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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 영화 ‘변호인’ 신드롬

답답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믿음 상상 속 ‘리틀 빅 히어로’에 열광

  •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daum.net

답답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믿음 상상 속 ‘리틀 빅 히어로’에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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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대개 리틀 빅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7번방의 선물’의 딸 바보 아빠가 그랬고, ‘광해’의 주인공인 광대 하선이 그랬다. 그들은 나라를 세우고 정적을 물리치는 큰 영웅이 아니라 딸아이를 지키고 아내를 웃게 하는 작은 영웅들이다.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도 그렇다. 송우석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변화했다는 데 있다. 영화의 처음부터 그가 인권 변호사로서 정의를 위해 싸웠다면 오히려 마지막 항변의 카타르시스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처음엔 가난뱅이였기에, 심지어 밥값도 내지 못하고 도망간 한심한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돈푼깨나 번 이후에도 요트나 타고 제 배 채우기 급급했던 인간이기에 그의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왜냐하면, 그, 송우석은 우리와 거의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의니 민주니 하는 거창한 말보다 내 배 따뜻하게 불려주는 국밥 한 그릇이 더 반가운 남자, 세상 돌아가는 이치보다 주판알 속 계산에 더 빠른 남자, 그 남자는 우리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모습 그대로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송우석이라는 속물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도 그렇다. 그는 정치적으로 대오각성한 끝에 마치 신의 계시를 받듯 정의의 세계에 투신하는 게 아니다. 가까운 국밥집 아줌마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는 심정일 뿐이다. 송우석은 대단한 영웅이 아니라 작지만 큰 영웅, 즉 우리도 어쩌면 될지도 모를 그런 영웅의 모습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변화의 장면이 픽션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송우석이 국밥집에서 밥값을 안 내고 도망가는 장면이나 변론을 맡게 된 과정, 심지어 군의관을 증인으로 택하는 것도 모두 픽션이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날것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잘 꾸며진 이야기야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잘 꾸며졌다는 것은 보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재구성을 의미한다. 어디까지 사실이건 간에 관객이 감동을 느끼는 영화 ‘변호인’은 극적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다. 이는 최근 오히려 실화임을 강조한 작품들, ‘남영동 1985’나 ‘천안함 프로젝트’가 되레 흥행에서 고배를 마신 상황과도 유사하다.

관객은 실화라는 것 그 자체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 탁월한 재구성에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송강호를 비롯한 배우의 연기다. 송강호의 연기는 그 어떤 사실성을 넘어선 호소력을 전달한다. 그리고 영화 ‘변호인’이 관객에게 주는 감동의 8할은 바로 이 송강호의 연기에서 비롯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복고와 향수의 시너지

‘변호인’에 대한 관객의 강렬한 반응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있다. 여기엔 이 영화의 배경이 30여 년 전 과거라는 점도 관련돼 있다. 1980년대, 정치적으로는 암울했지만 적어도 먹고사는 데에서는 꽤나 희망적이었다.

대학생들이 출석 일수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한 채 거리에서 싸웠어도 대기업에 취직해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적어도 20대 때 대의와 정의를 위해 싸웠다는 빛나는 훈장을 달고 서른 무렵의 비겁한 자아와 만날 수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도 이 세계가 조금 달라지는 데 한몫했다는 뜨거운 자긍심, 198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에겐 그런 뿌듯함이 있다.

거리에서 1980년대를 보내지 않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에게도 1980년대는 호황기였다. 프로야구가 시작됐고, 경기는 흥청거렸으며 곧 열리게 될 아시아경기대회나 올림픽이 건설 경기에 불을 붙이던 시기였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조금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있었다.

2014년은 1980년대에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미래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도무지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더 나아졌다고들 수치가 말해주지만 많은 사람이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역사를 만들어왔다. 우리에게는 리틀 빅 히어로라는 개념이 없다. 그리고 사실, 히어로도 없다. 죄다 반성과 사죄를 해야 할 안티 히어로들만 가득하다. 우리에게 실존 인물의 히어로라는 건 너무나 멀리 있다.

리틀 빅 히어로의 핵심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근’이 있고, 따라서 아무리 타락하거나 보잘것없는 인간일지라도 세상을 위해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믿음, 그게 바로 리틀 빅 히어로의 핵심이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의 실명 속에서 우리가 찾고 싶은 바로 그 영웅을 찾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픽션의 재구성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을 소환하는지도 모른다.

신동아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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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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