NLL 도발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전투력이 우수한 한국 해군이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북한 해군은 붙었다 하면 무조건 패하는데도 지독하게 달려들었다. 마치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 같았다. 미국의 지원이 없음에도 우리 해군이 북한 함정을 연속해서 격파하자 한국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승자의 저주’인 방심의 틈이 생긴 것이다.

    한강 밑으로 파놓은 땅굴 통해 개전 3일 만에 한반도 장악

    북한군 전차부대의 기동훈련. 북한군은 매년 2~3개월간 동계기동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겨울전쟁을 하겠다는 암시다.



    “백령·연평도가 점령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백령도 및 연평도의 해병대와 합참을 연결한 한국군 통신망이 일시에 두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두 섬에는 해병대 외에도 해군과 공군,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 777부대(통신감청부대) 등 여러 부대와 기관의 분견대가 나가 있다. 이들은 두 섬 방어를 책임진 해병대와 관계없이 각자 활동을 하기 위해 섬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이들이 한밤중에 해병대 부대에서 터져 나온 총소리를 듣고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오늘 새벽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우리 섬에 상륙해 해병대를 습격했다. 해병대 부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야음을 틈타 기습 상륙을 한 북한군 병력이 훨씬 많아 방어가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우리 해병대에서 방어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점령당한 것 같다….”

    보고 직후 이들의 통신도 끊겼다. 해병대 부대에 이어 이들도 두 섬에 상륙한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무너진 것이다. 합참은 여단(백령도)과 축소된 연대(연평도) 규모의 해병대가 함락된 만큼 이들도 점령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은 북한 지역을 감청하고 탐지하는 특수 장비를 운영해왔는데, 이 장비들이 북한군 수중에 들어갔다는 게 큰 문제였다. 우리 군의 암호체계가 북한군에 넘어갈 수 있으니 합참에서 먼저 통신선을 차단해야 했다.

    북 4군단 포병의 이상한 포격

    겨울에는 해가 늦게 뜬다. 어두컴컴한 그날 새벽 6시쯤 북한군 4군단 예하 포병여단이 백령, 연평 두 섬을 향해 전포(全砲) 사격에 들어갔다. 방사포와 곡사포를 동원한 일제사격이었다. 그 직전 우리 정보사령부와 777부대는 북한 4군단 예하 사단에 있는 포병연대들이 대거 백령도와 연평도 대안(對岸)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포착했다. NLL에서 한국 해군과 싸우는 북한 해군을 지원하려는 이동으로 보았다.

    그래서 연평도와 백령도 부대에 비상을 걸어놓았는데, 북한군이 포격하기 전에 두 부대가 북한군의 기습상륙을 허용하며 굴복해버렸다. 그 바람에 인민군 사단 소속 포병연대의 이동에 주목하지 않았는데, 이들은 4군단 포병여단 주위에 포진해 바로 ‘방열(放列)’에 들어갔다. 방열은 사격 준비를 하는 것이다. 포는, 특히 대구경 포는 후폭풍이 강력해서 포다리를 내리는 등 후폭풍에 견디는 조치를 해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방열이다.

    4군단은 직속 포병여단은 물론이고 예하 사단의 포병연대까지 끌어모아 전포 사격에 들어갔다. 이들이 쏜 포탄의 일부는 서북도서에도 떨어졌지만 대부분은 주변 바다를 향했다. 넓고 넓은 바다가 탄우(彈雨)를 맞아 허연 포말을 일으켰다. 이 사격이 너무 위협적이었기에 북한 함정의 NLL 월선을 막으려 대비하던 한국 해군 2함대는 서북 도서에 상시 배치한 고속정 편대를 포함한 전 함정을 북한군 사격선 밖으로 후퇴시켰다.

    우리 함정에 탑재한 함포로는 방사포와 곡사포로 무장한 북한 포병 화력을 당해낼 수가 없다. 그 때문에 한국 합참은 육군 유도탄사령부와 공군작전사령부에 북한군 4군단 포병부대를 무력화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공군작전사는 JDAM과 SLAM-ER을 탑재한 F-15K 편대를 출격시켜 수원 부근에서 공격 명령을 기다리게 했다. 육군 유도탄사도 현무-2와 현무-3, 그리고 ATACMS 미사일을 바로 사격할 수 있도록, 발사통과 사일로를 열고 대기했다.

    합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보고에 따르면 이미 북한군은 연평도와 백령도를 점령했다. 그리고 전포 사격을 퍼붓는데, 우리 해군은 위험 수역을 빠져나왔다. 그렇다면 이 사격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합참은 서북도서 탈환작전도 생각했다. 섬을 되찾으려면 섬에 들어온 인민군을 궤멸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섬으로 미사일을 쏘고 공군기로 폭격을 해야 하는데, 그곳에는 포로로 잡힌 우리 병력과 민간인이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포 사격을 하는 북한 4군단 포병을 궤멸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다를 향해 많은 포탄을 쏘아대는 4군단의 전포 사격이 속임수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작전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합참은 격렬비열도에 대기하는 미국 항모함대의 진입을 기다리기로 했다. 소식을 들은 미 항모함대는 경계 태세를 최대로 강화해 전속력으로 북진했다.

    하늘이 밝아오는 아침 7시쯤 4군단 포병이 만들어준 탄막(彈幕)을 이용해 북한 함정이 대거 출동했다. 이 함정에는 보병이 타고 있다. 이 배들을 공격하려면 공대함 하푼 미사일 등을 탑재한 전폭기를 출격시켜야 한다. 4군단 포격지점을 때리기 위해 공대지 무기를 탑재한 전폭기를 띄워놓은 공군작전사가 11전투비행단에 하푼 등 공대함 미사일을 장착한 전폭기를 출격시키라고 지시했다.

    그 사이 전속력으로 달려온 북한 함정들이 서북도서 해안에 접근해 보병을 상륙시켰다. 그때쯤 F-15K와 KF-16이 날아와 하푼 미사일 등을 발사했지만 상당수의 북한 함정이 백령도와 연평도에 상륙한 다음이라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상륙한 이들을 먼저 섬에 들어와 있던 인민군들이 반겼다. 한국 합참은 포로가 된 우리 군과 민간인을 생각해 두 섬에 대한 공격을 허가하지 않았다. 한국 공군기들은 백령도와 연평도 상공에서 위력비행을 하고 기지로 되돌아갔다. 유도탄사는 개방했던 발사통과 사일로를 닫았다.

    그때쯤 한국 합참은 사태의 윤곽을 파악했다. 한밤중에 백령도로 들어온 북한군은 함정을 이용해 기습 상륙한 것이 아니라 바다 밑으로 뚫어놓은 땅굴로 들어와 숨어 있다가 일시에 달려 나와 해병대 부대 등을 함락시켰음을 파악한 것. 북한은 이러한 기습을 감추기 위해 날이 밝을 무렵 4군단 전 포병을 동원하는 전포 사격을 해 한국 해군을 밀어내고 북한 함정을 두 섬에 상륙시키는 ‘쇼’를 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한미연합공군의 평양 폭격

    이 사실이 통신 루트를 통해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보고됐다. 이후 여러 언론사가 냄새를 맡아 보도하면서, 한국에서는 ‘땅굴 증후군’이 생겨났다. 해저 땅굴로 들어온 인민군이 서북도서를 장악하고 해병대와 주민을 인질로 잡아 우리 군은 두 섬을 탈환하기 위한 공격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북한의 땅굴에 대한 공포감이 형성된 것이다. 도대체 북한은 어디까지 땅굴을 파놓았단 말인가.

    서해 NLL 대결에서 거둔 승리에 취해 있던 한국은 순식간에 패전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당황한 한국은 전면전을 각오하고 대규모 응징에 들어갔다. 전 항공력을 동원해 북한의 수부(首府)인 평양을 때리기로 한 것. 한국과 미국은 공군력만큼은 평시에도 두 나라가 함께 운용한다. 따라서 평양 폭격도 한국 공군 단독이 아니라 한미연합공군 차원으로 이뤄졌다.

    미국은 군산에 있는 8전투비행단과 오산에 있는 51전투비행단의 전투기를 참여시켰다. 그리고 본토에 있는 공군전투사령부 예하의 전투기를 대구기지와 횡성기지 등으로 전개했다. 김해기지에는 조기경보기와 공중급유기, 그리고 전자전기를 집중 파견했다. 이러한 지원 덕분에 한미연합공군은 가장 강력한 공군 작전인 ‘대규모 편대군(群) 공격’, 이른바 ‘패키지 스트라이크(Package Strike)’를 하게 됐다.

    한강 밑으로 파놓은 땅굴 통해 개전 3일 만에 한반도 장악

    한국 영공에서 벌인 맥스선더 훈련에서 보여준 한미공군의 패키지 스트라이크 공격 연습. 한미연합공군은 평양을 초토화할 수 있다.

    100여 대 가까운 공군기가 출격해 휴전선 일대의 북한군 방공망을 초토화하며 날아가 평양 인근의 전략시설을 ‘원샷 원킬’로 날리는 초정밀 공격(surgical strike)을 한 것이다. 이라크전에서도 보지 못한 사상 최고·최대의 패키지 스트라이크였기에 중국은 미국의 참전에 항의하지 못하고 구경만 했다.

    이라크전에서는 미 공군과 미 해군이 항공작전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평양 공습에는 한반도로 날아온 미 공군보다 규모가 큰 한국 공군이 참여했으니 사상 최대의 패키지 스트라이크가 전개된 것이다. 한미연합공군은 이러한 공격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리고 서북도서를 점령한 인민군을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이 공격으로 백령-연평도 실함에 좌절했던 국민은 잠시 어깨를 폈다. 그러나 그것도 ‘승자의 저주’인 방심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북한군 지휘부는 한미연합공군의 패키지 스트라이크를 예상한 듯 벌써 평양을 벗어나 있었다.

    이들은 한미연합공군이 평양을 폭격하자, “미국과 한국이 먼저 침략했으니 우리는 조국을 지키는 성전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태가 커지자 중국은 미국을 만류했다. 러시아도 합류했다. 반면 일본은 미국을 지지했다.

    순식간에 ‘한-미-일’ 대(對) ‘북-중-러’ 구도가 형성돼 심각한 외교전이 벌어졌다. 이 외교전의 주역은 미국과 중국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중대한 차이점을 간과하고 협상을 했다. 중국은 북한이 저지른 사고에 끌려들어가고 있는데, 한국과 미국은 중국을 붙잡고 대화를 했으니 이 회담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수 없었다.

    중국도 당황했다. 중국은 미군의 참전을 결사반대하다가, 북한에 다시 한 번 큰 도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미연합공군의 북폭(北暴)에 대놓고 반대할 수 없었다.

    지난 30, 40여 년간 해저땅굴을 파왔다면 북한은 더 기묘한 땅굴도 팔 수 있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북한은 한강 바닥 중앙을 따라 거대한 땅굴을 파고 들어왔다. 해저에도 파는데 하저(河底)라고 못 팔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한강은 폭이 2km쯤 되는 거대한 공간이다. 그러한 강 밑에서 진행되는 ‘발파’ 작업을 누가 감지할 것인가.

    감지한다고 해도 우리도 한강 밑으로 지하철을 뚫었으니, 그런 공사를 하는가 보다 하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한강 하저에 뚫은 땅굴은 전차와 장갑차가 지나갈 정도로 폭이 넓었다. 서울지하철 5호선은 두 군데에서 한강 하저를 관통한다. 그 정도 폭의 터널을 북한이 한강 하저 중앙을 따라 파고 들어온 것. 기차가 교행(交行)할 정도면 당연히 전차도 통과할 수 있다.

    북한의 선전포고

    이러한 본선을 만든 후 서울의 주요 지점을 향한 지선을 뚫었다. 한국은 인터넷 지도와 위성사진 자료가 넘쳐나는 곳이다. 청와대와 정부중앙청사, 국방부, 수도방위사령부, 연합사령부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 주요 군사지휘관의 관사 위치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미연합공군의 평양공습으로 온 세계가 시끄럽던 어느 날 북한이 선전포고를 했다. 침략을 당했으니 국제법에 따라 정당한 ‘정의의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남조선이 먼저 평양에 대해 공중과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으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 자위권 차원에서 불가피한 전쟁을 개시한다. 그러나 인도적 차원에서 절대로 먼저 핵무기와 화학탄을 쓰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북한의 선전포고와 함께 핵과 화학탄을 먼저 쓰지 않겠다는 언급에 주목했다. 미국의 핵우산 작동을 막기 위해 선전전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한국은 다시 긴장했다. 서북 도서가 북한의 해저땅굴 공격으로 실함된 만큼 장거리 땅굴이 한반도 곳곳에 깔렸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생겨난 것. 이 공포가 우리 군의 사기를 꺾었다. 일부 인사들은 평화애걸세력으로 변모해 “왜 평양을 공습해 사태를 악화했느냐”며 우리 군과 정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북한이 선전포고를 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새벽 2시, 강력한 폭음과 함께 북한이 사전에 뚫어놓은 땅굴의 출구들이 일제히 뚫리면서 인민군 특수부대원들이 주요 시설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지근거리에 있는 목표점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는 강화된 한국군 방어부대가 있었다. 방어부대는 갑자기 들려온 폭음에 경계태세를 강화하다가 이들을 맞았다. 그러나 워낙 많은 병력이 기습적으로 몰려왔기에 저지선이 바로 뚫려버렸다.

    몰려오는 인민군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주요 시설과 관사로 진입한 이들은 총질을 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요인과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이하 군 지휘부가 일시에 인민군 포로가 됐거나 사살됐다는 뜻이다.

    기습을 받은 우리 군은 긴급히 비상을 발령했다. 많은 병력이 출동했는데 이들을 지휘할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출동한 하급 지휘관들은 ‘머리’가 사로잡히거나 피살된 것을 알지 못한 채 우왕좌왕 했다. 이들을 인민군이 습격했다. 적과 우군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쟁 개시와 함께 적이 우리 진영 한복판에 들어왔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다.

    비상소집에 달려온 우리 장병들은 도처에 매복해 있던 인민군의 표적이 됐다. 우리 지역에서는 우리 군이 매복하고 있다가 적을 섬멸해야 하는데, 거꾸로 우리 병사들이 북한군의 매복에 걸려드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우리 군대는 순식간에 ‘군중(群衆)’이 돼버렸다. 겁을 먹은 일부 장병들이 군복을 벗고 도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전방 부대 지휘부도 마비

    전방부대에서도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오래전에 전방 사단과 군단의 지휘부와 지휘관 관사 근처까지 땅굴을 뚫어놓은 인민군이 새벽 2시가 되자 출구를 폭파하고 대거 몰려나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같은 방법으로 한국군 전방부대 지휘부를 장악하고 지휘관을 사살하거나 생포했다. 이어 출동한 한국군 부대를 섬멸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한국군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들끼리는 식별부호가 있었다. 사령부 외곽에 있던 한국군 부대는 사령부로부터 가해오는 공격에 맥없이 무너져가며 분노했다. “뭐야? 사령부에서 반란이 일어났나!” 그 바람에 전선 방어가 소홀해졌다.

    전방 사단과 군단은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있는 수색대와 철책을 지키는 GOP(일반 전방초소) 대대를 지원해야 하는데, 그들이 먼저 혼란에 빠졌으니 최전선 부대를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머리’ 상실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 군은 북한이 20여만 명의 특수부대를 양성한 것은 땅굴작전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전략시설과 전방부대가 공격을 당한 새벽 2시. 북한군은 전방에 있는 포병을 동원해 일제사격을 펼쳤다. 북한군이 쏜 포탄이 떨어지자 GP(경계초소)에 있는 수색대와 GOP 대대는 견고한 지하진지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식량과 물 등의 생필품과 발전기, 화장시설 등이 갖춰져 있어 상당기간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이들은 인민군이 통과해도 진지에서 나오지 않고 숨어 있다가 인민군이 다 통과하면 나와 뒤에서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GOP 대대 뒤에는 연대와 사단이 있는데 이들이 1차적으로 남침한 인민군을 막는다. 이어 그 사단 뒤로 예비사단이 방어선을 친다. 이러한 노력으로 남침을 저지하면 한미연합공군이 출격해 쳐들어온 인민군을 폭격하고 예비사단을 중심으로 한 한국군 기동부대가 이들을 공격한다.

    이 공격으로 인민군이 퇴각하면 진지에 들어가 있던 우리의 GOP 대대와 수색대가 후방을 차단해 함께 섬멸한다는 것이 우리의 1단계 작전개념이다.

    우리 군이 치는 방어선이 한 번에 완성될 수는 없다. 따라서 1차로 막아야 할 선을 알파, 그것이 뚫렸을 때 새로 치는 방어선을 브라보, 그것도 밀리면 찰리, 그리고 델타 선 등을 친다. 보통은 찰리 이전에 방어선 구축에 성공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도상의 계략이지 현실은 아니다.

    공군 비행단도 함락

    깃대령을 비롯해 후방에 있는 북한 전략로케트군 산하의 미사일 기지들도 북한 포병들과 함께 일제히 사격에 들어갔다. 이들이 쏜 미사일들은 우리의 후방 깊숙한 곳에 있는 육군 미사일 기지, 공군 비행장, 전략시설 등을 향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대응작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대응작전을 해야 하는 육군 유도탄사와 공군이 조용했다.

    그때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육군이 방어선을 구축할 경우 제일 먼저 날아와 인민군을 공격해야 할 공군이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한국 공군은 ○○개의 전투비행단을 갖고 있다. 그러한 비행단이 땅굴에서 올라온 인민군에 함락됐다는 비보였다. 이는 생각해보지도 못한 사태였다.

    우리군은 북한군이 쏜 스커드 B나 노동 미사일에 활주로가 파괴돼 공군기가 이륙하지 못하는 사태는 예상했다. 그 때문에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막는 PAC-3를 도입해 배치하고, 파괴된 활주로를 신속히 복구하는 훈련을 반복해왔다. 소수의 인민군 특수부대가 후방에 있는 비행단을 습격할 수 있다고 보고, 기지 방어훈련도 반복했다.

    그러나 땅굴을 통해 수많은 인민군이, 그것도 중화기까지 갖춘 인민군이 쏟아져 나와 비행단을 장악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바로 실함을 당한 것이다. 같은 사태가 후방 ○○ 지역에 있는 육군 유도탄사와 예하 미사일 기지에서도 일어났다.

    한국 공군 비행단과 육군 유도탄사가 적 손아귀에 넘어간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국이 핵을 쓰지 않는 한 한미연합군은 응징할 방법이 없어졌다.

    인민군이 남침을 하면 즉각 한미연합공군은 육군 유도탄사와 함께 전략적 마비전을 수행할 계획이었다. 전쟁을 결심한 북한 지도부와 북한군 지휘부, 주요 사령부, 미사일기지, 공군기지 등을 향해 현무-2 같은 미사일을 발사하고 한미연합공군기를 띄워 초토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격으로 북한의 지도부가 날아가면, 북한군은 ‘머리 잘린 도마뱀처럼 버둥거리다 죽는다’는 것이 전략적 마비전이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 이 전략을 제대로 선보였다. 개전 첫날 미군은 토마호크 미사일 등으로 후방 깊숙한 곳에 있는 이라크 전략시설을 제거한 데 이어 공군기와 해군기를 띄워 이라크군 방공망과 지휘부 등을 초토화했다. 하늘에서 시작한 이 공격을 A-데이 작전이라고 했는데, 이 작전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했다. 덕분에 미 육군 3사단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놀라운 속도로 진격해 바그다드를 점령했다.

    땅굴로 펼친 전략적 마비전

    북한은 이라크전에서 미군이 항공-미사일 전력으로 감행한 작전을 땅굴로 수행했다. 땅굴은 영어로 ‘tunnel’이라고도 하지만 ‘underground way’로 적을 수도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한 작전이 A-데이 작전이라면, 북한이 펼친 것은 U-데이 작전이었다.

    한미연합공군과 육군 유도탄사의 응전이 없는 상태에서 포병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신속하게 남방한계선을 돌파한 인민군은 그대로 진격했다. 북한은 전형적인 제파식(諸波式) 공격을 구사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준비된 부대를 연속으로 투입한 것. 1제대에 이어 2제대가 비무장지대를 통과했다. 이들 역시 진지에 숨어 있는 한국군 수색대와 GOP 대대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어 3제대, 4제대도 내려갔다.

    이들은 땅굴을 타고 이동해 주요 지점을 장악한 경보병부대(특수부대)와 결합해 더 많은 지역을 장악해 들어갔다. 이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보급이었다. 한국군 수색대와 GOP 부대가 살아 있으니, 북한이 전선을 통한 보급을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난관을 북한은 땅굴로 가볍게 돌파했다. 전차가 다닐 정도로 큰 땅굴은 어떠한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확실한 보급로 구실을 했다.

    이런 땅굴이 비행장처럼 넓은 공지로 이어져 있으니 북에서 운반해온 물품을 하역하기 좋았다. 그 사이 함락되지 않은 일부 한국의 공군 비행단에서 출격한 전투기와 일본과 괌, 알래스카에서 이륙한 미 공군기, 그리고 중국의 반대를 뚫고 동서해로 진입한 미국 함대가 토마호크를 쏘고 함재기를 출격시켰지만 안전한 보급로까지 확보하며 한국 전역으로 몰려온 인민군을 격퇴하지는 못했다.

    위협은 오히려 북한이 가했다. 북한은 일본과 괌에 있는 미군 기지를 향해 노동과 대포동,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이지스함이 막아내 피해가 없었다.

    북한은 북한 영공으로 날아온 한미 공군기를 요격하기 위해 전투기를 띄우지 않았다. 띄워봐야 밥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대공포로만 응수했다. 그러니 전투기를 이용한 북폭도 큰 효과가 없었다. 북한은 대부분의 전략시설을 지하에 감춰뒀기 때문에 지상을 때려봐야 실익이 적었다. 몇몇 지하 시설은 관통탄을 투하해 파괴했지만 북한 지도부가 있는 곳은 파괴하지 못했다.

    제주도로 옮겨간 주한미군

    미국 정부는 안전한 지역으로 주한미군을 이동시켰다. 안전한 지역은 제주도였다. 졸지에 한국은 제주도를 비롯한 몇몇 섬만 남기고 나머지는 북한군에 뺏긴 처지가 됐다.

    선전포고를 하고 전면전을 개시한 첫날, 40여 년간 파놓은 땅굴을 타고 남하해 남한 주요 지역으로 쏟아져 나온 20만 명의 북한군 특수부대는 한국의 전략시설을 공략하고 요인을 사로잡았다. 전방 지휘부도 무력화했다. 그리고 제파식 공격으로 남침을 성공시켜, 먼저 땅굴로 들어온 경보병 부대와 함께 개전 2, 3일 만에 한국 전역을 장악해버렸다. 이어 미국과 길고 긴 전쟁에 들어갔는데, 이 싸움은 한국을 정복한 다음에 하는 것이라 할 만했다.

    시간이 지나자 미국은 일본을 핵심 방어선으로 지정하고 한반도 전역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한 다음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반복했다. 그러나 북한은 거미줄 같은 땅굴망을 구축해놓았기에 잘 버텼다. ‘죽여도 죽여도’ 나오는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은 것이다. 그 싸움으로 한국이 60여 년간 이룩한 ‘한강의 기적’은 잿더미가 됐다.

    김정은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3일 만에 남조선을 장악했다”며 이설주와 함께 TV에 나타나 껄껄 웃으며 미 농구선수 로드먼을 맞았다.

    ◇ ◇ ◇

    이상으로 북한이 해저땅굴과 하저땅굴을 파놓았을 경우 예상되는 기습전쟁 상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중국의 반발심까지 이용해 총력전을 펼친다. 작은 도발을 확대해 명분을 만들고 경보병 부대를 앞세워 ‘이겨놓고 전쟁을 하는’ 수를 쓰는 것이다.

    손자도 이겨놓고 전쟁을 해야 한다며 ‘선승이후구전(先勝以後求戰)’을 강조했는데 그렇게 한 것이다. 장성택 처형에서 보듯이 김정은은 인민의 목숨은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다. 미군과 한국군의 공격으로 인민이 희생되면 오히려 자기에 대한 충성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

    제2의 살수대첩 준비하자

    이러한 땅굴전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리는 1974년 1땅굴을 발견하고 1990년 4땅굴을 찾아냈다. 그 후론 24년째 북한이 판 땅굴을 찾아내지 못했다. 40년이 지났으니 북한의 터널 파는 기술은 더욱 발전했을 것이다. 북한이 땅굴전략을 포기했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땅굴을 임진강 이남으로는 파지 못했다는 고정 관념부터 깨야 한다.

    그리고 전방지역부터 세밀하게 재조사를 해야 한다. 북한은 굴착한 땅굴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처리하기 위해 깊은 곳에서 땅굴 파기 작업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남쪽으로 가면서 조금씩 올라오는 식으로 굴을 파야 발생한 지하수가 자연스럽게 북으로 흘러 배수(排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방지역에서 북한이 판 땅굴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한강 밑과 주요 시설 인근에 대한 탐사를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뭔가가 발견된다면 ‘제2의 살수대첩’을 준비해야 한다. 그 땅굴 안으로 물을 넣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한강의 물’이나 ‘서해의 물’처럼 마르지 않을 물을 선택한다. 그 물이 들어가는 순간 거미줄 같은 북한 땅굴은 지하수로가 된다. 그 수로가 북한 쪽으로 물을 쏟아내, 북한의 상당 지역을 수장시킨다. 제2의 살수대첩은 북한이 판 땅굴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 군에는 땅굴 탐사반이 조직돼 있다. 그러나 군 지휘부부터 땅굴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건성’으로 운영한다. 이는 이 팀을 위해 배정한 예산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추공 하나도 뚫지 못할 예산을 배정해놓고 이 팀을 운영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북한 2인자이던 장성택이 건성 박수를 치다가 목숨을 잃었음을 상기해볼 대목이다.

    북한이 ‘Think the Unthinkable’을 실천한다면 우리는 ‘Imagine the Unimaginable(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상상한다)’ 작전을 구상해야 한다. 그것이 3일 전쟁을 획책하는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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